신동아는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 시리즈를 새로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 선보이는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는 지역사회나 공간을 기반으로 인문가치를 고민하고 이를 새로운 시대의 언어와 메시지로 알리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한다. 여섯 번째 주인공은 판소리 세계화를 일구고 있는 채수정 명창이다. <편집자 주>
판소리 세계화를 일구고 있는 채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상윤 객원기자]
오후 3시에 시작된 공연이 저녁 7시에 끝나자 작품을 ‘감상했다’는 느낌보다 관람객인 나도 ‘함께 해냈다’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다. 올 초 국립중앙 극장에서 열린 채수정 완창 판소리 ‘적벽가’는 개인적으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판소리 완창은 소리꾼 한 명이 마당 하나 전체를 짧게는 3시간, 길게는 8시간에 걸쳐 부르는 공연이다.
완창 공연을 리얼타임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흔히 판소리 완창은 마라톤에 비유된다. 긴 시간 동안 지치지 않는 체력도 있어야 하고 많은 대사를 놓치지 않는 기억력, 관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농담도 하는 순발력, 북을 치는 고수와의 소통과 호흡 조절력 등 여러 능력이 요구된다. 채수정 명창 공연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채 명창은 2022년에는 ‘세계판소리협회’를 만들어 판소리를 세계로 발신하는 일도 하고 있다. 소리하랴, 제자 키우랴,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삐 살고 있다는데 도대체 저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연구실이 있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로 향하면서 그런 질문에 답을 찾고 싶었다.
판소리는 ‘통의 소리’
연구실 문을 노크하자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그녀가 기자를 맞았다. 벽 한편이 국악 CD와 관련 고서, 북과 장구로 가득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조간신문에 난 기사가 떠올라 먼저 화제로 삼았다.
광주 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외국인 예술감독이 국내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판소리처럼 누구나 경계 없이 목소리 내는 판을 펼치겠다’고 하더군요. 아니, 외국인이 어떻게 판소리 정서를 알고 있을까, 더군다나 미술 전시에 판소리라니 그만큼 세계화됐다는 말인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판소리’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됐나 봐요.
“그런 인터뷰가 있었나요. 소리꾼으로서 너무 반가운 소식이네요.”
명창 앞에서 해도 되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판소리란 뭔가’ 하는 근원적 질문이 떠올라요. 사전적 언어로 하면 부채를 든 소리꾼이 고수 장단에 맞춰 노래(창), 말(아니리), 몸짓(발림)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내는 공연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요.
“판소리란 무엇인가라니 정말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네요(웃음). 제가 살을 좀 붙이자면 ‘판소리’ 할 때 판은 ‘씨름판’ ‘놀이판’ ‘살판’ ‘죽을 판’ ‘난장판’ ‘먹자판’처럼 뭔가가 벌어지는 어떤 공간적 개념인데 단지 대상화된 스테이지가 아니라 열려 있는 공간을 말합니다. 그 안에 소리가 있는 거죠. 이야기 처음부터 끝이 있는 ‘통의 소리’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통의 소리’라 함은 뭘까요.
“이른바 스토리텔링이죠. 예를 들어 심청이 태어나면서부터 시련을 겪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고 나중에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하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이 있는 스토리가 통으로 구성돼 있다는 겁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소리’죠. 우리가 노래라고 할 때는 인간의 목소리로 가사를 부르는 것을 말하잖아요. 판소리의 소리는 훨씬 더 넓어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심지어 귀신 소리까지 있어요. 예를 들어 춘향가에서 이도령을 그리는 춘향이가 옥중에서 내일 죽게 생겼는데 귀신들이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있어요. 이런 소리도 내야 하니 소리꾼이 표현해야 하는 소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발성에서 머리나 가슴을 안 쓰고 단전에서 밀고 나오는 호흡으로 하기 때문에 동굴 속에서도, 폭포수 밑에서도 소리를 하는 겁니다. 자연에서 연마해 득음의 소리를 얻어내는 게 판소리의 매력이죠.”
내친김에 판소리의 역사까지 거슬러 물었다.
“판소리를 지칭하는 명칭은 문헌에 따라 소리, 창, 타령 등등 다양하게 나와요. 우리가 지금 부르는 ‘판소리’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성립했는지에 대해서는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17세기 중·후반 서민층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통설입니다.
주로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전국적으로 퍼져 있었다고 보는 설이 맞아 보여요. 전라도권에서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장르가 나오고 육자배기, 무속음악 씻김굿도 있고 명창도 많이 나오긴 했지만 경기도·충청도·경상남도·경상북도에도 다 명창이 있었습니다. 소리도 그 지역만의 패턴이 있어요.
이를테면 충청도 판소리는 약간 덤덤하게 부르는데 말 자체가 그렇잖아요. 판소리에서는 소리꾼뿐 아니라 소리를 제대로 듣는 ‘귀명창’도 중요한데 이런 분들은 함경도에 많았대요. ‘남도에서 소리를 배워 함경도 가서 소리를 닦았다’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어떻든 조선반도 전체가 판소리의 나라였습니다.”
트로트 열풍이 놓치고 있는 것
그는 소리꾼이기도 하지만 판소리를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에서 공부해 최초의 판소리 음악학 박사가 됐을 뿐 아니라 고전문학인 판소리 사설을 연구해 경희대 국문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내공 깊은 국문학자들이 스승(인간문화재 박송희)을 찾아와 소리를 배우는 것을 보면서 문학으로서의 판소리에 대한 공부 욕심이 발동했다고 한다.
동편제, 서편제가 워낙 유명해서 호남 지역만 번성했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어요.
“이론가들이 정리하면서 지역적으로 나누고 스타일을 틀 안에 넣다 보니 나온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판소리를 따로 감상할 기회가 적다 보니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공부부터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요.
“옛날 판소리는 음담패설, 사회풍자, 탐관오리 비판도 많았어요. 사람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이면 북을 치고 하면서 연극처럼 뮤지컬처럼 한 거예요. 앞서 언급하신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님은 그런 점에서 판소리의 개방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 거죠.
판소리는 19세기에 융성하는데 그전까지 정말 서민들의 오락이었어요. 그러던 것이 양반들도 즐기는 문화가 된 거죠. 왕 앞에서 부르는 ‘어전 광대’도 등장하니까요. 이러다 보니 이야기가 엄숙해지고 사대부들이 좋아하는 유교적 내용이 들어가면서 변형됩니다. 대원군도 판소리를 좋아했어요.”
어전 광대라고 하니 옛날 서양 오페라처럼 귀족 앞에서 노래하는 소리꾼이 그려지네요.
“맞아요. 하층이었던 판소리 광대들이 신분 상승을 합니다. 그게 모티베이션이 돼서 치열한 경쟁과 수련이 시작돼 유파도 생기는데 한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린 측면도 있어요. 가루지기타령, 배비장전 이런 것들은 남녀상열지사라고 해서 아예 없어져 버렸죠.”
일제 때는 어땠나요.
“그 시대가 참 아이러니인데요. 서양 문물이 들어와 녹음이 시작되면서 명창들이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소리를 해요. 그게 지금 음원으로 보존돼 있어서 연구하고 지도가 가능해졌습니다. 일제 때 임방울 선생 ‘쑥대머리’ 음반은 당시에도 10만 장이 넘게 팔렸다고 해요.”
그는 판소리가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거치며 원형을 잃어버린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했다.
“광복 후에는 명창들이 월북도 많이 했어요. ‘열사가’를 지으신 박동실 명창을 비롯해 오태석, 정남희 등 제자들을 키우던 선생님들이 다 올라가 버리면서 맥이 끊어졌죠. 제가 1980년 무렵 소리를 시작했는데 ‘기생 되려고 하느냐’ 소리를 대놓고 들었을 정도로 편견이 심했어요. 저도 어릴 적엔 피아노를 치고 합창단을 하다가 국악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시작했어요. 원래는 가야금을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너는 판소리해라’ 하셔서 진로를 바꿨습니다. 어느 날 안숙선 선생님이 학교에 오셔서 농부가 민요를 가르쳐주신 적이 있는데 너무 감동해서 지금까지도 좋은 소리를 만나면 그때 그 느낌이 되살아나요.”
그는 국악고 2학년 때 스승 박송희를 만나 스승이 세상을 떠나는 2017년까지 30년 넘게 사사했다. 그러던 중 2011년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명창 반열에 올랐다. 국내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브라질 등 해외에서도 ‘흥보가’ ‘적벽가’를 수시로 완창했다.
2007년 임방울국악제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하던 당시의 채수정 명창.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진도가 고향이고 집안 분위기가 판소리를 일상으로 했다고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고모들이 진도아리랑, 판소리, 육자배기를 즐겨 부르며 노는 문화에서 자랐죠. 고모들이 특히 소리를 잘했는데 가족들이 모이면 완창 발표회가 열릴 정도였습니다.
제가 대학교 들어갈 때는 마당놀이가 생기면서 판소리 창작 붐이 일어나는데 ‘국악가요’라는 이름으로 실내악단이 생기고 현대화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원형을 잃어버리는 부작용도 있었죠. 원형을 더 살릴 수 있었다면 레퍼토리도 더 많아지고 풍부해졌을 텐데….”
그는 자신에 대한 자랑보다 국악계 전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판소리를 비롯해 현대화된 국악을 만들고 즐기는 것은 반가운 일로 보이는데요.
“속사정은 좀 달라요. 인구 감소에 따른 것도 있지만 판소리에 올인하는 친구가 많이 줄었어요. 트로트 붐이 일면서 그쪽으로 많이 가기도 하고요. 판소리로 대성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자꾸 외부에서 콜이 오니까 그쪽으로 가버려요.
물론 제 입장에서는 텔레비전에서 제자들 보면 반갑고 그 제자들이 판소리 어법으로 노래를 부르니까 판소리를 알리는 효과는 분명히 있어서 반갑습니다. 다만, 저는 선생이다 보니 정말 대명창이 될 수 있는 학생들이 너무 빨리 재능을 소진해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죠. 새로움을 향해 가는 건 당연하긴 한데 원래의 씨앗은 누가 지킬 것인지 이런 생각을 하죠.
판소리 같은 무형문화재는 보유자들이 돌아가시면 다 없어져요. 소리는 입에서 입으로, 호흡에서 호흡으로, 무릎과 무릎을 맞대며 이어져야 하는데 말이죠. 저희들은 ‘선생님 침을 먹고 소리를 배운다’고 했어요. 20년 이상씩 시봉을 하면서 도를 닦듯이 음(音)으로 세상을 얻는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이른바 득음을 하는 명창이 계속 나와야 판소리가 살아 있는 거예요.”
소리꾼이자 이론가이기도 한 채수정 명창이 펴낸 해설서들. [허문명 기자]
외롭고 힘든 득음의 경지
득음의 경지라는 건 누가 판단합니까.
“어려운 질문입니다. 소리꾼 한 사람의 삶을 60년, 70년으로 잡으면 스승에게 20년 배우고 10년을 혼자 독공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판소리를 알리는 거예요.
어떻든 득음의 경지란 것이 30년 공부를 해도 될까 말까인데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30년을 학습하겠습니까? 강요할 수도 없고요. 저는 사실 엄청난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말을 쏟아내던 그가 잠시 한숨을 쉬며 멈추더니 이어갔다.
“득음의 경지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큰스님께 ‘득도하셨습니까?’ 묻는 거나 똑같아요. 어떻든 질문에 답을 하자면 ‘그 경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네요.”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 경지가 뭔지는 잘 모르는데 아주 미세하게 찾아가지는 지점은 보이거든요.”
소화할 수 있는 음역이 높아지는 건가요.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소리를 다 낼 수 있는 경지죠. 높은 소리, 낮은 소리, 큰 소리, 작은 소리를 자유자재로 내면서 가사가 담고 있는 뜻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가슴으로 받아서 부르는 경지죠. 판소리는 1인극이잖아요. 남자, 여자, 노인부터 아기 목소리도 내야 할 때가 있고 직업도 다양합니다. ‘적벽가’ 등장인물들은 군인 아닙니까. 거기다 귀신 소리까지 내야 한다고 했죠. 이 모든 걸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할 때 득음했다고 할 수 있겠죠. 사실 모든 예술 영역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득음의 경지로 가는 길은 힘들고 어려운 거죠.”
흔히 득음이라고 하면 폭포수 밑에서 수련하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득음을 위해 목이 쉬어 터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산에서 수련하는 ‘100일 공부’를 하는데 목을 파괴하고 그 기운을 얻기 위한 거예요. 폭포수에서 혹은 동굴 속에서 온 정신을 쏟아서, 목이 쉰 상태에서 계속 노래를 하다 보면 힘만 들어가고 소리가 안 나오는데 그때 공력이 붙는 거예요. 그러다 어느 순간 배 속에 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소리가 나요. 그렇게 해야 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 수련을 못 해요.”
예를 들어 마리아 칼라스는 득음한 사람입니까.
“허리를 단전에 밀어갖고 하는 통성 발성이 굉장히 잘돼 있어요. 저도 마리아 칼라스, 파바로티 소리 좋아합니다. 또 멜러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 너무 좋아합니다(웃음). 득음이란 게 이처럼 판소리꾼만의 경지는 아닙니다. 다만 4시간 5시간 6시간 8시간 계속 부른다는 게 특이한 거죠.”
저도 진짜 놀랐습니다. 가사를 외우기도 힘들 텐데 어떻게 가능한가요.
“말하듯이 하니까요. 사실 그게 원래 소리의 본질이죠. 오페라는 ‘말하듯이’가 아니죠. 성악하시는 선생님들 말을 들으면 오히려 성대를 상하게 한다고 해요.”
‘귀명창’이 오면 판이 확 산다
판소리라는 게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등 열두 마당이 딱 정해져 있잖아요. 어찌보면 계속 똑같은 노래의 반복인데.
“제 아이가 저한테 ‘엄마는 맨날 흥보가만 한다’고 놀려요. 제가 흥보가 이수자인데 박록주, 박송희 저 3대로 이어져 그 똑같은 노래를 30년 동안 부르니까 딸이 지금 스물아홉 살인데 배 속에서부터 듣던 흥보가를 지금까지도 듣는 거거든요. 하지만 부를 때마다 다릅니다. ‘귀명창’들은 ‘채수정이 작년 소리 다르고 올해 소리 다르다’ 이러세요.”
‘귀명창’이란 단어가 참 좋습니다.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려요.
“소리꾼들의 호흡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듣는 사람들이에요. 클래식의 경우에도 마니아들은 마리아 칼라스가 살이 쪘을 때와 빠졌을 때 소리가 다르다는 걸 안다고 하잖아요. 김연아 선수가 은반 위에서 스핀을 몇 번 했냐, 점프를 얼마만큼 아름답게 했냐를 두고 완성도 점수를 주잖아요. 판소리는 관객과 합이 돼서 네 감정 내 감정이 마구 섞이는 공연입니다. 귀 밝은 귀명창들이 오시면 판이 확 살아요.
판소리도 시김새라고 해서 여러 표현이 있는데 귀명창들은 그런 거를 잘 따라가면서 같이 응원해 줍니다. 잘되면 ‘얼씨구’ ‘좋구나’ 추임새를 그 자리에서 넣어주는 식으로요. 이걸 시각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내가 지금 ‘빨강’까지 가야 하는데 붉은 핑크밖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얼씨구 얼씨구’ 응원을 해주면서 막 저를 ‘빨강’까지 끌고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같은 흥보가라고 해도 관객이 다르기 때문에 매번 달라요.
제가 어렸을 때는 종로에 전국에서 모인 귀명창들이 북을 치고 노는 ‘북 방’이란 게 있었어요. 그분들 중에는 20년, 30년 판소리를 들어 명창들 개인사까지 꿰는 분들이 계시죠. 이런 분들 앞에서 몇 시간씩 소리를 하면 ‘인생 더 살아보아야 제대로 허겄다, 설움을 더 느껴야 혀’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인종 뛰어넘어 한복 입고 판소리하는 날 꿈꿔
판소리적 상상력을 인생에 비유한다면?
“또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판소리 가사는 옛날 건데 사실 제 가슴속에는 다 현재 이야기예요. 춘향이, 흥부, 심청이, 적벽가의 조조 이야기가 다 옛날이야기이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다 존재하는 캐릭터니까요.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고 권력 다툼도 있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이 들어 있어요. 적벽가만 해도 생과 사를 넘나드는 가장 스펙터클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적벽가 중 ‘새타령’을 특히 좋아하는데, 적벽강에서 죽은 백만 군사가 조조를 원망하는 새가 돼서 그 한을 뿜어내는 대목이죠. ‘산천은 험준하고 수목은 총잡하여…’로 시작해 중모리장단으로 쭉 부르는데 병을 고쳐주고 싶어 하는 새, 가난을 극복하려고 하는 새 등 새마다 다 스토리가 있어요. 그걸 표현하면서 부르면 마치 제가 적벽강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적벽가는 중국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 건데 이걸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중국에도 없어요. 저는 판소리가 대한민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갖는 보편적 정서와 가치를 담고 있다고 봐요.
옛날에는 초상집에 가서도 창을 했잖아요.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실제로 판소리를 하며) 아이고 아이고 어쩌고 가셨어요? 이제 가면 언제 와요? 올 날이나 일러주소. 이렇게 말이죠. 그게 판소리죠.”
소리를 하면 위로가 되나요.
“너무너무 힐링이 되죠. 속에 있는 걸 쏟아내니까.”
우울증에도 좋겠는데요(웃음).
“실제로 우울증 치료받은 사람 많아요.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자기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수 있고. 요즘 같은 계절에 등산 가서 산꼭대기에 올라 (다시 판소리로)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 곧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만 세상사 쓸쓸하더라~ 이러면서 내 감정을 자연에 표현해 보세요. 속이 뻥 뚫릴걸요.”
세계판소리협회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요.
“판소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어떤 채널이 있어야 되겠다 생각하던 차에 ‘세계태권도연맹’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태권도도 모여서 하는데 판소리도 모여서 하자, 그것도 세계를 겨냥해서! 이런 생각이 든 거죠.
지금 전 세계 세종학당에 한국어 붐이 일고 있잖아요. 베트남 같은 경우 제2외국어가 한국어예요. 저도 가보았는데 너무들 좋아하는 거예요. 악기가 필요 없죠. 서울문화재단 지원을 받아서 교재도 만들었어요. 이걸 가지고 해외에 가서 교육하고 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같이 ‘세계판소리 총궐기(웃음)’ 하는 ‘월드판소리 페스티벌’을 하고 싶어요. 흑인 백인이 다 모여서 한복 입고 판소리 부르는 날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제자 중에 카메룬계 프랑스인 마포 로르 씨가 있던데요.
“올해 4학년이 됐네요. 1984년생인데 프랑스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한국에 와 다시 신입생이 됐어요. 삼성전자 프랑스 지사에 다녔는데 한국어를 배우려고 찾아간 한국문화원에서 춘향가 ‘쑥대머리’ 공연을 보고 꽂혀서 인생을 바꿨대요.”
판소리에 담긴 한의 정서를 외국인들이 이해할까요.
“평생 소리꾼으로 판소리 공부를 하다 보니 한의 정서란 게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삶에서 해결되지 않은 슬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의 무거움, 인간의 보편적인 희로애락, 생로병사의 고통은 나라와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한의 정서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가사를 너무 잘 이해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친절이야말로 종교’라고 했지요. 공연에서도 느꼈지만 굉장히 따뜻한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판소리가 주는 에너지입니까.
“판소리 하나하나가 인문학 교과서입니다. 그걸 감정에 실어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의 에너지가 없어서는 안 되죠. 이 대목에서 스승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박송희 선생님은 삶의 그늘을 바라봐 주시는 분이셨어요. 인간문화재였지만 너무 가난했고 힘들게 사셨어요. 하지만 참교육자셨습니다. 공연장에 가면 경비 아저씨, 의상실 식당 아줌마부터 먼저 챙기는, 남을 배려하시고 겸손하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 먼저 다가가신 어른이셨어요. 저는 스승님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공부했습니다. 판소리와 삶이 하나였던 분이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판소리를 하는 힘은 스승님에게서 나온 겁니다. 저한테 모든 걸 아낌없이 주셨기 때문에 그 은덕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동아 2024년 5월호
출처: 신동아:https://shindonga.donga.com/people/article/all/13/4910722/1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하는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 세계판소리협회 만든 명창 채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필자_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허문명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 시리즈로 사회문화 각계의 다양한 생각을 조명한다. 저서로 <김지하와 그의 시대>, <여성이여 세상의 멘토가 되라>, <삶의 나침반 1,2>,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가 있다.
신동아는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 시리즈를 새로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 선보이는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는 지역사회나 공간을 기반으로 인문가치를 고민하고 이를 새로운 시대의 언어와 메시지로 알리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한다. 여섯 번째 주인공은 판소리 세계화를 일구고 있는 채수정 명창이다. <편집자 주>
판소리 세계화를 일구고 있는 채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상윤 객원기자]
오후 3시에 시작된 공연이 저녁 7시에 끝나자 작품을 ‘감상했다’는 느낌보다 관람객인 나도 ‘함께 해냈다’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다. 올 초 국립중앙 극장에서 열린 채수정 완창 판소리 ‘적벽가’는 개인적으로 문화적 충격이었다. 판소리 완창은 소리꾼 한 명이 마당 하나 전체를 짧게는 3시간, 길게는 8시간에 걸쳐 부르는 공연이다.
완창 공연을 리얼타임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흔히 판소리 완창은 마라톤에 비유된다. 긴 시간 동안 지치지 않는 체력도 있어야 하고 많은 대사를 놓치지 않는 기억력, 관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적절하게 농담도 하는 순발력, 북을 치는 고수와의 소통과 호흡 조절력 등 여러 능력이 요구된다. 채수정 명창 공연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이수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인 채 명창은 2022년에는 ‘세계판소리협회’를 만들어 판소리를 세계로 발신하는 일도 하고 있다. 소리하랴, 제자 키우랴, 하루 스물네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삐 살고 있다는데 도대체 저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연구실이 있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로 향하면서 그런 질문에 답을 찾고 싶었다.
판소리는 ‘통의 소리’
연구실 문을 노크하자 얼굴에 함박웃음을 띤 그녀가 기자를 맞았다. 벽 한편이 국악 CD와 관련 고서, 북과 장구로 가득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조간신문에 난 기사가 떠올라 먼저 화제로 삼았다.
광주 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외국인 예술감독이 국내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판소리처럼 누구나 경계 없이 목소리 내는 판을 펼치겠다’고 하더군요. 아니, 외국인이 어떻게 판소리 정서를 알고 있을까, 더군다나 미술 전시에 판소리라니 그만큼 세계화됐다는 말인지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판소리’라는 말이 보통명사가 됐나 봐요.
“그런 인터뷰가 있었나요. 소리꾼으로서 너무 반가운 소식이네요.”
명창 앞에서 해도 되는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판소리란 뭔가’ 하는 근원적 질문이 떠올라요. 사전적 언어로 하면 부채를 든 소리꾼이 고수 장단에 맞춰 노래(창), 말(아니리), 몸짓(발림)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내는 공연예술이라고 할 수 있지요.
“판소리란 무엇인가라니 정말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네요(웃음). 제가 살을 좀 붙이자면 ‘판소리’ 할 때 판은 ‘씨름판’ ‘놀이판’ ‘살판’ ‘죽을 판’ ‘난장판’ ‘먹자판’처럼 뭔가가 벌어지는 어떤 공간적 개념인데 단지 대상화된 스테이지가 아니라 열려 있는 공간을 말합니다. 그 안에 소리가 있는 거죠. 이야기 처음부터 끝이 있는 ‘통의 소리’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통의 소리’라 함은 뭘까요.
“이른바 스토리텔링이죠. 예를 들어 심청이 태어나면서부터 시련을 겪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고 나중에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하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이 있는 스토리가 통으로 구성돼 있다는 겁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소리’죠. 우리가 노래라고 할 때는 인간의 목소리로 가사를 부르는 것을 말하잖아요. 판소리의 소리는 훨씬 더 넓어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심지어 귀신 소리까지 있어요. 예를 들어 춘향가에서 이도령을 그리는 춘향이가 옥중에서 내일 죽게 생겼는데 귀신들이 두런두런하는 소리가 있어요. 이런 소리도 내야 하니 소리꾼이 표현해야 하는 소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발성에서 머리나 가슴을 안 쓰고 단전에서 밀고 나오는 호흡으로 하기 때문에 동굴 속에서도, 폭포수 밑에서도 소리를 하는 겁니다. 자연에서 연마해 득음의 소리를 얻어내는 게 판소리의 매력이죠.”
내친김에 판소리의 역사까지 거슬러 물었다.
“판소리를 지칭하는 명칭은 문헌에 따라 소리, 창, 타령 등등 다양하게 나와요. 우리가 지금 부르는 ‘판소리’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성립했는지에 대해서는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17세기 중·후반 서민층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통설입니다.
주로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전국적으로 퍼져 있었다고 보는 설이 맞아 보여요. 전라도권에서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장르가 나오고 육자배기, 무속음악 씻김굿도 있고 명창도 많이 나오긴 했지만 경기도·충청도·경상남도·경상북도에도 다 명창이 있었습니다. 소리도 그 지역만의 패턴이 있어요.
이를테면 충청도 판소리는 약간 덤덤하게 부르는데 말 자체가 그렇잖아요. 판소리에서는 소리꾼뿐 아니라 소리를 제대로 듣는 ‘귀명창’도 중요한데 이런 분들은 함경도에 많았대요. ‘남도에서 소리를 배워 함경도 가서 소리를 닦았다’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어떻든 조선반도 전체가 판소리의 나라였습니다.”
트로트 열풍이 놓치고 있는 것
그는 소리꾼이기도 하지만 판소리를 연구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한국음악과에서 공부해 최초의 판소리 음악학 박사가 됐을 뿐 아니라 고전문학인 판소리 사설을 연구해 경희대 국문과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내공 깊은 국문학자들이 스승(인간문화재 박송희)을 찾아와 소리를 배우는 것을 보면서 문학으로서의 판소리에 대한 공부 욕심이 발동했다고 한다.
동편제, 서편제가 워낙 유명해서 호남 지역만 번성했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어요.
“이론가들이 정리하면서 지역적으로 나누고 스타일을 틀 안에 넣다 보니 나온 개념이라고 할 수 있죠.”
판소리를 따로 감상할 기회가 적다 보니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공부부터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요.
“옛날 판소리는 음담패설, 사회풍자, 탐관오리 비판도 많았어요. 사람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모이면 북을 치고 하면서 연극처럼 뮤지컬처럼 한 거예요. 앞서 언급하신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님은 그런 점에서 판소리의 개방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신 거죠.
판소리는 19세기에 융성하는데 그전까지 정말 서민들의 오락이었어요. 그러던 것이 양반들도 즐기는 문화가 된 거죠. 왕 앞에서 부르는 ‘어전 광대’도 등장하니까요. 이러다 보니 이야기가 엄숙해지고 사대부들이 좋아하는 유교적 내용이 들어가면서 변형됩니다. 대원군도 판소리를 좋아했어요.”
어전 광대라고 하니 옛날 서양 오페라처럼 귀족 앞에서 노래하는 소리꾼이 그려지네요.
“맞아요. 하층이었던 판소리 광대들이 신분 상승을 합니다. 그게 모티베이션이 돼서 치열한 경쟁과 수련이 시작돼 유파도 생기는데 한편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린 측면도 있어요. 가루지기타령, 배비장전 이런 것들은 남녀상열지사라고 해서 아예 없어져 버렸죠.”
일제 때는 어땠나요.
“그 시대가 참 아이러니인데요. 서양 문물이 들어와 녹음이 시작되면서 명창들이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소리를 해요. 그게 지금 음원으로 보존돼 있어서 연구하고 지도가 가능해졌습니다. 일제 때 임방울 선생 ‘쑥대머리’ 음반은 당시에도 10만 장이 넘게 팔렸다고 해요.”
그는 판소리가 일제강점기와 광복을 거치며 원형을 잃어버린 것이 제일 안타깝다고 했다.
“광복 후에는 명창들이 월북도 많이 했어요. ‘열사가’를 지으신 박동실 명창을 비롯해 오태석, 정남희 등 제자들을 키우던 선생님들이 다 올라가 버리면서 맥이 끊어졌죠. 제가 1980년 무렵 소리를 시작했는데 ‘기생 되려고 하느냐’ 소리를 대놓고 들었을 정도로 편견이 심했어요. 저도 어릴 적엔 피아노를 치고 합창단을 하다가 국악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시작했어요. 원래는 가야금을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너는 판소리해라’ 하셔서 진로를 바꿨습니다. 어느 날 안숙선 선생님이 학교에 오셔서 농부가 민요를 가르쳐주신 적이 있는데 너무 감동해서 지금까지도 좋은 소리를 만나면 그때 그 느낌이 되살아나요.”
그는 국악고 2학년 때 스승 박송희를 만나 스승이 세상을 떠나는 2017년까지 30년 넘게 사사했다. 그러던 중 2011년 임방울국악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으며 명창 반열에 올랐다. 국내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브라질 등 해외에서도 ‘흥보가’ ‘적벽가’를 수시로 완창했다.
2007년 임방울국악제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하던 당시의 채수정 명창.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진도가 고향이고 집안 분위기가 판소리를 일상으로 했다고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고모들이 진도아리랑, 판소리, 육자배기를 즐겨 부르며 노는 문화에서 자랐죠. 고모들이 특히 소리를 잘했는데 가족들이 모이면 완창 발표회가 열릴 정도였습니다.
제가 대학교 들어갈 때는 마당놀이가 생기면서 판소리 창작 붐이 일어나는데 ‘국악가요’라는 이름으로 실내악단이 생기고 현대화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원형을 잃어버리는 부작용도 있었죠. 원형을 더 살릴 수 있었다면 레퍼토리도 더 많아지고 풍부해졌을 텐데….”
그는 자신에 대한 자랑보다 국악계 전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요즘 젊은이들이 판소리를 비롯해 현대화된 국악을 만들고 즐기는 것은 반가운 일로 보이는데요.
“속사정은 좀 달라요. 인구 감소에 따른 것도 있지만 판소리에 올인하는 친구가 많이 줄었어요. 트로트 붐이 일면서 그쪽으로 많이 가기도 하고요. 판소리로 대성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자꾸 외부에서 콜이 오니까 그쪽으로 가버려요.
물론 제 입장에서는 텔레비전에서 제자들 보면 반갑고 그 제자들이 판소리 어법으로 노래를 부르니까 판소리를 알리는 효과는 분명히 있어서 반갑습니다. 다만, 저는 선생이다 보니 정말 대명창이 될 수 있는 학생들이 너무 빨리 재능을 소진해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죠. 새로움을 향해 가는 건 당연하긴 한데 원래의 씨앗은 누가 지킬 것인지 이런 생각을 하죠.
판소리 같은 무형문화재는 보유자들이 돌아가시면 다 없어져요. 소리는 입에서 입으로, 호흡에서 호흡으로, 무릎과 무릎을 맞대며 이어져야 하는데 말이죠. 저희들은 ‘선생님 침을 먹고 소리를 배운다’고 했어요. 20년 이상씩 시봉을 하면서 도를 닦듯이 음(音)으로 세상을 얻는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이른바 득음을 하는 명창이 계속 나와야 판소리가 살아 있는 거예요.”
소리꾼이자 이론가이기도 한 채수정 명창이 펴낸 해설서들. [허문명 기자]
외롭고 힘든 득음의 경지
득음의 경지라는 건 누가 판단합니까.
“어려운 질문입니다. 소리꾼 한 사람의 삶을 60년, 70년으로 잡으면 스승에게 20년 배우고 10년을 혼자 독공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판소리를 알리는 거예요.
어떻든 득음의 경지란 것이 30년 공부를 해도 될까 말까인데 요즘 사람들이 어떻게 30년을 학습하겠습니까? 강요할 수도 없고요. 저는 사실 엄청난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말을 쏟아내던 그가 잠시 한숨을 쉬며 멈추더니 이어갔다.
“득음의 경지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큰스님께 ‘득도하셨습니까?’ 묻는 거나 똑같아요. 어떻든 질문에 답을 하자면 ‘그 경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네요.”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 경지가 뭔지는 잘 모르는데 아주 미세하게 찾아가지는 지점은 보이거든요.”
소화할 수 있는 음역이 높아지는 건가요.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소리를 다 낼 수 있는 경지죠. 높은 소리, 낮은 소리, 큰 소리, 작은 소리를 자유자재로 내면서 가사가 담고 있는 뜻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가슴으로 받아서 부르는 경지죠. 판소리는 1인극이잖아요. 남자, 여자, 노인부터 아기 목소리도 내야 할 때가 있고 직업도 다양합니다. ‘적벽가’ 등장인물들은 군인 아닙니까. 거기다 귀신 소리까지 내야 한다고 했죠. 이 모든 걸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할 때 득음했다고 할 수 있겠죠. 사실 모든 예술 영역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득음의 경지로 가는 길은 힘들고 어려운 거죠.”
흔히 득음이라고 하면 폭포수 밑에서 수련하는 이미지가 떠올라요.
“득음을 위해 목이 쉬어 터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산에서 수련하는 ‘100일 공부’를 하는데 목을 파괴하고 그 기운을 얻기 위한 거예요. 폭포수에서 혹은 동굴 속에서 온 정신을 쏟아서, 목이 쉰 상태에서 계속 노래를 하다 보면 힘만 들어가고 소리가 안 나오는데 그때 공력이 붙는 거예요. 그러다 어느 순간 배 속에 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소리가 나요. 그렇게 해야 되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 수련을 못 해요.”
예를 들어 마리아 칼라스는 득음한 사람입니까.
“허리를 단전에 밀어갖고 하는 통성 발성이 굉장히 잘돼 있어요. 저도 마리아 칼라스, 파바로티 소리 좋아합니다. 또 멜러니 사프카의 ‘The Saddest Thing’ 너무 좋아합니다(웃음). 득음이란 게 이처럼 판소리꾼만의 경지는 아닙니다. 다만 4시간 5시간 6시간 8시간 계속 부른다는 게 특이한 거죠.”
저도 진짜 놀랐습니다. 가사를 외우기도 힘들 텐데 어떻게 가능한가요.
“말하듯이 하니까요. 사실 그게 원래 소리의 본질이죠. 오페라는 ‘말하듯이’가 아니죠. 성악하시는 선생님들 말을 들으면 오히려 성대를 상하게 한다고 해요.”
‘귀명창’이 오면 판이 확 산다
판소리라는 게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등 열두 마당이 딱 정해져 있잖아요. 어찌보면 계속 똑같은 노래의 반복인데.
“제 아이가 저한테 ‘엄마는 맨날 흥보가만 한다’고 놀려요. 제가 흥보가 이수자인데 박록주, 박송희 저 3대로 이어져 그 똑같은 노래를 30년 동안 부르니까 딸이 지금 스물아홉 살인데 배 속에서부터 듣던 흥보가를 지금까지도 듣는 거거든요. 하지만 부를 때마다 다릅니다. ‘귀명창’들은 ‘채수정이 작년 소리 다르고 올해 소리 다르다’ 이러세요.”
‘귀명창’이란 단어가 참 좋습니다.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려요.
“소리꾼들의 호흡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듣는 사람들이에요. 클래식의 경우에도 마니아들은 마리아 칼라스가 살이 쪘을 때와 빠졌을 때 소리가 다르다는 걸 안다고 하잖아요. 김연아 선수가 은반 위에서 스핀을 몇 번 했냐, 점프를 얼마만큼 아름답게 했냐를 두고 완성도 점수를 주잖아요. 판소리는 관객과 합이 돼서 네 감정 내 감정이 마구 섞이는 공연입니다. 귀 밝은 귀명창들이 오시면 판이 확 살아요.
판소리도 시김새라고 해서 여러 표현이 있는데 귀명창들은 그런 거를 잘 따라가면서 같이 응원해 줍니다. 잘되면 ‘얼씨구’ ‘좋구나’ 추임새를 그 자리에서 넣어주는 식으로요. 이걸 시각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내가 지금 ‘빨강’까지 가야 하는데 붉은 핑크밖에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얼씨구 얼씨구’ 응원을 해주면서 막 저를 ‘빨강’까지 끌고 올라가는 거죠. 그래서 같은 흥보가라고 해도 관객이 다르기 때문에 매번 달라요.
제가 어렸을 때는 종로에 전국에서 모인 귀명창들이 북을 치고 노는 ‘북 방’이란 게 있었어요. 그분들 중에는 20년, 30년 판소리를 들어 명창들 개인사까지 꿰는 분들이 계시죠. 이런 분들 앞에서 몇 시간씩 소리를 하면 ‘인생 더 살아보아야 제대로 허겄다, 설움을 더 느껴야 혀’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인종 뛰어넘어 한복 입고 판소리하는 날 꿈꿔
판소리적 상상력을 인생에 비유한다면?
“또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판소리 가사는 옛날 건데 사실 제 가슴속에는 다 현재 이야기예요. 춘향이, 흥부, 심청이, 적벽가의 조조 이야기가 다 옛날이야기이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다 존재하는 캐릭터니까요.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고 권력 다툼도 있고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이 들어 있어요. 적벽가만 해도 생과 사를 넘나드는 가장 스펙터클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적벽가 중 ‘새타령’을 특히 좋아하는데, 적벽강에서 죽은 백만 군사가 조조를 원망하는 새가 돼서 그 한을 뿜어내는 대목이죠. ‘산천은 험준하고 수목은 총잡하여…’로 시작해 중모리장단으로 쭉 부르는데 병을 고쳐주고 싶어 하는 새, 가난을 극복하려고 하는 새 등 새마다 다 스토리가 있어요. 그걸 표현하면서 부르면 마치 제가 적벽강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적벽가는 중국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 건데 이걸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중국에도 없어요. 저는 판소리가 대한민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갖는 보편적 정서와 가치를 담고 있다고 봐요.
옛날에는 초상집에 가서도 창을 했잖아요. 그냥 우는 게 아니라 (실제로 판소리를 하며) 아이고 아이고 어쩌고 가셨어요? 이제 가면 언제 와요? 올 날이나 일러주소. 이렇게 말이죠. 그게 판소리죠.”
소리를 하면 위로가 되나요.
“너무너무 힐링이 되죠. 속에 있는 걸 쏟아내니까.”
우울증에도 좋겠는데요(웃음).
“실제로 우울증 치료받은 사람 많아요.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자기 스스로를 돋보이게 할 수 있고. 요즘 같은 계절에 등산 가서 산꼭대기에 올라 (다시 판소리로)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 곧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만 세상사 쓸쓸하더라~ 이러면서 내 감정을 자연에 표현해 보세요. 속이 뻥 뚫릴걸요.”
세계판소리협회는 어떻게 만들게 된 건가요.
“판소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어떤 채널이 있어야 되겠다 생각하던 차에 ‘세계태권도연맹’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태권도도 모여서 하는데 판소리도 모여서 하자, 그것도 세계를 겨냥해서! 이런 생각이 든 거죠.
지금 전 세계 세종학당에 한국어 붐이 일고 있잖아요. 베트남 같은 경우 제2외국어가 한국어예요. 저도 가보았는데 너무들 좋아하는 거예요. 악기가 필요 없죠. 서울문화재단 지원을 받아서 교재도 만들었어요. 이걸 가지고 해외에 가서 교육하고 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같이 ‘세계판소리 총궐기(웃음)’ 하는 ‘월드판소리 페스티벌’을 하고 싶어요. 흑인 백인이 다 모여서 한복 입고 판소리 부르는 날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제자 중에 카메룬계 프랑스인 마포 로르 씨가 있던데요.
“올해 4학년이 됐네요. 1984년생인데 프랑스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한국에 와 다시 신입생이 됐어요. 삼성전자 프랑스 지사에 다녔는데 한국어를 배우려고 찾아간 한국문화원에서 춘향가 ‘쑥대머리’ 공연을 보고 꽂혀서 인생을 바꿨대요.”
판소리에 담긴 한의 정서를 외국인들이 이해할까요.
“평생 소리꾼으로 판소리 공부를 하다 보니 한의 정서란 게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삶에서 해결되지 않은 슬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의 무거움, 인간의 보편적인 희로애락, 생로병사의 고통은 나라와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한의 정서더라고요. 그렇다 보니 가사를 너무 잘 이해합니다.”
달라이 라마는 ‘친절이야말로 종교’라고 했지요. 공연에서도 느꼈지만 굉장히 따뜻한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판소리가 주는 에너지입니까.
“판소리 하나하나가 인문학 교과서입니다. 그걸 감정에 실어 노래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의 에너지가 없어서는 안 되죠. 이 대목에서 스승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박송희 선생님은 삶의 그늘을 바라봐 주시는 분이셨어요. 인간문화재였지만 너무 가난했고 힘들게 사셨어요. 하지만 참교육자셨습니다. 공연장에 가면 경비 아저씨, 의상실 식당 아줌마부터 먼저 챙기는, 남을 배려하시고 겸손하시고 보이지 않는 곳에 먼저 다가가신 어른이셨어요. 저는 스승님으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공부했습니다. 판소리와 삶이 하나였던 분이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판소리를 하는 힘은 스승님에게서 나온 겁니다. 저한테 모든 걸 아낌없이 주셨기 때문에 그 은덕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동아 2024년 5월호
출처: 신동아:https://shindonga.donga.com/people/article/all/13/4910722/1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하는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 세계판소리협회 만든 명창 채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필자_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허문명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 시리즈로 사회문화 각계의 다양한 생각을 조명한다. 저서로 <김지하와 그의 시대>, <여성이여 세상의 멘토가 되라>, <삶의 나침반 1,2>,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