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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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명상] 명상,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만나는 길 (김진하 연구원)

2024-09-25

명상,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만나는 길


명상이 유행하고 있다. 마치 태권도가 유행을 하고, 요가가 유행을 하고, 바디빌딩이 유행을 하는 것처럼 명상도 유행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명상을 꼭 해야 한다는 말도 전해지고,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명상을 한다거나 올바른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명상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전해지면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명상을 시작하고 싶다면 명상을 가르치고 안내하는 전문 센터를 찾아가서 할 수도 있지만, 집에서 혼자 해보고 싶은 사람들도 명상을 시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핸드폰에서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아서 할 수도 있고, 당장 유튜브에서 검색만 해봐도 명상을 안내해주는 영상들이 수없이 많다.



이렇게 명상이 대중화 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여전히 명상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명상의 종류가 다양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입문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눈을 감고 시도해봤지만 마음이 고요해지기 보다 오히려 생각과 감정이 마음을 가득 채우게 되자 명상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명상을 오랫동안 하면서 마음이 더 복잡해지고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봤다.

위와 같이 명상을 하면서 “실패”했거나 “악화”되었다고 여기는 경우에는 명상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명상의 목표를 생각과 감정이 제거되어 고요하고 초연한 상태를 이루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고요하고 초연한 상태가 되지 않았을 때에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명상에 실패했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고요함을 찾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명상을 통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불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대할 수 있다. 명상을 함으로써 몸이 이완되고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명상의 목적 자체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명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부산물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명상을 하는 것이 좋을까?

더 확장된 관점에서 보면, 명상을 하는 동안 우리가 정말로 하게 되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명상을 하면 우리 내면에 있지만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생각과 감정이 의식으로 올라와서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불편한 감정들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는 명상에 실패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상이 아주 잘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상 중에 떠오른 생각, 감정들은 오랫동안 억눌리거나 외면되었던 내면의 부분들로, 우리 안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트라우마와 연결되어 있다. 명상은 이러한 생각, 감정들이 표면으로 올라오게 함으로써 자신을 전체적, 통합적으로 만나고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명상을 통해서 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생각과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느끼며 통과해 나가는 것이다.

만약 명상 중에 올라오는 생각, 감정과의 대면을 피하고 고요함과 초연함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면, 우리는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무시하게 된다. 이러한 회피는 결국 감정적 성숙을 가로막고, 내면의 갈등을 깊숙이 묻어두게 만든다. 마치 표면적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상태와도 같다. 영적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는 것이다. 이를 ‘영적 우회(spiritual bypassing)’라고도 말한다.

‘영적 우회’라는 개념은 심리학자 존 웰우드(John Welwood)에 의해 제시되었으며, 이는 영적 수련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 사람들은 종종 명상이나 영적 실천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이나 고통을 직면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뛰어넘고 싶어 하며, 초연함이나 영적인 깨달음을 목표로 삼아서 자신의 감정과 문제를 억누르거나 무시, 부정, 회피하려고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을 느끼고 있을 때, 그 불안을 직접 다루고 마주하기보다는 명상을 통해 감정을 없애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려고 시도한다면 이는 영적 우회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영적 우회를 하는 경우에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불안, 분노, 슬픔과 같은 불편한 감정이나 역기능적인 생각이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억눌리게 된다.

이와 같이 명상을 통해 더욱 편안하거나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과정에서 자신 안에 불편한 감정이나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되면, “나는 고통 없이 편안하고 성숙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자아상을 굳건하게 만들면서 진실하게 내면을 돌아볼 여지가 더욱 줄어들게 된다. 또한 억눌린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더욱 강력한 방식으로 돌아오게 되기 때문에, 오히려 명상을 하지 않는 것보다도 정신적 건강과 심리적 문제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고요함과 초연함을 추구하기보다 생각과 감정을 진실하게 직면하는 것의 중요성은 칼 융(Carl Jung)이 ‘개성화 과정’이라고도 말한 진정한 자기(Self)를 만나는 여정에서도 강조된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무의식과 의식의 요소들을 통합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 중 하나가 바로 그림자(Shadow)와의 직면이다. 그림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해서 부정, 억압, 회피해온 내면의 어두운 측면을 상징한다.



무의식 속에 억눌린 그림자는 우리의 행동과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종종 투사(projection)라는 형태로 타인에게 비춰진다. 예를 들어, 자신이 내면적으로 불안하면서 그러한 불안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불안을 타인에게 돌려서 비난하며 그들의 불안을 과장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이러한 투사는 결국 자기 이해와 타인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며,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 그림자가 무의식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또 다른 예로는 특정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분노를 느끼거나 비합리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고, 타인에 대한 과도한 비판을 하거나 동일한 유형의 인간관계 문제를 지속적으로 겪는 경우도 있다.

융은 자아의 전체적인 통합을 실현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그림자를 마주하고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림자를 직면하는 것은 곧 억압되어 있던 감정이나 생각을 인정하고, 그것이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빛과 어둠을 모두 수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얻고 온전하게 수용하면서 내적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림자를 회피하지 않을 때 더 이상 그것에 휘둘리지 않게 되며, 그것을 긍정적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명상은 그림자를 대면함으로써 정신적 통합과 성장을 이루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명상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의식적으로 억눌린 감정과 생각들이 부상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한다. 명상은 단순히 마음을 진정시켜서 고요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그림자를 포함한 모든 감정과 생각을 마주하는 여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면에 있는 것들을 진실하게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 명상을 하게 되면 우리는 명상 중에 드러나는 감정과 흐르는 생각을 억지로 멈추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된다. 오히려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감정과 생각의 변화와 흐름을 인정하는 과정 속에 있게 된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긍정적인 감정만을 유지하려 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명상은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허물고, 모든 감정이 지나가는 구름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의 분노, 두려움, 슬픔조차도 그저 나의 한 부분일 뿐, 그것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마음이 고요할 때나 불안할 때나, 그 모든 것이 나의 일부로서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외 없이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따뜻한 시선이란, 우리의 감정이나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마치 다정한 친구가 우리를 이해하고 위로하듯이 바라보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나에게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감정이 그 순간에 자연스러운 것이며, 잘못된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만약 명상에서 따뜻한 시선이 빠지게 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분석하고 비판하게 된다. 예를 들어, 명상 중 불안감이 올라오면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해하지?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자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그 불안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 불안이 단지 지나가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지금 불안해하고 있구나”라고 말하며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바로 따뜻한 시선의 힘이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기에,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때로는 혼란스럽거나 비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명상을 할 때, 명상은 고요함이나 완벽함을 추구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면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된다.

 


이처럼 명상을 통해 훈련하게 되는 따뜻한 시선은 우리에게 자비와 인내를 가르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실수와 어려움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비난하고 자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지만, 명상을 통해 배우는 것은 그 반응조차도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비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종합해보면, 우리가 명상을 하면서 마음을 고요하고 초연한 상태로 만들어서 내면의 평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내면의 평화는 고요함과 초연함을 추구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끄럽고 어두운 부분을 기꺼이 마주하고 통과할 때에 내적 평화는 찾아오기 시작한다. 명상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인정하면서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책망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내면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마주하다 보면, 우리 안에 있는 보물들도 만나게 되며 그 안에는 그림자를 모두 감싸 안을 수 있는 밝은 빛도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따뜻한 시선’ 자체가 나 자신에게 주고 세상에 나눌 수 있는 가장 밝은 빛의 한 줄기라는 것도 알게 된다. 따뜻한 시선 안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순간,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느끼면서도 휘둘리지 않는 상태에 있게 되며 진정으로 고요하고 초연한 마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필자_김진하 연구원

ICS상담센터 상담사/명상안내자

심리상담을 기반으로 최면, 명상 등의 방법을 활용하고 있으며, 인간 의식의 치유와 성장에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