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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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희망] “무엇”과 “어떻게” (나진경 교수)

2023-04-05

“무엇”과 “어떻게”

“내 적성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고 싶다” 학교에서 자주 듣게 되는 학생들의 고민이다. 학생들의 이런 고민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그에 맞는 일을 하는 것만큼 의미있고 행복한 삶이 또 어디 있겠는가? 사실 학생들뿐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며 그에 맞춰 삶을 설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빈약한 경험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지속되고 있는 MBTI에 대한 관심도 이런 사람들의 마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설사 알게 되더라도 그에 딱 맞는 일을 하게 되는 행운도 쉽게 찾아 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걱정할 필요는 없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자신에게 딱 맞는 ‘무엇’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높은 직업 윤리를 바탕으로 프로페셔널하게 주어지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더라도 그 일에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처럼 관심의 초점을 ‘무엇’에서 ‘어떻게’로 바꾸면 나에게 맞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한 불확실성과 내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에서 조금은 해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아닌 ‘어떻게’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얻게 되는 또 다른 이점은 과정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과 적성은 완성된 정답의 형태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삶의 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개발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타고난 기질과 성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어 경험과 환경에 의해 변할 수 있다. 어떤 종의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행동하며 성인 개체와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아기는 그렇지 않다. 다른 종에 비해 더 긴 배움과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의 갈림길에서 타고난 습성과 본능에만 의지하기 보다는 경험과 학습을 통해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리학과 뇌과학의 많은 연구들이 경험에 따라 인간의 뇌가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무엇’에 집착하여 정해진 정답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삶의 과정속에서 나의 정체성과 적성을 ‘어떻게’ 형성해 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더 인간적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변하지 않는 본질과 실체가 있다는 믿음 보다는 변화하고 개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더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산다고 한다. 스탠포드 심리학자 Carol Dweck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능력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공에 도취하거나 실패를 부정하며 종국에는 노력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인간의 능력이 개발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성공에 겸손하며 실패를 인정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등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나와 나의 파트너에게는 변하지 않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일수록 관계 유지를 위한 노력을 경시하는 반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관계 변화에 더 유연하게 대처한다고 한다.

물론 ‘어떻게’로 관점을 전환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 나에게 더 잘 맞는 ‘무엇’이 존재하고 ‘어떻게’해도 안되는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충분히 고민하고 망설였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무엇’을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에게 딱맞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해나가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조금 더 잘알게 되고, 하고 있는 일도 조금씩 조금씩 나와 맞아들어가는 기적이 생기지는 않을까? 희망을 걸어야 한다면 시작부터 나에게 꼭 맞는 ‘무엇’을 찾게 되는 기적보다는 이런 종류의 기적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나진경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및 희망연구소 소장
사회문화적인 요인을 중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사회심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