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생애사 전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국의 저출산
“0.78.” 2022년의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이다. 2021년도의 0.81이라는 수치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사실, 한국의 출산율은OECD국가들 중 5년째 꼴찌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의 초저출산율(ultra-low fertility rate)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추세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다. 오죽하면 남한의 최대 적은 북핵이 아니라 저출산이라는 지적이 있을까?(New York Times, 2021) 게다가 결혼이라는 제도가 젊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점점 인기를 잃어가는 현상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보면, 이러한 추세가 뒤집힐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비혼 출산이 법적 불이익과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그것도 아주 급격하게) 이러한 추세는 뒤집힐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 역시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행한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 2006 - 2022”에 따르면, 결혼이 삶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그리고 가파르게 감소하여, 2022년에는 전체 응답자의 17.6%를 차지했다. 이를 미래에 결혼을 할 가능성이 그 중에서도 높은 젊은 연령대로 좁혀보면, 그 수치는 더 낮아진다. 19-29세 연령대의 7%, 30-45세의 9%만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조한 결혼율과 출산율이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의 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오는 불길한 현상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는 개인 수준에서 보면 각자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하여 내린 결정들의 집합적인 결과이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출산, 즉, 생식과 관련한 일련의 행동 양식은 개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제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한 사회의 출산율이 낮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개체수를 늘리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는 어떤 모습을 가진 곳일까? 생애사 혹은 한살이 이론(life history theory)이라는 진화생물학적 설명에서 힌트를 얻어보자.
생애사 이론(Life history theory)
모든 생명체는 번식이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자원, 즉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지를 고민한다. 자원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찾는데, 이 때 개체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이 이 전략을 결정한다는 것이 생애사 이론의 주장이다(Charnov, 1993). 원래 생애사 이론은 종(種) 차원의 에너지 배분 전략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가령, 쥐는 생후 5주만에 성적으로 성숙하고 수십 마리의 새끼를 낳고 1-2년 안에 생을 마친다. 반면, 판다는 생후 4년이 지나야 번식을 할 수 있고, 평생 한 마리에서 네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쥐보다는 10배 이상 긴 생애주기를 갖는다. 판다에 비해서 생존의 위협을 주는 천적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쥐는 빠른 생애사 전략을 구사하여 최대한 많은 새끼를 남기는 반면, 판다는 적은 수의 새끼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느린 생애사 전략을 사용한다.
그럼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생식 능력을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아주 적은 수의 자식을 낳고 이들에게 매우 큰 투자를 하는 생존 양식을 갖는다. 이처럼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 매우 느린 생애사 전략을 구사하는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인간종 내에서도 생애사 전략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현대로 오면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짐과 동시에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사회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인간은 더 느린 생애사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는 자녀를 갖기 전에 개인에게 교육과 투자를 많이 하고, 적은 수의 자녀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즉, 여성의 출산 연령의 지연과 출산율 저하는 주어진 현 시점의 사회에서 최적의 번식을 위한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 사회의 경쟁 정도의 지표로 볼 수 있는 인구 밀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더 느린 생활사 전략을 사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 되었다(Sng, 2016). 구체적으로, 생활사 전략의 대표적 지표인 출산율은 인구 밀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Study 1: r = -.24; Study 2: r = -.50). 이 설명을 현재의 우리나라에 적용해본다면, 우리 사회는 매우 느린 생애사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이는 그만큼 한국 사회가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한 국가가 비단 우리나라 뿐일까.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그 정도와 속도가 그 어떤 나라보다 극단적으로 심각하여 집단의 기능이 퇴행하는 길에 들어서고 있다는 데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명예교수인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2700년경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초저출산율이 한국에서 유독 관찰되는 데에는 한국 특수의 요인과 관련이 있는걸까? 미국의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제이콥 펑크 키르케고르(Jacob Funk Kirkegaard)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은 한 목소리로 초저출산율의 배후로 ‘한국적’인 문화를 지목한다. 이들은 가부장적인 가족문화와 관습이 특히 한국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의지를 꺾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고학력 고소득 여성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선진국답지’ 않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설명은 실제 데이터로도 지지되고 있는데 얼마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보고서(2021)에 따르면, 1인 가구 고소득자중 남성은 60%이상이 결혼을 희망하는 반면, 70%이상의 여성은 결혼 의사가 없다고 응답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이라는 삶의 선택은 남녀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며, 이들이 삶에 적응하기 위하여 택하는 생존 전략 역시 달라지는 것이다. 여성이 맞벌이여도 남성보다 일일 평균 2시간이나 더 일을 많이 하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여성들이 “나쁜 거래”(bad deal)에 응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300조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재정적 지원 위주의 저출산 정책이 참담하게 실패한 이 시점에서는 이 같은 분석에도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고 문헌
• Charnov, E. L. (1993). Life history invariants: Some explorations of symmetry in evolutionary ecology (Vol. 6).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2021). 2022 한국 1인가구 보고서. https://www.kbfg.com/kbresearch/report/reportView.do?reportId=2000320
• New York Times (2021). As Birthrate Falls, South Korea’s Population Declines, Posing Threat to Economy. https://www.nytimes.com/2021/01/04/world/asia/south-korea-population.html
• Sng, O., Neuberg, S. L., Varnum, M. E., & Kenrick, D. T. (2017). The crowded life is a slow life: Population density and life history strateg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5), 736.
• Stansbury, A., Kirkegaard, J. F., & Dynan, K. (2023). Gender gaps in South Korea’s labour market: children explain most of the gender employment gap, but little of the gender wage gap. Applied Economics Letters, 1-6.
#행복 #저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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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수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문화적 맥락이 사람들의 정서, 인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하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
느린 생애사 전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국의 저출산
“0.78.” 2022년의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이다. 2021년도의 0.81이라는 수치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사실, 한국의 출산율은OECD국가들 중 5년째 꼴찌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의 초저출산율(ultra-low fertility rate)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부정할 수 없는 추세라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있다. 오죽하면 남한의 최대 적은 북핵이 아니라 저출산이라는 지적이 있을까?(New York Times, 2021) 게다가 결혼이라는 제도가 젊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점점 인기를 잃어가는 현상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보면, 이러한 추세가 뒤집힐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비혼 출산이 법적 불이익과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그것도 아주 급격하게) 이러한 추세는 뒤집힐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 역시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행한 “한국인의 의식 및 가치관 조사 2006 - 2022”에 따르면, 결혼이 삶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그리고 가파르게 감소하여, 2022년에는 전체 응답자의 17.6%를 차지했다. 이를 미래에 결혼을 할 가능성이 그 중에서도 높은 젊은 연령대로 좁혀보면, 그 수치는 더 낮아진다. 19-29세 연령대의 7%, 30-45세의 9%만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조한 결혼율과 출산율이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의 경쟁력의 약화를 가져오는 불길한 현상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는 개인 수준에서 보면 각자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하여 내린 결정들의 집합적인 결과이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출산, 즉, 생식과 관련한 일련의 행동 양식은 개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기제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한 사회의 출산율이 낮다는 사실은 그 사회가 개체수를 늘리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는 어떤 모습을 가진 곳일까? 생애사 혹은 한살이 이론(life history theory)이라는 진화생물학적 설명에서 힌트를 얻어보자.
생애사 이론(Life history theory)
모든 생명체는 번식이라는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자원, 즉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배분할지를 고민한다. 자원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찾는데, 이 때 개체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이 이 전략을 결정한다는 것이 생애사 이론의 주장이다(Charnov, 1993). 원래 생애사 이론은 종(種) 차원의 에너지 배분 전략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가령, 쥐는 생후 5주만에 성적으로 성숙하고 수십 마리의 새끼를 낳고 1-2년 안에 생을 마친다. 반면, 판다는 생후 4년이 지나야 번식을 할 수 있고, 평생 한 마리에서 네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쥐보다는 10배 이상 긴 생애주기를 갖는다. 판다에 비해서 생존의 위협을 주는 천적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쥐는 빠른 생애사 전략을 구사하여 최대한 많은 새끼를 남기는 반면, 판다는 적은 수의 새끼에게 많은 투자를 하는 느린 생애사 전략을 사용한다.
그럼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생식 능력을 갖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아주 적은 수의 자식을 낳고 이들에게 매우 큰 투자를 하는 생존 양식을 갖는다. 이처럼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 매우 느린 생애사 전략을 구사하는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인간종 내에서도 생애사 전략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환경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현대로 오면서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짐과 동시에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사회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인간은 더 느린 생애사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데, 이는 자녀를 갖기 전에 개인에게 교육과 투자를 많이 하고, 적은 수의 자녀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즉, 여성의 출산 연령의 지연과 출산율 저하는 주어진 현 시점의 사회에서 최적의 번식을 위한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 사회의 경쟁 정도의 지표로 볼 수 있는 인구 밀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더 느린 생활사 전략을 사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 되었다(Sng, 2016). 구체적으로, 생활사 전략의 대표적 지표인 출산율은 인구 밀도가 높은 사회일수록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Study 1: r = -.24; Study 2: r = -.50). 이 설명을 현재의 우리나라에 적용해본다면, 우리 사회는 매우 느린 생애사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이는 그만큼 한국 사회가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반영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한 국가가 비단 우리나라 뿐일까.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그 정도와 속도가 그 어떤 나라보다 극단적으로 심각하여 집단의 기능이 퇴행하는 길에 들어서고 있다는 데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명예교수인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은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2700년경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초저출산율이 한국에서 유독 관찰되는 데에는 한국 특수의 요인과 관련이 있는걸까? 미국의 Peterso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제이콥 펑크 키르케고르(Jacob Funk Kirkegaard)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은 한 목소리로 초저출산율의 배후로 ‘한국적’인 문화를 지목한다. 이들은 가부장적인 가족문화와 관습이 특히 한국 여성들의 결혼과 출산 의지를 꺾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고학력 고소득 여성일수록 출산율이 낮다는 ‘선진국답지’ 않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설명은 실제 데이터로도 지지되고 있는데 얼마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보고서(2021)에 따르면, 1인 가구 고소득자중 남성은 60%이상이 결혼을 희망하는 반면, 70%이상의 여성은 결혼 의사가 없다고 응답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이라는 삶의 선택은 남녀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며, 이들이 삶에 적응하기 위하여 택하는 생존 전략 역시 달라지는 것이다. 여성이 맞벌이여도 남성보다 일일 평균 2시간이나 더 일을 많이 하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여성들이 “나쁜 거래”(bad deal)에 응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300조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재정적 지원 위주의 저출산 정책이 참담하게 실패한 이 시점에서는 이 같은 분석에도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고 문헌
• Charnov, E. L. (1993). Life history invariants: Some explorations of symmetry in evolutionary ecology (Vol. 6).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2021). 2022 한국 1인가구 보고서. https://www.kbfg.com/kbresearch/report/reportView.do?reportId=2000320
• New York Times (2021). As Birthrate Falls, South Korea’s Population Declines, Posing Threat to Economy. https://www.nytimes.com/2021/01/04/world/asia/south-korea-population.html
• Sng, O., Neuberg, S. L., Varnum, M. E., & Kenrick, D. T. (2017). The crowded life is a slow life: Population density and life history strateg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12(5), 736.
• Stansbury, A., Kirkegaard, J. F., & Dynan, K. (2023). Gender gaps in South Korea’s labour market: children explain most of the gender employment gap, but little of the gender wage gap. Applied Economics Letters, 1-6.
#행복 #저출산
고려대학교 심리학부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문화적 맥락이 사람들의 정서, 인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하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최근에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