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호흡과도 같다. 나와 늘 함께 하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인식하며 살진 않는다. 감정을 굳이 들여다볼 필요를 느끼기도 어렵고, 들여다본다고 해서 분명하게 경험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감정의 존재를 특별히 인식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도 전혀 불편함이나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문득, 감정이 의식의 표면 위로 솟구칠 때가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눈물을 쏟거나 극단적인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뜻하는 대로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 아픈 상처가 드러나면서 느끼는 수치심, 관계의 진전을 만들어 나가면서 커지는 만족감 등등. 감정은 때로는 폭풍처럼, 때로는 산들바람처럼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감정이 나를 찾은 듯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감정은 꾸준히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감정이 긍정적이든, 혹은 부정적이든 어떤 색채의 감정이든, 모두,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감정은 신호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 기능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감정은 타고난 것이며 본질적으로 적응적이다(Barrett & Campos, 1987; Levenson, 1994). 다만 내 것이 아닌 감정을 내 것으로 오해하거나 혹은 내 진실한 감정을 내 것이 아닌 양 무시하거나 부인한다면, 나와 나의 경험으로부터 소외된 감정들은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고통을 동반한 채 나를 다시 찾아오게 된다. 결국 불편한 감정들은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혹은 내 경험으로부터 멀어졌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호주로 이민한 후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지내던 희수에게 불면증과 초조함, 불안과 우울이 찾아온 것은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였다. 교외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새롭게 집을 수리하느라 힘에 부쳤고, 무엇보다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두고 자신만 호사를 누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어느 날 문득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란 생각이 들면서 텅 빈 느낌이 들었고 제대로 식사를 못하고 토하는 증상과 함께 몸무게가 줄고 가슴과 얼굴이 조이며 목이 아픈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혼자 누워 있을 때면 호흡이 가빠지면서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희수가 느끼는 감정은 우울과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감정의 색채라고 할 수 있는 느낌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생각과 신체의 변화를 동반한다. ‘나만 이렇게 잘 살고 어머니를 등한시하는 건 아닌가’라던가,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타국에서 외롭게 살겠구나’라는 생각들은 분명 우울의 한 부분이다. 구토감이나 목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수면곤란이나 체중감소, 가쁜 호흡들은 마음의 긴장, 불편감 및 불안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우울과 불안과 같은 감정은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희수의 삶에서 일종의 신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울은 잠시 멈추어서 나를 돌보라는 메세지를 준다. 타국에서의 삶에 적응하느라, 가정을 일구느라 온통 외부로만 향했던 관심을 이제 자신에게로 향하고 이제는 제발 자신을 돌보라는 메세지인 셈이다. 또한 불안한 감정은 삶의 균열을 비집고 스멀스멀 피어나오곤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는 위협이나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조심하라는 신호이다. 또한 불안은 지금까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사용해 온 삶의 방식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내 삶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조절해야 할 필요성을 불안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희수와 같이, 어느 날 문득, 예기치 않게 다가와 문을 두드리는 감정을 만나게 된다면, 가장 우선적으로는 감정의 방문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어떤 감정이든 찾아온 이유가 없지 않을텐데 인식하지 못하고 돌려보낸다고 해서 그 감정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당장은 해소된 듯하지만, 강하게, 더욱 강하게 나를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어떤 감정인지를 알아야 그 감정이 주는 메세지를 온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감정은 주관적 느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각이나 신체의 변화를 통해서 읽을 수도 있고,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다. 지레 겁먹지 않고 감정을 담대하게 마주하고 그 이름을 묻게 된다면 감정은 더 이상 낯선 침입자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감정을 대접하고 떠나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과정에서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압도하는 불편함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다루고 조절할 수 있는 삶의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참고문헌
Barrett, K., & Campos, J. (1987). Perspectives on emotional development II: A functionalist approach. In J. Osofsky (Ed), Handbook of infant development (2nd ed., Pp. 555-578). New York: Wiley.
Levenson R. W. (1994). Human emotion: A functional view. In Ekman P., Davidson R. J. (Eds.), The nature of emotion: Fundamental questions (pp. 123–126).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감정 #우울 #불안 #기능주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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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향숙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및 희망연구소 소속연구자 우울과 불안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의 원인과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임상심리학자 |
감정은 호흡과도 같다. 나와 늘 함께 하지만 그렇다고 매 순간 인식하며 살진 않는다. 감정을 굳이 들여다볼 필요를 느끼기도 어렵고, 들여다본다고 해서 분명하게 경험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감정의 존재를 특별히 인식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도 전혀 불편함이나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문득, 감정이 의식의 표면 위로 솟구칠 때가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눈물을 쏟거나 극단적인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뜻하는 대로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 아픈 상처가 드러나면서 느끼는 수치심, 관계의 진전을 만들어 나가면서 커지는 만족감 등등. 감정은 때로는 폭풍처럼, 때로는 산들바람처럼 마음을 스쳐 지나간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감정이 나를 찾은 듯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감정은 꾸준히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감정이 긍정적이든, 혹은 부정적이든 어떤 색채의 감정이든, 모두,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감정은 신호수와 같은 역할을 한다. 기능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감정은 타고난 것이며 본질적으로 적응적이다(Barrett & Campos, 1987; Levenson, 1994). 다만 내 것이 아닌 감정을 내 것으로 오해하거나 혹은 내 진실한 감정을 내 것이 아닌 양 무시하거나 부인한다면, 나와 나의 경험으로부터 소외된 감정들은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고통을 동반한 채 나를 다시 찾아오게 된다. 결국 불편한 감정들은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혹은 내 경험으로부터 멀어졌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호주로 이민한 후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지내던 희수에게 불면증과 초조함, 불안과 우울이 찾아온 것은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였다. 교외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새롭게 집을 수리하느라 힘에 부쳤고, 무엇보다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두고 자신만 호사를 누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어느 날 문득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란 생각이 들면서 텅 빈 느낌이 들었고 제대로 식사를 못하고 토하는 증상과 함께 몸무게가 줄고 가슴과 얼굴이 조이며 목이 아픈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혼자 누워 있을 때면 호흡이 가빠지면서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희수가 느끼는 감정은 우울과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감정의 색채라고 할 수 있는 느낌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생각과 신체의 변화를 동반한다. ‘나만 이렇게 잘 살고 어머니를 등한시하는 건 아닌가’라던가,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타국에서 외롭게 살겠구나’라는 생각들은 분명 우울의 한 부분이다. 구토감이나 목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수면곤란이나 체중감소, 가쁜 호흡들은 마음의 긴장, 불편감 및 불안과 무관하지 않다.
이렇듯 우울과 불안과 같은 감정은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희수의 삶에서 일종의 신호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울은 잠시 멈추어서 나를 돌보라는 메세지를 준다. 타국에서의 삶에 적응하느라, 가정을 일구느라 온통 외부로만 향했던 관심을 이제 자신에게로 향하고 이제는 제발 자신을 돌보라는 메세지인 셈이다. 또한 불안한 감정은 삶의 균열을 비집고 스멀스멀 피어나오곤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는 위협이나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조심하라는 신호이다. 또한 불안은 지금까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사용해 온 삶의 방식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내 삶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조절해야 할 필요성을 불안을 통해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희수와 같이, 어느 날 문득, 예기치 않게 다가와 문을 두드리는 감정을 만나게 된다면, 가장 우선적으로는 감정의 방문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어떤 감정이든 찾아온 이유가 없지 않을텐데 인식하지 못하고 돌려보낸다고 해서 그 감정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당장은 해소된 듯하지만, 강하게, 더욱 강하게 나를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어떤 감정인지를 알아야 그 감정이 주는 메세지를 온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감정은 주관적 느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각이나 신체의 변화를 통해서 읽을 수도 있고,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다. 지레 겁먹지 않고 감정을 담대하게 마주하고 그 이름을 묻게 된다면 감정은 더 이상 낯선 침입자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감정을 대접하고 떠나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과정에서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압도하는 불편함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다루고 조절할 수 있는 삶의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참고문헌
Barrett, K., & Campos, J. (1987). Perspectives on emotional development II: A functionalist approach. In J. Osofsky (Ed), Handbook of infant development (2nd ed., Pp. 555-578). New York: Wiley.
Levenson R. W. (1994). Human emotion: A functional view. In Ekman P., Davidson R. J. (Eds.), The nature of emotion: Fundamental questions (pp. 123–126). New York, NY: Oxford University Press.
#감정 #우울 #불안 #기능주의 관점
서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및 희망연구소 소속연구자
우울과 불안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의 원인과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임상심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