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8월에 열릴 플라톤 아카데미의 명상과학 아고라를 앞두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마지막 날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의 미산 소장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의 배철현 교수가 상도선원에서 차담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대중들에게 낯설 수 있는 명상과학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이하 “미”와 “배”로 약칭)
■ 명상의 시작
(미) 명상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배) 소용돌이처럼 돌아가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분리시킨 것이 명상의 시작이었습니다.
(미) 명상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반가웠어요. 교수님들이나 학자분들의 경우 인지적인 것이 많이 활성화되어 있으나, 정서적으로 몸에서 체화되는 것은 약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몸에서 체화되지 않은 인지적인 것은 영향력과 지속력이 클 수 없어요.
(배) 명상은 ‘필요’에 의해 저절로 하게 되었어요. 매일 아침을 시작하기 전 앉아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죠. 저는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에 지인의 집이 있어 그리로 이사를 가 1년 간 산 적이 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서울의 교수아파트에서 월-수를 살고, 나머지는 제주도에 내려갔죠. 진돗개 두 마리와 아내와 함께 서귀포 끝에 있는 집, 파도가 들이치는 검은 바위 언덕의 집에 살았어요.
(미) 그야말로 완전히 명상적인 집이로군요. 파도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배) 그래서인지 너무 편안했어요. 한 건축가의 집이었는데, 정말 마음을 안정시키는 특별한 분위기를 지닌 곳이었죠.
■ 명상과 창조성
(미) 명당이군요. 명상도 그러한 좋은 장소에서 했을 때, 뇌가 활성화됩니다. 탁 트인 공간에서는 창의적인 뇌가 활성화되고, 아늑한 공간에서는 집중의 뇌가 활성화되지요. 사실 집중과 창의는 함께 가야 하지만, 실제 명상을 해 보면 둘은 떨어져 있어요. 어떤 시점에서는 집중력을 키워서 몰입의 힘을 강화시키다가, 그 몰입의 힘을 놓았을 때 의식이 확장되면서 창의적인 것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실 몰입에서는 창조성이 나오지 않아요. 몰입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이완되고 의식이 열리면서 창조성이 활성화되지요.
과학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황농문 교수의 『몰입』1)에 따르면, 몰입된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활동을 했을 때, 다른 뇌가 활성화되면서 창조성이 강화된다고 합니다. 몰입과 창조성의 원리를 정확히 알았던 것이죠. 이 책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Finding Flow (1997)2)를 보고 영감을 얻었지요.
■ 명상과 단절, 그리고 진정한 만남
(배) 사실 제가 제주도에 간 진짜 이유는 명상이 아니라 진돗개 때문이었습니다(웃음). 지인이 진돗개 새끼 한 마리를 집에 데려왔는데, 6개월만에 아파트에서 도저히 키우기 어려운 크기로 자라는 바람에 제주도 이사를 결심했죠. 그렇게 1년을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살다가, 집과 학교가 너무 멀어서 가평에 집을 지어 살게 된 것이 벌써 6년이 되었네요. 가평에서 지내며 자연히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게 되었고, 시골이다 보니 아침마다 앉아 묵상하거나 개와 달리는 것이 제 일과가 되었습니다.
(미) 진돗개가 명상적인 삶의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군요(웃음).
(배) 그렇습니다. 개가 곧 다르마(法; 진리)였네요(웃음) 사실 저는 명상은 잘 모릅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here and now(여기와 지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생각을 가다듬기로 결심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침에 일어나 30-40분 앉아 있는 것, 그것이 제 삶의 질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정리될 뿐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것과 그것을 방해하는 것을 점차 구분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5년간 매일 ‘하지 않을 것’, ‘굳이 안 해도 되는 것’, ‘굳이 안 만나도 되는 것’ 리스트를 아침마다 수첩에 적기 시작했죠. 결혼식, 장례식에 불참하고, 골프나 음주를 하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욕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명상적 삶을 산다기보다는, 아직 초보적 단계라 생각하기에, 불필요한 것을 하지 않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미) 명상에 대해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분들의 경우, “명상을 하면 은둔적이고 소극적이고 관계를 회피하는 것 아닌가?”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 점에 대해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자칫 명상이 은둔을 정당화하고 사회적 관계성을 단절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상의 본질은 내면의 성찰을 통한 re-connecting(다시 연결하기), 정말로 구체적이고 보다 긍정적인 만남을 위한 과정입니다. 따라서 명상이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에요. 교수님의 경우를 보아도 단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생산적인 만남을 하게 되신 것 같습니다.
(배) 맞습니다. 제 삶을 더 생산적으로, 제 삶에 중요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전과는 달라요. 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달라지고, 삶의 질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안 하지만 더 하는 거예요(웃음).
(미) 무위의 함(無爲而無不爲)3)이군요!
(배) 그러한 ‘하지 않음’ 덕에 제가 ‘건명원’4)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명원의 목표는 20-30세의 젊은이들을 위한 인문·과학·예술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으로, 북촌에서 5년 전 시작해서 현재 4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인간을 키우는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죠.
이전과 같은 방식의 삶이었다면 이런 새로운 일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명상을 하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의 양은 줄어들지만, 질적으로 더 중요한 인연을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의미있는 일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게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명상을 통해서 제가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요? 조건을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그 조건은 바로 ‘생각의 깊이’입니다. 보통 사람은 1~10 척도에서 1~2 수준의 생각으로 경쟁합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9~10 수준의 생각의 깊이를 가졌다면, 상대가 그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없기에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문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 의식의 스펙트럼
(미) 그러한 생각의 깊이는, 의식이 내면으로 향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습니다.
(배) 그렇다면 생각에 층위가 있습니까?
(미)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켄 윌버는 의식의 스펙트럼5)이라는 개념을 통해 눈에 보이는 구체적 물질계, 에너지의 세계, 마음·의식·멘탈의 세계 등을 나눕니다. 우리는 대부분 물질계에서 살지만, 신비화된다는 이유로 과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의식의 차원이 있습니다. 켄 윌버는 20대에 심리학자와 동서고금의 사상을 종합하여 『무경계』6)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심리학, 의식 연구, 종교 등의 이론을 종합하여 나름대로 세운 체계가 바로 ‘의식의 스펙트럼(the spectrum of consciousness)’7)입니다.
의식의 스펙트럼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논리적 정확성의 단계가 있고, 거기서 더 깊어진 것이 ‘정묘(subtle)의식’ 단계입니다. 종교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신비체험이나 무당의 트랜스(trance) 등의 의식대입니다. 거기서 더 깊어지면 ‘원인체(causal)’라는, 존재의 본질 쪽으로 다가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더 벗어나면 궁극적 원인체(ultimate causal)라는 단계에 도달하고, 마지막으로 그것보다 더 깊은 단계인 비이원적(nondual) 의식세계가 있습니다. 이는 불교가 지향하는 최종단계이기도 한데, 현실세계에서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의 경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목표는 바로 그 곳이 아닌가 싶네요.
■ 비이원성
(미)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신을 가장 큰 의식으로 보지만, 선불교 대승불교, 힌두교 등에서는 비이원적 세계를 상정하고 그것을 가장 궁극적 세계라고 봅니다. 그러한 스펙트럼을 단계적인 입장에서 볼 수도 있지만, 최정점인 비이원적 시각에서 보면 단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세계가 곧 진리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의식의 층위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씀드린 것이에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몸과 그것으로 인식되는 외부 경계, 거기서 발생하는 에너지적 느낌과 그로 인해 형성된 생각·의도·감정 등의 굴레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긍정성과 부정성의 끊임없는 교차 속에 놓여 있지요. 부정성이 등장할 때 더 크게 부각되고, 사회적 이슈의 큰 흐름을 이끌어갑니다. 부정적 뉴스에 의식이 활발하게 반응하는 반면 긍정적 뉴스의 조회수는 낮은 것에서 잘 드러나죠. 의식은 부정적인 것에 활발하게 반응하지만 긍정적인 것에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정성에 대한 인지능력이 민감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식이 확장되고 깊어지려면, 부정성보다 긍정성이 강해짐으로써 본능적 불균형이 바로잡혀야 합니다. 비이원적 관점은, 부정성은 나쁘고 긍정성은 좋다는 선·악 개념으로 볼 때 제대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햇볕을 마주보고 서 있으면 뒤에 그림자는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하지만 그림자를 나쁘다고 말하면, 그렇게 개념화되고 분화됩니다. 그것을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하면, 긍정성과 부정성을 둘로 나누지 않기에, (그렇다고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의식의 유연성과 깊이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숨을 들이쉬면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숨을 내쉬면 탁한 기운을 내뿜는다는 생각은 이분법적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분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 무경계
(배) 그야말로 ‘무경계’군요. 이분법을 넘어선 것, 존재도 비존재도 아닌 어떤 상태, 경계가 없는 상태인 것이네요. 저는 최근에 경계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습니다. 문학작품이나 경전에서의 영웅들의 경우, 항상 ‘경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일종의 통과의례인 것 같아요. 경계를 벗어낫다고 확신하는 순간이 곧 ‘타락’의 순간이더군요. 경계성을 의식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챙겨야 하는 것 같아요.
문학이나 경전에서는 창의성, 몰입 등이 만들어지는 신비한 시간과 장소를 ‘경계’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존재나 비존재도 없고, 긍정성과 부정성도 없고 남성과 여성도 없는 곳이지요. 이원론적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그것을 비이원론(nondualism)이라는 용어로 부를 수밖에 없는 언어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원론(monism)이라고 하기에는 기존에 존재하는 용어이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고요.
저는 종교학자로서 창조신화에 관심이 있습니다. 최초 이전, 원초적 시간에 무엇이 있었을까 늘 궁금하지요. 오토 랑크(Otto Rank)8), 융(Carl Gustav Jung) 등도 그러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고대로 돌아가보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사상가들은 그런 것을 알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원론은 해석자들이 만든 것 아닐까 싶고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9)에 우주 창조 신화가 등장합니다. 조물주 데미우르고스10)가 세상을 창조하는 장면에서, 이상한 공간이자 시간이 언급됩니다. 플라톤은 그것을 직접 설명할 수 없기에 도시를 비유하여 설명했는데, 완전히 무질서한 무(無; nothingness)의 상태를 에레모스11)(사막)이라 하고 질서를 폴리스12)(도시)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을 코라13)라고 합니다. 도시에서 볼 때 코라는 ‘도시 밖 경계의 버려진 땅’을 의미했습니다. 플라톤은 코라를 형상계와 이데아의 세계 사이에서 이데아의 세계를 현상계로 전달하는 수용체(receptacle)로 이해했습니다.14)
하이데거는 코라에 대한 코멘트를 쓰기도 했어요. 하이데거에 따르면 코라는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미끄러운 공간이지만,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생명이 탄생합니다. 그 무의 공간에서만 핏줄과 뼈가 생겨납니다. 그것이 곧 신비라고 본 것이죠.
(미) 하이데거는 그것을 emptiness(無)와도 연결하나요?
(배) 그렇습니다. 하이데거는 플라톤의 코라를 재해석하여 적극적인 무(無), 생성적인 무(無)를 이야기하지요.15)
(미) 하이데거는 동양사상에 친숙하고, 선(禪)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점을 조명한 『하이데거와 禪』16)이라는 책도 있어요. 동양에서 말하는 공(空), 무(無)는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고 법정스님은 이를 ‘텅 빈 충만’, ’진공(眞空)‘이라 부르셨어요. 정말로 텅 비어 있으면, 모든 것이 생성되는 생명의 공간이 됩니다. 충만함과 비어 있음은 함께 한다는 패러독스죠.
(배) 텅 빈 충만이라는 역설은 ‘비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케노시스17)와도 연결됩니다. 바울이 예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예수는 신과 같지만 자신을 비워...”18) 바로 이러한 구절로부터 은둔자들의 공동체인 수도원 전통 케노비테가 생겨났습니다. 비움의 공간, 사막의 수사, 동방 수도원 전통이 2세기부터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이 배경에는 아마 불교의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원전 4세기경 피론19)의 회의론 등이 교류되었고. 기원후 4세기에 로마의 수도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고, 종교분쟁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동방기독교는 그러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지요. 러시아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팔레스타인이나 이집트에도 걸쳐 있습니다.
■ 현대사회에서 명상이 각광받는 까닭
(미) 명상을 통해 일상 속에서 생각의 깊이에 도달한다는 것으로부터 어느새 이야기가 의식의 스펙트럼을 지나 명상의 궁극적 경지인 비이원성, 무경계 등의 심오한 개념까지 왔군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현대인들에게 명상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볼까요?
(배)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제도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이유를 간단하게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도종교들이 담당하던 전통적인 역할은 삶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체계와 의미체계를 제시해줌으로써 인간의 근본적인 실존적 고뇌에 응답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오늘날의 종교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보다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각자가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다름을 존경하면서 자신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시대의 요구입니다. 그 시대의 요구에 응답할 때 비로소 종교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지 못한 종교의 영향력은 갈수록 점점 더 약화되고 사람들에게 외면받겠지요. 이렇게 제도종교의 영향력이 갈수록 감소해가는 현대사회에서 특정 종교의 실천으로 시작된 명상이 종교 밖의 일반인들에게도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 명상은 불교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보존해왔던 실천입니다. 그런데 왜 현대사회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명상기법이 세계화되고 확산되었을까요? 하버드에서 중론 철학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불교철학자 존 던20)은 하나의 설득력 있는 답을 제공합니다. 그가 말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불교는 명상전통에 대한 정확한 이론적 정립이 문헌으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명상이 좋다고 해도 문헌적 근거가 없으면 현대인들을 납득시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명상은 체계화된 이론과 행법21)이 문헌으로 정확히 남아 있어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좋습니다. 이론과 실천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곤란합니다. 불교 안에는 매우 다양한 전통들이 각자의 문화권에서 개발된 이론들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현대에 와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명상이 확산되는 기반이 되었던 것입니다. 문헌이 없으면 고증할 수 없고, 고증할 수 없다면 권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불교에서는 정확한 문헌이 매우 잘 분류·정리되어 있습니다.
그것의 정수를 존 카밧진22)이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명상 프로그램으로 정리해서 세계화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마음챙김에 관한 양질의 학술 연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어요. 뇌과학, 신경과학, 내분비학(호르몬) 등과 연계해서 효과성 검증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는 명상의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연구들이 시작되는 상태입니다.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에서도 그러한 명상의 기저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하려 합니다. 명상을 통해 어떠한 원리로 뇌와 의식이 변화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지요. 명상이 신비화되지 않고 대중화되되, 정확한 사실과 바른 맥락으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지금은 명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천차만별이며 컬트도 많다 보니, 명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잘 하지 않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러한 좋은 명상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과학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명상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기반연구가 이루어진 뒤에는 기반연구를 중심으로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Springer 출판사에서는 최근 질적으로, 양적으로 급상승하고 있는 마음챙김 관련 최신 연구논문들을 모아 핸드북23)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의 명상과학연구소 설립은 이런 추세에서 매우 적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교육, 윤리, 비즈니스, 문화 등 분야를 세분화하여 진행되고 있는 서양의 연구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격차가 벌어질 겁니다.
(배) 소장님이 말씀하신 존 던의 타당한 지적 외에도 생각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19세기 말, 소위 현대를 시작한 세 사람으로 보통 맑스와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를 꼽습니다. 그리고 니체는 이 셋을 집대성했지요. 그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테제는 근대를 끝내고 현대를 시작한 총성입니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God은 무엇일까요?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두 가지를 공격합니다. 하나는 플라톤에 대한 적극적 공격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니체는 확인할 수 없는 이데아의 세계를 너무 신격화하고 현실을 도외시하는 플라톤적 태도가 서양철학과 종교로 이어졌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그러한 형이상학적 가정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예언자적으로 선언한 것이지요.
이 지점에서 현대인들에게 명상이 갖는 의미와 가치, 그리고 각광받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이란 곧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교적 세계를 형성한 존재론적·형이상학적·신학적 기반이 현대사회에서 붕괴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교가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체계로서 기능했던 전통적 역할을 잃어버림으로써, 서구인들은 신의 죽음 이후 생겨난 빈자리에서 일종의 의미론적·사상적·신앙적 ‘진공(vacuum)상태’를 경험합니다. 이러한 진공상태를 채워준 것이 동양 전통의 명상이 아닐까요? 명상은 외부에 존재하는 절대적 신의 부재로부터, 내적 신성·내면의 충만함으로 서구인들의 시선을 돌려놓은 것입니다.
또한 17세기에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 하면서 인도의 경전들이 서양에 소개되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막스 뮐러24)가 주도한 50권 분량의 『동방성전』(Sacred Books of the East) 번역 등이 오늘날 동양종교가 서양에 널리 소개되고 연구되는 기반을 만든 것이지요.
(미) 저도 옥스포드에 있을 때 막스 뮐러의 향기를 직접 느꼈습니다. 동네 헌책방에 갔더니 동방성전 초판본이 몇 권 있어서 보이는 대로 사고 그랬죠(웃음).
(배) 막스 뮐러는 현대 학문으로서의 종교학(독: religionswissenschaft)을 만든 사람입니다. 막스 뮐러의 책을 보면, 서양인들이 알고 기대하는 모든 단서들이 다 그 안에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미) 막스 뮐러의 『동방성전』은 동양사상의 바탕이 되는 핵심서들을 옥스퍼드에서 50권 분량의 영어로 번역한 프로젝트였죠. 동방성전에는 불교의 중요한 경전들이나, 사서삼경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번역 작업에 참여했기에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대단한 수준입니다.
(배) 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런 거장들이 이론적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요가나 명상이 서구에 널리 퍼질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미) 동방성서가 나오지 않았다면 서양 계몽사상가들은 동양사상을 체계적으로 접하지 못했을 겁니다.
(배) 그렇지 못했다면 서양도 계몽 이후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했을 겁니다. 동양을 만나게 되면서 명실공히 세계문명을 주도하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문화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미) 동서양의 영향은 상호보완적이고 함께 주고받는 것 같아요. 교수님도 월든 호수에 자주 가셨죠? 저도 마음이 착잡할 때 가서 평안을 얻고 했는데요, 마하트마 간디가 소로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까?
(배) 그렇습니다. 『시민의 불복종』25)의 영향이 컸죠. 서로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저는 3·1 운동에도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러한 한두 사람의 역할이 정말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미산 소장님도 그러한 변화의 시작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명상과학 차담 시리즈 2로 계속됨)
미주
1) 『몰입 = Think Hard』, 황농문 지음, 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알에이치코리아, 2007.
2)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서울: 해냄, 2007. (원서: Mihaly Csikszentmihalyi, Finding Flow: the psychology of engagement with everyday life, New York: BasicBooks, c1997.)
3) 도덕경 제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도상무위이무불위)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4) 건명원(建明苑): “문화예술분야”의 창의적 리더와 인재육성을 위해 (재)두양문화재단에서 설립 및 운영하는 인재육성의 산실. (홈페이지: http://www.gunmyung.or.kr/)
5) 『의식의 스펙트럼』, 켄 윌버 지음, 박정숙 옮김, 고양: 범양사, 2006. (원서: Ken Wilber, The spectrum of consciousness, Wheaton, IL USA: Theosophical Pub. House, 1993. 최초발행일: 1977)
6) 『무경계: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서울: 정신세계사, 2012. (원서: Ken Wilber, No boundary: Eastern and Western approaches to personal growth, Boston: Shambhala, 2001. 최초발행일: 1979)
7) 켄 윌버는 다음과 같이 인간 의식의 발달 단계를 설명한다. 인터뷰에서는 5번 이후부터 언급된다.
0. Indifferentiated Primary Matrix 일차적 모체
1. Sensory/Physical Contracted 감각/물리적(감각지각적) 수준
2. Phantasmic/Emotional/Archaic 환상/정서적
3. Representational Mind/Preoperational Cognition/Magic 표상적 마음
4. Rule/Role/Concrete Operational Cognition/Mythic 규칙과 역할
5. Formal Reflexive/Formal Operational Awareness/Rational 형식과 반성적 마음
6. Centauric/Vision/Logic 비전
7. Psychic 심령
8. Subtle 정묘
9. Causal 인과(원인)
10. Supercausal, Ultimate causal 궁극 원인
11. Nondual 비이원
8) Otto Rank(1884-1939):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가, 프로이트의 가장 가까운 동료 중 하나.
9)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 테아이테토스/필레보스/티마이오스/크리티아스/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파주: 숲, 2016.
10) 데미우르고스(Δημιουργός, demiurge): 플라톤이 말하는, 물질계를 창조하는 신.
11) 에레모스(ἔρημος, eremos): 버려진 땅, 사막, 무질서
12) 폴리스(πόλις, polis): 도시, 질서
13) 코라(χώρα, khôra): 도시 바깥의 공간
14) 플라톤은 우주를 예지계(이데아의 세계)와 현상계로 나누었다. 하지만 지성으로만 파악 가능한 이데아가 어떻게 현상계의 감각적 형상을 취하게 되는지는 난점이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플라톤은 두 세계를 매개하는 제3의 공간 혹은 빈터를 상정하고, 그것을 ‘코라’라 불렀다. 코라는 두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코라를 이데아의 세계를 전달하는 ‘수용체(receptacle)'라 이해했다.
15) 하이데거는 코라를 “존재와 존재자의 존재론적 차이”, “존재에서 존재자를 생성하는 기제”로 이해한다. 코라는 존재에서 존재자가 생성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을 가리킨다. 플라톤이 코라를 이데아의 세계를 전달하는 수동적인 역할로 이해했다면, 이데아를 거부하는 입장에서 코라는 오히려 보다 적극적인 역할, 현상들이 생성되는 능동적인 장의 역할로 이해될 수 았다.
16) 『하이데거와 선』, 한스 페터 헴펠 지음, 이기상&추기연 공역, 서울: 민음사, 1995. (원서: Hans-Peter Hempel, Heidegger und Zen, Frankfurt am Mein: Hain, 1992, c1987.)
17) 케노시스(κένωσις, kénōsis): 스스로를 비움,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신의 성스러운 의지를 온전히 수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함.
18) (개역개정) 빌립보서 2장 6-7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19) 피론(Πύρρων, Pyrrhon): 기원전 360-270,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정에 참가해 인도에 갔다가 고대 인도의 나체 수행자를 만나 가르침을 배운다. 그들은 육체적인 쾌락을 피하고 자연을 관상하는 자들이었다. 이후 그리스로 돌아온 피론은 철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는 회의론의 기초를 만든 사람이라고 여겨지기에, 고대 회의론을 ‘피론주의(Pyrrhonism)’라 부른다.
20) 존 던(John D. Dunne, 1961-):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Center for Investigating Healty Minds(건강한 마음 연구 센터)에서 “명상 인문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에머리 대학 종교학과에 소속되어 있는 불교철학자. 불교철학과 명상실천 그리고 인지과학의 접점을 연구한다.
21) 행법(行法): 수행자가 닦아야 할 수행법.
22) 존 카밧진(Jon Kabat-Zinn, 1944-): 메사추세츠 의과대학 명예교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명상 프로그램인 마음챙김(MBSR)의 개발자.
23) Springer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Mindfulness 핸드북 시리즈 현황은 다음과 같다.
Fabrizio Didonna (ed.), Clinical Handbook of Mindfulness, New York: Springer-Verlag, 2009.
Brian D. Ostafin, Michael D. Robinson, Brian P. Meier (eds.), Handbook of Mindfulness and Self-Regulation, New York: Springer-Verlag, 2015.
Edo Shonin, William Van Gordon, Nirbhay N. Singh (eds.), Buddhist Foundations of Mindfulness,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5.
Ronald E. Purser, David Forbes, Adam Burke (eds.), Handbook of Mindfulness: Culture, Context and Social Engagement,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6.
Kimberly A. Schonert-Reichl, Robert W. Roeser (eds.), Handbook of Mindfulness in Education: Integrating Theory and Research into Practice, New York: Springer-Verlag, 2016.
Sayyed Mohsen Fatemi (ed.), Critical Mindfulness: Exploring Langerian Models,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6. Donald McCown, Diane K. Reibel, Marc S. Micozzi (eds.), Resource for Teaching Mindfulness: An International Handbook,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6.
Steven Stanley, Ronald E. Purser, Nirbhay Singh (eds.), Handbook of Ethical Foundations of Mindfulness,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8.
24)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 영국에서 활동한 독일 태생의 문헌학자이자 동양학자. 인도학과 비교종교학 분야의 창시자 중 하나. 동양종교의 주요 경전들을 영어로 번역한 50권의 작업 『동방성전』(Sacred Books of the East)을 주도했다.
25)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서울: 은행나무, 2017. (원서: Henry David Thoreau, Civil Disobedience, Boonton, N.J.: Liberty Library, 1946.)
| 미산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소장)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남방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대학교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중앙승가대 교수를 역임했다. 현대인을 위한 자비명상 프로그램인 하트스마일명상(HST)를 개발했다. 저서로는 『초기경전강의』, 『행복』, 『자비』 등이 있다. |
| 배철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하버드대학교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에 개원한 미래혁신학교 건명원(建明苑) 운영위원이다. 저서로는 ≪심연≫,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여정≫ 등이 있다. |
■ 들어가며
8월에 열릴 플라톤 아카데미의 명상과학 아고라를 앞두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마지막 날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의 미산 소장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의 배철현 교수가 상도선원에서 차담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대중들에게 낯설 수 있는 명상과학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인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이하 “미”와 “배”로 약칭)
■ 명상의 시작
(미) 명상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배) 소용돌이처럼 돌아가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분리시킨 것이 명상의 시작이었습니다.
(미) 명상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반가웠어요. 교수님들이나 학자분들의 경우 인지적인 것이 많이 활성화되어 있으나, 정서적으로 몸에서 체화되는 것은 약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몸에서 체화되지 않은 인지적인 것은 영향력과 지속력이 클 수 없어요.
(배) 명상은 ‘필요’에 의해 저절로 하게 되었어요. 매일 아침을 시작하기 전 앉아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죠. 저는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에 지인의 집이 있어 그리로 이사를 가 1년 간 산 적이 있어요. 학교를 다니면서 서울의 교수아파트에서 월-수를 살고, 나머지는 제주도에 내려갔죠. 진돗개 두 마리와 아내와 함께 서귀포 끝에 있는 집, 파도가 들이치는 검은 바위 언덕의 집에 살았어요.
(미) 그야말로 완전히 명상적인 집이로군요. 파도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니까요.
(배) 그래서인지 너무 편안했어요. 한 건축가의 집이었는데, 정말 마음을 안정시키는 특별한 분위기를 지닌 곳이었죠.
■ 명상과 창조성
(미) 명당이군요. 명상도 그러한 좋은 장소에서 했을 때, 뇌가 활성화됩니다. 탁 트인 공간에서는 창의적인 뇌가 활성화되고, 아늑한 공간에서는 집중의 뇌가 활성화되지요. 사실 집중과 창의는 함께 가야 하지만, 실제 명상을 해 보면 둘은 떨어져 있어요. 어떤 시점에서는 집중력을 키워서 몰입의 힘을 강화시키다가, 그 몰입의 힘을 놓았을 때 의식이 확장되면서 창의적인 것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실 몰입에서는 창조성이 나오지 않아요. 몰입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이완되고 의식이 열리면서 창조성이 활성화되지요.
과학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황농문 교수의 『몰입』1)에 따르면, 몰입된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활동을 했을 때, 다른 뇌가 활성화되면서 창조성이 강화된다고 합니다. 몰입과 창조성의 원리를 정확히 알았던 것이죠. 이 책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Finding Flow (1997)2)를 보고 영감을 얻었지요.
■ 명상과 단절, 그리고 진정한 만남
(배) 사실 제가 제주도에 간 진짜 이유는 명상이 아니라 진돗개 때문이었습니다(웃음). 지인이 진돗개 새끼 한 마리를 집에 데려왔는데, 6개월만에 아파트에서 도저히 키우기 어려운 크기로 자라는 바람에 제주도 이사를 결심했죠. 그렇게 1년을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살다가, 집과 학교가 너무 멀어서 가평에 집을 지어 살게 된 것이 벌써 6년이 되었네요. 가평에서 지내며 자연히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게 되었고, 시골이다 보니 아침마다 앉아 묵상하거나 개와 달리는 것이 제 일과가 되었습니다.
(미) 진돗개가 명상적인 삶의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군요(웃음).
(배) 그렇습니다. 개가 곧 다르마(法; 진리)였네요(웃음) 사실 저는 명상은 잘 모릅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here and now(여기와 지금)‘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생각을 가다듬기로 결심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침에 일어나 30-40분 앉아 있는 것, 그것이 제 삶의 질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정리될 뿐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것과 그것을 방해하는 것을 점차 구분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5년간 매일 ‘하지 않을 것’, ‘굳이 안 해도 되는 것’, ‘굳이 안 만나도 되는 것’ 리스트를 아침마다 수첩에 적기 시작했죠. 결혼식, 장례식에 불참하고, 골프나 음주를 하지 않으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욕도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명상적 삶을 산다기보다는, 아직 초보적 단계라 생각하기에, 불필요한 것을 하지 않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미) 명상에 대해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분들의 경우, “명상을 하면 은둔적이고 소극적이고 관계를 회피하는 것 아닌가?” 질문하기도 합니다. 그 점에 대해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자칫 명상이 은둔을 정당화하고 사회적 관계성을 단절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상의 본질은 내면의 성찰을 통한 re-connecting(다시 연결하기), 정말로 구체적이고 보다 긍정적인 만남을 위한 과정입니다. 따라서 명상이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에요. 교수님의 경우를 보아도 단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생산적인 만남을 하게 되신 것 같습니다.
(배) 맞습니다. 제 삶을 더 생산적으로, 제 삶에 중요하고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전과는 달라요. 하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달라지고, 삶의 질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안 하지만 더 하는 거예요(웃음).
(미) 무위의 함(無爲而無不爲)3)이군요!
(배) 그러한 ‘하지 않음’ 덕에 제가 ‘건명원’4)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건명원의 목표는 20-30세의 젊은이들을 위한 인문·과학·예술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으로, 북촌에서 5년 전 시작해서 현재 4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인간을 키우는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죠.
이전과 같은 방식의 삶이었다면 이런 새로운 일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명상을 하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의 양은 줄어들지만, 질적으로 더 중요한 인연을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의미있는 일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게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명상을 통해서 제가 마음의 준비를 했기에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요? 조건을 만들었기 때문이지요. 그 조건은 바로 ‘생각의 깊이’입니다. 보통 사람은 1~10 척도에서 1~2 수준의 생각으로 경쟁합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9~10 수준의 생각의 깊이를 가졌다면, 상대가 그를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가 없기에 행동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문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 의식의 스펙트럼
(미) 그러한 생각의 깊이는, 의식이 내면으로 향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습니다.
(배) 그렇다면 생각에 층위가 있습니까?
(미)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켄 윌버는 의식의 스펙트럼5)이라는 개념을 통해 눈에 보이는 구체적 물질계, 에너지의 세계, 마음·의식·멘탈의 세계 등을 나눕니다. 우리는 대부분 물질계에서 살지만, 신비화된다는 이유로 과학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의식의 차원이 있습니다. 켄 윌버는 20대에 심리학자와 동서고금의 사상을 종합하여 『무경계』6)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심리학, 의식 연구, 종교 등의 이론을 종합하여 나름대로 세운 체계가 바로 ‘의식의 스펙트럼(the spectrum of consciousness)’7)입니다.
의식의 스펙트럼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논리적 정확성의 단계가 있고, 거기서 더 깊어진 것이 ‘정묘(subtle)의식’ 단계입니다. 종교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신비체험이나 무당의 트랜스(trance) 등의 의식대입니다. 거기서 더 깊어지면 ‘원인체(causal)’라는, 존재의 본질 쪽으로 다가가는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더 벗어나면 궁극적 원인체(ultimate causal)라는 단계에 도달하고, 마지막으로 그것보다 더 깊은 단계인 비이원적(nondual) 의식세계가 있습니다. 이는 불교가 지향하는 최종단계이기도 한데, 현실세계에서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의 경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목표는 바로 그 곳이 아닌가 싶네요.
■ 비이원성
(미)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신을 가장 큰 의식으로 보지만, 선불교 대승불교, 힌두교 등에서는 비이원적 세계를 상정하고 그것을 가장 궁극적 세계라고 봅니다. 그러한 스펙트럼을 단계적인 입장에서 볼 수도 있지만, 최정점인 비이원적 시각에서 보면 단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세계가 곧 진리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의식의 층위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씀드린 것이에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인 몸과 그것으로 인식되는 외부 경계, 거기서 발생하는 에너지적 느낌과 그로 인해 형성된 생각·의도·감정 등의 굴레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긍정성과 부정성의 끊임없는 교차 속에 놓여 있지요. 부정성이 등장할 때 더 크게 부각되고, 사회적 이슈의 큰 흐름을 이끌어갑니다. 부정적 뉴스에 의식이 활발하게 반응하는 반면 긍정적 뉴스의 조회수는 낮은 것에서 잘 드러나죠. 의식은 부정적인 것에 활발하게 반응하지만 긍정적인 것에는 그렇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정성에 대한 인지능력이 민감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의식이 확장되고 깊어지려면, 부정성보다 긍정성이 강해짐으로써 본능적 불균형이 바로잡혀야 합니다. 비이원적 관점은, 부정성은 나쁘고 긍정성은 좋다는 선·악 개념으로 볼 때 제대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햇볕을 마주보고 서 있으면 뒤에 그림자는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하지만 그림자를 나쁘다고 말하면, 그렇게 개념화되고 분화됩니다. 그것을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하면, 긍정성과 부정성을 둘로 나누지 않기에, (그렇다고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의식의 유연성과 깊이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숨을 들이쉬면 좋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숨을 내쉬면 탁한 기운을 내뿜는다는 생각은 이분법적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는 분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 무경계
(배) 그야말로 ‘무경계’군요. 이분법을 넘어선 것, 존재도 비존재도 아닌 어떤 상태, 경계가 없는 상태인 것이네요. 저는 최근에 경계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습니다. 문학작품이나 경전에서의 영웅들의 경우, 항상 ‘경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일종의 통과의례인 것 같아요. 경계를 벗어낫다고 확신하는 순간이 곧 ‘타락’의 순간이더군요. 경계성을 의식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챙겨야 하는 것 같아요.
문학이나 경전에서는 창의성, 몰입 등이 만들어지는 신비한 시간과 장소를 ‘경계’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존재나 비존재도 없고, 긍정성과 부정성도 없고 남성과 여성도 없는 곳이지요. 이원론적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로써는, 그것을 비이원론(nondualism)이라는 용어로 부를 수밖에 없는 언어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원론(monism)이라고 하기에는 기존에 존재하는 용어이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고요.
저는 종교학자로서 창조신화에 관심이 있습니다. 최초 이전, 원초적 시간에 무엇이 있었을까 늘 궁금하지요. 오토 랑크(Otto Rank)8), 융(Carl Gustav Jung) 등도 그러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고대로 돌아가보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사상가들은 그런 것을 알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원론은 해석자들이 만든 것 아닐까 싶고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9)에 우주 창조 신화가 등장합니다. 조물주 데미우르고스10)가 세상을 창조하는 장면에서, 이상한 공간이자 시간이 언급됩니다. 플라톤은 그것을 직접 설명할 수 없기에 도시를 비유하여 설명했는데, 완전히 무질서한 무(無; nothingness)의 상태를 에레모스11)(사막)이라 하고 질서를 폴리스12)(도시)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을 코라13)라고 합니다. 도시에서 볼 때 코라는 ‘도시 밖 경계의 버려진 땅’을 의미했습니다. 플라톤은 코라를 형상계와 이데아의 세계 사이에서 이데아의 세계를 현상계로 전달하는 수용체(receptacle)로 이해했습니다.14)
하이데거는 코라에 대한 코멘트를 쓰기도 했어요. 하이데거에 따르면 코라는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답답하고 미끄러운 공간이지만, 신기하게도 그곳에서 생명이 탄생합니다. 그 무의 공간에서만 핏줄과 뼈가 생겨납니다. 그것이 곧 신비라고 본 것이죠.
(미) 하이데거는 그것을 emptiness(無)와도 연결하나요?
(배) 그렇습니다. 하이데거는 플라톤의 코라를 재해석하여 적극적인 무(無), 생성적인 무(無)를 이야기하지요.15)
(미) 하이데거는 동양사상에 친숙하고, 선(禪)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점을 조명한 『하이데거와 禪』16)이라는 책도 있어요. 동양에서 말하는 공(空), 무(無)는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고 법정스님은 이를 ‘텅 빈 충만’, ’진공(眞空)‘이라 부르셨어요. 정말로 텅 비어 있으면, 모든 것이 생성되는 생명의 공간이 됩니다. 충만함과 비어 있음은 함께 한다는 패러독스죠.
(배) 텅 빈 충만이라는 역설은 ‘비움’을 뜻하는 그리스어 케노시스17)와도 연결됩니다. 바울이 예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예수는 신과 같지만 자신을 비워...”18) 바로 이러한 구절로부터 은둔자들의 공동체인 수도원 전통 케노비테가 생겨났습니다. 비움의 공간, 사막의 수사, 동방 수도원 전통이 2세기부터 등장하게 된 것이지요. 이 배경에는 아마 불교의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기원전 4세기경 피론19)의 회의론 등이 교류되었고. 기원후 4세기에 로마의 수도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고, 종교분쟁이 일어나면서 생겨난 동방기독교는 그러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지요. 러시아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팔레스타인이나 이집트에도 걸쳐 있습니다.
■ 현대사회에서 명상이 각광받는 까닭
(미) 명상을 통해 일상 속에서 생각의 깊이에 도달한다는 것으로부터 어느새 이야기가 의식의 스펙트럼을 지나 명상의 궁극적 경지인 비이원성, 무경계 등의 심오한 개념까지 왔군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현대인들에게 명상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볼까요?
(배)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먼저 제도종교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이유를 간단하게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도종교들이 담당하던 전통적인 역할은 삶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체계와 의미체계를 제시해줌으로써 인간의 근본적인 실존적 고뇌에 응답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오늘날의 종교는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보다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각자가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다름을 존경하면서 자신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시대의 요구입니다. 그 시대의 요구에 응답할 때 비로소 종교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지 못한 종교의 영향력은 갈수록 점점 더 약화되고 사람들에게 외면받겠지요. 이렇게 제도종교의 영향력이 갈수록 감소해가는 현대사회에서 특정 종교의 실천으로 시작된 명상이 종교 밖의 일반인들에게도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 명상은 불교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보존해왔던 실천입니다. 그런데 왜 현대사회에서 종교를 기반으로 한 명상기법이 세계화되고 확산되었을까요? 하버드에서 중론 철학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불교철학자 존 던20)은 하나의 설득력 있는 답을 제공합니다. 그가 말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불교는 명상전통에 대한 정확한 이론적 정립이 문헌으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명상이 좋다고 해도 문헌적 근거가 없으면 현대인들을 납득시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명상은 체계화된 이론과 행법21)이 문헌으로 정확히 남아 있어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좋습니다. 이론과 실천 둘 중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곤란합니다. 불교 안에는 매우 다양한 전통들이 각자의 문화권에서 개발된 이론들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현대에 와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명상이 확산되는 기반이 되었던 것입니다. 문헌이 없으면 고증할 수 없고, 고증할 수 없다면 권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불교에서는 정확한 문헌이 매우 잘 분류·정리되어 있습니다.
그것의 정수를 존 카밧진22)이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명상 프로그램으로 정리해서 세계화했습니다. 지난 몇 년간 마음챙김에 관한 양질의 학술 연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어요. 뇌과학, 신경과학, 내분비학(호르몬) 등과 연계해서 효과성 검증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는 명상의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밝히려는 연구들이 시작되는 상태입니다.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에서도 그러한 명상의 기저에 주안점을 두고 연구하려 합니다. 명상을 통해 어떠한 원리로 뇌와 의식이 변화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지요. 명상이 신비화되지 않고 대중화되되, 정확한 사실과 바른 맥락으로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지금은 명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천차만별이며 컬트도 많다 보니, 명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잘 하지 않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러한 좋은 명상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필요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과학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명상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기반연구가 이루어진 뒤에는 기반연구를 중심으로 개인이나 집단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Springer 출판사에서는 최근 질적으로, 양적으로 급상승하고 있는 마음챙김 관련 최신 연구논문들을 모아 핸드북23)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의 명상과학연구소 설립은 이런 추세에서 매우 적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교육, 윤리, 비즈니스, 문화 등 분야를 세분화하여 진행되고 있는 서양의 연구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격차가 벌어질 겁니다.
(배) 소장님이 말씀하신 존 던의 타당한 지적 외에도 생각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요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19세기 말, 소위 현대를 시작한 세 사람으로 보통 맑스와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를 꼽습니다. 그리고 니체는 이 셋을 집대성했지요. 그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테제는 근대를 끝내고 현대를 시작한 총성입니다.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God은 무엇일까요?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두 가지를 공격합니다. 하나는 플라톤에 대한 적극적 공격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니체는 확인할 수 없는 이데아의 세계를 너무 신격화하고 현실을 도외시하는 플라톤적 태도가 서양철학과 종교로 이어졌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그러한 형이상학적 가정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예언자적으로 선언한 것이지요.
이 지점에서 현대인들에게 명상이 갖는 의미와 가치, 그리고 각광받는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신의 죽음”이란 곧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교적 세계를 형성한 존재론적·형이상학적·신학적 기반이 현대사회에서 붕괴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교가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체계로서 기능했던 전통적 역할을 잃어버림으로써, 서구인들은 신의 죽음 이후 생겨난 빈자리에서 일종의 의미론적·사상적·신앙적 ‘진공(vacuum)상태’를 경험합니다. 이러한 진공상태를 채워준 것이 동양 전통의 명상이 아닐까요? 명상은 외부에 존재하는 절대적 신의 부재로부터, 내적 신성·내면의 충만함으로 서구인들의 시선을 돌려놓은 것입니다.
또한 17세기에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 하면서 인도의 경전들이 서양에 소개되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막스 뮐러24)가 주도한 50권 분량의 『동방성전』(Sacred Books of the East) 번역 등이 오늘날 동양종교가 서양에 널리 소개되고 연구되는 기반을 만든 것이지요.
(미) 저도 옥스포드에 있을 때 막스 뮐러의 향기를 직접 느꼈습니다. 동네 헌책방에 갔더니 동방성전 초판본이 몇 권 있어서 보이는 대로 사고 그랬죠(웃음).
(배) 막스 뮐러는 현대 학문으로서의 종교학(독: religionswissenschaft)을 만든 사람입니다. 막스 뮐러의 책을 보면, 서양인들이 알고 기대하는 모든 단서들이 다 그 안에 담겨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미) 막스 뮐러의 『동방성전』은 동양사상의 바탕이 되는 핵심서들을 옥스퍼드에서 50권 분량의 영어로 번역한 프로젝트였죠. 동방성전에는 불교의 중요한 경전들이나, 사서삼경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모여 번역 작업에 참여했기에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대단한 수준입니다.
(배) 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런 거장들이 이론적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요가나 명상이 서구에 널리 퍼질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미) 동방성서가 나오지 않았다면 서양 계몽사상가들은 동양사상을 체계적으로 접하지 못했을 겁니다.
(배) 그렇지 못했다면 서양도 계몽 이후 새로운 대안을 찾지 못했을 겁니다. 동양을 만나게 되면서 명실공히 세계문명을 주도하는 새로운 하이브리드 문화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미) 동서양의 영향은 상호보완적이고 함께 주고받는 것 같아요. 교수님도 월든 호수에 자주 가셨죠? 저도 마음이 착잡할 때 가서 평안을 얻고 했는데요, 마하트마 간디가 소로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까?
(배) 그렇습니다. 『시민의 불복종』25)의 영향이 컸죠. 서로 주고받는 것 같습니다. 저는 3·1 운동에도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러한 한두 사람의 역할이 정말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미산 소장님도 그러한 변화의 시작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명상과학 차담 시리즈 2로 계속됨)
미주
1) 『몰입 = Think Hard』, 황농문 지음, 서울: 랜덤하우스코리아: 알에이치코리아, 2007.
2)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서울: 해냄, 2007. (원서: Mihaly Csikszentmihalyi, Finding Flow: the psychology of engagement with everyday life, New York: BasicBooks, c1997.)
3) 도덕경 제37장, “道常無爲而無不爲”(도상무위이무불위)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하지 못하는 바가 없다”
4) 건명원(建明苑): “문화예술분야”의 창의적 리더와 인재육성을 위해 (재)두양문화재단에서 설립 및 운영하는 인재육성의 산실. (홈페이지: http://www.gunmyung.or.kr/)
5) 『의식의 스펙트럼』, 켄 윌버 지음, 박정숙 옮김, 고양: 범양사, 2006. (원서: Ken Wilber, The spectrum of consciousness, Wheaton, IL USA: Theosophical Pub. House, 1993. 최초발행일: 1977)
6) 『무경계: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서울: 정신세계사, 2012. (원서: Ken Wilber, No boundary: Eastern and Western approaches to personal growth, Boston: Shambhala, 2001. 최초발행일: 1979)
7) 켄 윌버는 다음과 같이 인간 의식의 발달 단계를 설명한다. 인터뷰에서는 5번 이후부터 언급된다.
0. Indifferentiated Primary Matrix 일차적 모체
1. Sensory/Physical Contracted 감각/물리적(감각지각적) 수준
2. Phantasmic/Emotional/Archaic 환상/정서적
3. Representational Mind/Preoperational Cognition/Magic 표상적 마음
4. Rule/Role/Concrete Operational Cognition/Mythic 규칙과 역할
5. Formal Reflexive/Formal Operational Awareness/Rational 형식과 반성적 마음
6. Centauric/Vision/Logic 비전
7. Psychic 심령
8. Subtle 정묘
9. Causal 인과(원인)
10. Supercausal, Ultimate causal 궁극 원인
11. Nondual 비이원
8) Otto Rank(1884-1939):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가, 프로이트의 가장 가까운 동료 중 하나.
9)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 테아이테토스/필레보스/티마이오스/크리티아스/파르메니데스』,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파주: 숲, 2016.
10) 데미우르고스(Δημιουργός, demiurge): 플라톤이 말하는, 물질계를 창조하는 신.
11) 에레모스(ἔρημος, eremos): 버려진 땅, 사막, 무질서
12) 폴리스(πόλις, polis): 도시, 질서
13) 코라(χώρα, khôra): 도시 바깥의 공간
14) 플라톤은 우주를 예지계(이데아의 세계)와 현상계로 나누었다. 하지만 지성으로만 파악 가능한 이데아가 어떻게 현상계의 감각적 형상을 취하게 되는지는 난점이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플라톤은 두 세계를 매개하는 제3의 공간 혹은 빈터를 상정하고, 그것을 ‘코라’라 불렀다. 코라는 두 세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코라를 이데아의 세계를 전달하는 ‘수용체(receptacle)'라 이해했다.
15) 하이데거는 코라를 “존재와 존재자의 존재론적 차이”, “존재에서 존재자를 생성하는 기제”로 이해한다. 코라는 존재에서 존재자가 생성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을 가리킨다. 플라톤이 코라를 이데아의 세계를 전달하는 수동적인 역할로 이해했다면, 이데아를 거부하는 입장에서 코라는 오히려 보다 적극적인 역할, 현상들이 생성되는 능동적인 장의 역할로 이해될 수 았다.
16) 『하이데거와 선』, 한스 페터 헴펠 지음, 이기상&추기연 공역, 서울: 민음사, 1995. (원서: Hans-Peter Hempel, Heidegger und Zen, Frankfurt am Mein: Hain, 1992, c1987.)
17) 케노시스(κένωσις, kénōsis): 스스로를 비움,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신의 성스러운 의지를 온전히 수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함.
18) (개역개정) 빌립보서 2장 6-7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19) 피론(Πύρρων, Pyrrhon): 기원전 360-270,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정에 참가해 인도에 갔다가 고대 인도의 나체 수행자를 만나 가르침을 배운다. 그들은 육체적인 쾌락을 피하고 자연을 관상하는 자들이었다. 이후 그리스로 돌아온 피론은 철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는 회의론의 기초를 만든 사람이라고 여겨지기에, 고대 회의론을 ‘피론주의(Pyrrhonism)’라 부른다.
20) 존 던(John D. Dunne, 1961-):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Center for Investigating Healty Minds(건강한 마음 연구 센터)에서 “명상 인문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 에머리 대학 종교학과에 소속되어 있는 불교철학자. 불교철학과 명상실천 그리고 인지과학의 접점을 연구한다.
21) 행법(行法): 수행자가 닦아야 할 수행법.
22) 존 카밧진(Jon Kabat-Zinn, 1944-): 메사추세츠 의과대학 명예교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명상 프로그램인 마음챙김(MBSR)의 개발자.
23) Springer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Mindfulness 핸드북 시리즈 현황은 다음과 같다.
Fabrizio Didonna (ed.), Clinical Handbook of Mindfulness, New York: Springer-Verlag, 2009.
Brian D. Ostafin, Michael D. Robinson, Brian P. Meier (eds.), Handbook of Mindfulness and Self-Regulation, New York: Springer-Verlag, 2015.
Edo Shonin, William Van Gordon, Nirbhay N. Singh (eds.), Buddhist Foundations of Mindfulness,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5.
Ronald E. Purser, David Forbes, Adam Burke (eds.), Handbook of Mindfulness: Culture, Context and Social Engagement,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6.
Kimberly A. Schonert-Reichl, Robert W. Roeser (eds.), Handbook of Mindfulness in Education: Integrating Theory and Research into Practice, New York: Springer-Verlag, 2016.
Sayyed Mohsen Fatemi (ed.), Critical Mindfulness: Exploring Langerian Models,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6. Donald McCown, Diane K. Reibel, Marc S. Micozzi (eds.), Resource for Teaching Mindfulness: An International Handbook,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6.
Steven Stanley, Ronald E. Purser, Nirbhay Singh (eds.), Handbook of Ethical Foundations of Mindfulness, Springer International Publishing, 2018.
24)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 영국에서 활동한 독일 태생의 문헌학자이자 동양학자. 인도학과 비교종교학 분야의 창시자 중 하나. 동양종교의 주요 경전들을 영어로 번역한 50권의 작업 『동방성전』(Sacred Books of the East)을 주도했다.
25)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서울: 은행나무, 2017. (원서: Henry David Thoreau, Civil Disobedience, Boonton, N.J.: Liberty Library, 1946.)
미산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 소장)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남방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대학교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중앙승가대 교수를 역임했다. 현대인을 위한 자비명상 프로그램인 하트스마일명상(HST)를 개발했다. 저서로는 『초기경전강의』, 『행복』, 『자비』 등이 있다.
배철현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하버드대학교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 고전문헌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에 개원한 미래혁신학교 건명원(建明苑) 운영위원이다. 저서로는 ≪심연≫,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여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