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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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음악 명상] Arvo Pärt (아르보 패르트) -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 (이치훈)

2021-10-22

음악은 종종 듣는 이로 하여금 명상의 순간에 이르게 한다. 모차르트의 연주곡이 그러하듯, 바흐의 음악과 중세 그레고리오 성가가 그러하듯. 음악은 정서적 감동과 미학적 숭고함을 넘어선 정신적 차원의 변화와 체험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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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vo Part 사진(출처 : https://luminousvoices.com/blog/2017/9/18/arvo-part-tintinnabuli)


내면으로 귀를 이끄는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

음악을 통한 이러한 명상적이고도 영성적인 체험을 꽤나 광범위한 청자들로부터 경험하게 한 음악이 있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ᅠ아르보 패르트(Arvo Part, 1935~)의 음악이다.

아르보 패르트는 미니멀 음악 양식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기존 클래식 현대음악의ᅠ불협화음과 파괴적인 기법으로부터 탈피하고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으로 회귀하여, 소리 그 자체에 집중하고 연구해 자신만의 명상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였다. 침묵과 고요의 음악이라 불리는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신성함을 일깨우고, 그의 음악을 통한 정신적인 치료와 영성적인 체험까지 이끌었다.

한 예로, 미국의 저명한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는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이 위로의 통로가 되었다는 수많은 말기 환자들의 보고를 소개한 바 있다. 소수 마니아들의 전유물인 클래식 현대 음악계에서 이례적인 대중적인 인기와 작품가로서의 성공을 거둔 아르보 패르트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히 연주되는 클래식 현대 음악 작곡가 중 한 명이며, 독자적인 색깔과 기법이 담긴 그의 음악은 50편이 넘는 영화 속 주요 장면들에 사용되어왔다.

"영적 미니멀리즘"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아르보 패르트의 명상적인 많은 작품들 중에서 1978년 작품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라는 곡을 소개하려 한다. 이 곡은 아르보 패르트가 자신의 조국 에스토니아를 떠나기 전에 쓴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극단적인 정적인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 중주 곡으로 작곡되었지만 비올라, 첼로,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들로 연주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소개할 음원은 피아노와 첼로 이중주 버전을 준비했다.
첼로가 가진 깊고 명상적인 소리 울림이 아르보 패르트의 곡을 만나 그 빛을 더한다.


Ryuichi Sakamoto - "Andata" (from "Async")(출처 : https://youtu.be/FZe3mXlnfNc)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영원을 노래하다

극도로 간결한 음들이 침묵과 함께 끊임없이 느리게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은ᅠ청자에게 놀랍도록 뜨거운 서정적 감동을 남긴다. 곡명 "거울 속의 거울"처럼 자칫 지루할 만큼 반복되는 음형과 선율은 마치 구도자의 길처럼 단 한 점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걷고 또 걸어간다.

첼로는 명상을 하듯ᅠ긴 호흡으로 느리게 선율적인 상행과 하행을 계속하고 피아노는 단순하고 평온한 3화음의 음형을 같은 패턴으로 연주하는데, 한정된 음역에서 반복되는 몇 개의 음정들 속에는 나머지 넓은 음역대의 수십 개 음들의 각기 색깔과 느낌들이 오롯이 응축되어있는 듯하다.

이렇듯 뜨거운 내면을 머금고 겉으로는 그 격정을 결코 드러내 보이지 않으며, 침묵과 함께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아르보 패르트 음악의 특징이다. 어떠한 드라마도, 긴장감도 없이 음악을 듣는 내내 청자의 귀를 내면으로 향하게 한다. 거울 속의 거울은 끝없이 거울을 비출 뿐이다. 이처럼 작곡가는 피아노와 첼로를 통해 끝날 것 같지 않은 침묵의 외침을 주고받고, 되풀이하며 음악 속에 영원을 담아낸다.

우주에서의 생존을 담은 영화 [GRAVITY]에서 주인공이 우주를 유영하는 장면과 함께 흘러나오는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은 관객의 호흡을 잠시 빼앗아버릴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 외 영화 [ABOUT TIMES], 국내 영화 [생활의 발견] 등 여러 영화 속 명장면에 삽입되어 영상과 함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데 사용되었다.  


음악과 삶의 본질을 향한 끝없는 탐구, 틴틴나불리(Tintinnabuli)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이라는 작품이 가진 미학적 가치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독자적인 작곡 기법 "틴틴나불리(Tintinnabuli)"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모국 에스토니아의 콘서바토리에서 작곡을 배우던 학생 시절, 그는 시대적 상황과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삶에 찾아온 위기 속에서 음악적 신념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무려 7년여 동안 '침묵의 시간'을 보내며 단 한 곡도, 단 하나의 음표도 그리지 못했던 이 시기에 아르보 패르트는,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연구하며 강렬한 성찰의 시기를 거치게 된다. 1970년대 후반 For Alina (알리나를 위하여)와ᅠ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 을 작곡하며, 그는 틴틴나불리라는 작곡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을 선보이게 된다. 틴틴나불리 양식은 곡의 전개가 오직 두 가지의 소리 또는 두 가지의 악기로만 표현되는 것으로, 하나의 악기 소리 또는 악기가 지극히 단순한 3화음의 아르페지오 방식으로 연주된다면 두 번째 악기 또는 소리는 같은 조성 안에서 순차적으로 한 음씩 상하로 이동하면서 미니멀 음악의 연주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는 이를 "멜로디와 반주를 일체로 만드는 기법"이라고 정의 내렸고, 극도로 단순하고 소박한 울림을 좋아했던 그는 이 소리가 마치 종소리와 닮았다고 하여 틴틴나불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삶의 역사와 음악적 철학을 비추어본다면 틴틴나불리는 그저 단순한 작곡기법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삶에서 추구해온 "진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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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vo Part 사진(출처 : http://thecommonvision.org/features/sounding-silence/)


"Tintinnabulation은 내가 나의 인생, 나의 음악, 나의 일에서 대답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 어두운 시간에 있을 때 한가지 외의 모든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복잡한 것들이 나 에게 혼란만 주었고 그래서 나는 화합을 찾아야만 했다. 이 한 가지는 완벽한 것들에 쌓여 감추어져 있는데, 여기서 중요하 지 않은 것들이 모두 사라지면 그것이 바로 Tintinnabli와 같다. 나는 한 음이라도 아름답게 연주되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 의 음, 하나의 쉼표, 고요한 순간들이 나에게 위안을 준다. 나는 한 성부나, 두 성부 같이 아주 작은 요소만 가지고 작업한다. 3화음과 특정한 조성, 이러한 가장 원초적인 재료만을 가지고 쌓아간다. 3화 음의 세음은 마치 종소리와 같다. 이것이 내가 Tintinnabuli라 칭하는 이유이다." -아르보 패르트-

아르보 패르트의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을 듣는 순간만큼은 절대적 고독과 고요한 침묵만으로도 신성한 힘과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느낀다. 결국 이 감동은 음악의 끝자락에 이르러 듣는 이의 "내면의 소리"와 맞닿는다. 바로 명상의 성질과 다름이 없다.


참고문헌

-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 충동’이 지닌 예술 연구의 종교학적 함의」, 김용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학사학위 논문, 2015.
- 「Arvo Pärt의 음악과 Tintinnabuli 양식 연구 –Fratres for Violin and Piano를 중심으로」, 김유은, 서울대학교 대학원 음악학 석사학위 논문, 2013.
「종교와 음악에 대한 현상학적 접근: M.Eliade와 J.Smith를 중심으로」, 하현애,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석사학위 논문, 1996.

- Consolations: Arvo Part, Alex Ross, The New Yorker, December 2, 2002.

- The Sound of Spirit, Arthur Lubow, The New York Times, October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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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이치훈
작사가, 음악 프로듀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했으며, 대중가요 및 드라마 영화 OST 작업으로 뮤지션 이문세, 화요비, 멜로망스 등의 다수 작품을 작곡, 작사, 프로듀싱 해오고 있다. 또한, 현재 명상음악 프로젝트 “퀘렌시아(Querencia)”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