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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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음악 명상] 헨릭 고레츠키 -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2악장 (이치훈)

2021-10-22

헨릭 고레츠키 -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2악장

Henryk Mikołaj Gorecki Symphony no.3 mvt.2 [Symphony of Sorrowful Songs]

 

음악 치료 학계 연구에 따르면, 슬픈 음악이ᅠ사람의 슬픈 감정을ᅠ조절하고 치유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ᅠ슬플 때ᅠ자신의 슬픔을 반영하는 슬픈 음악을 듣게 되면, 생리적으로 슬픈 음악의 가상적 슬픔에 대항하는 프로락틴을 활성화하게ᅠ되어 슬픔을 조절하고, 뇌신경학적으로는 슬픔이라는 불쾌 감정의 활성화를 차단한다고 한다. 평소 우리가 슬플 때 슬픈 음악을 찾아 듣게 되고, 음악 속에 감정 이입을 하는 행동들이 이런 과학적인 이유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클래식'ᅠ헨릭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폴란드 출신의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ᅠ헨릭 고레츠키, 그의 1976년에 발표된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를 소개하려 한다. 1991년 빌보드 클래식ᅠ차트에서 75주 동안 연속 1위에 오르고, 세계적으로 100만 장 이상의 앨범이 판매되며 클래식 현대음악으로써는 역사적으로 독보적인 성공을 거둔 이 곡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폴란드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진혼곡이다. 작품의 부제처럼 이 곡은ᅠ15세기부터 폴란드 수도원에서 전해져오는 '성 십자가의 탄식'이라는 기도문과 2차대전 중 자코판 궁의 게슈타포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었던 열여덟 소녀가 벽에 새겨놓은 애절한 기도 그리고 적에게ᅠ사랑하는 자식의 목숨을 빼앗긴 어머니의 애통함이 담긴 폴란드 민요를 바탕으로 쓰인 그야말로 '슬픔의 노래'다.ᅠ실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수용소 생활을 겪어야했던 고레츠키는 전쟁과 학살의 비통한 심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품 속에 역사적 실제 텍스트를 가장 잘 전달할 소프라노와 함께 절제된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사용하였다.

 

지하 가스실 벽면에 새겨진 열여덟 소녀의 기도 - 2 악장

3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 [슬픔의 노래]는 미니멀 음악 형식에 따라 끊임없이ᅠ슬픔의 주제를 반복하며 악기 편성과 빠르기, 강약에서 적절히 변화를 주어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전개된다.ᅠ1악장은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성모마리아의 비탄을 담은 기도문을 주제로 작곡된 곡으로ᅠ무려 26분의 긴 연주시간을 가진다.ᅠ3악장은ᅠ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죽어간 폴란드 젊은이를ᅠ아들로 둔 어머니의 원망과 탄식을 노래하는 곡으로,ᅠ느리고 음산한 느낌이 드는 오케스트라 반주 위로 울려 퍼지는ᅠ소프라노의 맑고 청아한 노래가 듣는 이의ᅠ마음을 정화시키고 평온하게 한다.ᅠ실제로 3악장은 명상을 위한 곡으로 자주 사용된다. 각각 다른 이야기를 가진 3개의 악장 중ᅠ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열여덟 소녀가 가스실로 끌려가기 직전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벽에 적은 낙서를 주제로 작곡된 2악장을 소개한다.


Henryk Mikołaj Gorecki Symphony no.3
[Symphony of Sorrowful Songs] mvt.2(출처 : https://youtu.be/9WVHLHqZafQ)

 

"Mamo, nie płacz, nie. Niebios Przeczysta Krolowo, Ty zawsze wspieraj mnie. Zdrować Mario, Łaskiś Pełna.“

"No, Mother, do not weep, Most chaste Queen of Heaven Support me always. Ave maria.“

"어머니, 비록 내가 먼저 떠나지만 울지 마세요. 고결한 천상의 여왕님께서 기도해 주실 거예요. 절 버리지 마세요, 아베마리아."

 

곡의 시작부터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주제 선율은 2악장의 핵심부로써 슬픔을 초월한 희망과 환희의 경지까지 느끼게 한다. 한없이 느리게 반복되는 오케스트라 반주 위에서 소프라노 독창은 저음역대에서 음산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때로는 고음역대에서 절규를, 때로는 가냘픈 목소리로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는 듯하다. 절제된 악기 편성과 억제된 다이내믹으로 오케스트라는 단조로운 음형을 반복하는데, 그 선율은 마치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흐느낌처럼 음울하고 또 애절하다. 곡의 중간부에서 오케스트라와 소프라노에 의해 다 같이 합주로 다시 한번 연주되는 주제 선율은 한층 고조된 감정으로 신비롭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명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기위해 고레츠키는 오케스트라 악기 편성에 있어서 오보에와 트럼펫, 일체의 타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타악기 소리는 피아노 내부를 두드리거나 현을 뜯음으로써 표현했다. 또한,ᅠ폴란드 민요를 바탕으로 작곡된ᅠ교향곡 3번을 필두로 하여 고레츠키는ᅠ새로운 형태의 선법음악 및 조성음악의 어법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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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발매된 David Zinman 지휘의 [슬픔의노래] 앨범 커버 사진 ⓒhttps://www.discogs.com


David Zinman의 지휘, Dawn Opshaw, London Sinfornietta가 참여한 이 앨범은,ᅠ[슬픔의 노래]를 연주한 여러 앨범 중 가장ᅠ'명반'으로 평가받으며 발매된 해에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31주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1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다. 이 작품의 감정적 핵심을 형성하는 연약성과 탄력성의 표면적 모순이 소프라노 던 업쇼의 목소리를 통해 완벽하게 전달되었다는 평가와 함께 이 음반은 최상급으로 인정받게 된다.ᅠ또한, 이 앨범의 커버 이미지도 한 몫을 했는데 [슬픔의 노래]를 시각적으로ᅠ기도하는 여인의 그림자로 표현함으로써 이 곡이 가지는ᅠ모성애와 슬픔이라는 큰 메시지를 앨범 커버 이미지가 그대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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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릭 고레츠키 사진 ⓒhttp://www.pr-controlled.com/pr-controlled-henry-mikolaj-gorecki-the-master-of-silent.php#.WoEApCM6_OQ

 

단순한 슬픔이 아닌 인간의 고통을 노래한 작곡가 고레츠키

헨릭 고레츠키 (Henryk Mikołaj Gorecki 1933-2010)는ᅠ클래식 현대음악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인정받은 보기 드문 작곡가로,ᅠ크지스토프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비르톨트 루토슬라프스키(Witold Lutosławski )와 더불어ᅠ폴란드 현대음악의 트로이카로 불린다. 고레츠키는ᅠ기관사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교사를 하던 도중 열여덟 늦은 나이에 카토비체 국립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프랑스 파리 국립 음악원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며, 그는 당대의 작곡가ᅠ메시앙과 불레즈, 슈톡하우젠 등의 영향받아ᅠ아방가르드적 경향을 띤 작품세계를 보인다.ᅠ1970년대부터 그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형식을 받아들이고 선법음악과 종교음악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곡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데, 바로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가 이 시기에 탄생하게 된다.

2010년 헨릭 고레츠키는ᅠ오랜 투병 끝에 76세로 타계했다.ᅠ폴란드에서 쇼팽이나 시마노프스키부터ᅠ현대에 이르기까지ᅠ이렇게 훌륭한 작곡가들이ᅠ많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스트리아와ᅠ러시아에 분할점령을 당한ᅠ이후에 약소국가로서 폴란드가 겪어야했던 역경과 그에 따른ᅠ상흔과도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많은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들이 그들의 작품에서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고통을 노래한다. '슬픔의 노래'를.

1시간 남짓한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3악장 전곡을 듣고 나면, 슬픈 꿈속에 흠뻑 젖어다 빠져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느리게 반복되는 고요함 속에 담긴 뜨겁고 강렬한 슬픈 노래는 어느새 듣는 이의 슬픔을 한 움큼 덜어가버린 듯하다.

 


참고문헌

• 「고레츠키의 교향곡 제3번의 분석 연구」, 이승선,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논문, 2016.
• Expression Surpassing Words: Gorecki’sSymphony No. 3, Op. 36 “Sorrowful Songs”, Alyssa K.Griffith, Music and Worship, December 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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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이치훈
작사가, 음악 프로듀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했으며, 대중가요 및 드라마 영화 OST 작업으로 뮤지션 이문세, 화요비, 멜로망스 등의 다수 작품을 작곡, 작사, 프로듀싱 해오고 있다. 또한, 현재 명상음악 프로젝트 “퀘렌시아(Querencia)”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