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각 분야 명사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주제의 인문이야기를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지혜의 깊이를 더하시길 바랍니다.

명상[음악 명상] 피아노 한 대로 안겨주는 우주같은 위로 Joep Beving 의 [Solipsism] (이치훈)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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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30cc.be/en/programma/item/focus-op-modern-klassiek---joep-beving-nl—echo-collective-plays-amnesiac

얼핏 보아도 2M 훌쩍 넘는 큰 키에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 덥수룩한 수염의 외모가 마치 이솝우화 속 거인을 떠올리게 하는 개성 강한 비주얼의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윱 베빙 (JoepBeving). 그의 큼지막하고 길쭉한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 위에 풀어놓는 위로의 선율은 그만의 방식대로 천천히 그러나 풍성하게, 신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비틀비틀 그러나 선명하게 우주를 그린다.

 

먼 길을 돌아온 음악가의 운명적 이야기

윱 베빙 음악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찬사와 함께 꼬리표처럼 꼭 따라다니는 그의 흥미로운 운명적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14세 때부터 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고 지역 재즈페스티벌에 참가해 첫 데뷔 무대를 가질 정도로 애정이 남달랐지만, 손목 부상으로 인해 피아노를 더 이상 연주할 수 없게 되며 진학했던 음악학교를 그만 두게 된다. 그리고 그는 경제학으로 전공을 변경하고 이후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강했다. 그는 말하길,ᅠ"음악은 항상 내 마음속에 있었고, 앞으로도 모든 순간 그럴 것입니다." 항상 음악에 대한 열망이 끊이지 않았던 그는 광고 회사에 취직하여 브랜드 광고에 삽입되는 음악을 고르고 작곡하는 일을 10년간 하게 된다. 그 시절 그는 여가 시간마다 틈틈이 재즈 피아노 연주와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뛰어들었지만, 그는 추억하길 "그것은 나의 음악이 아니었고, 나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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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melbournecritique.com.au/joep-beving


어느 날, 음악의 천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우연히 그를 찾아와 행운의 순간을 수놓는다. 회사 업무상의 일정으로 그는 세계적인 광고제인 리옹 국제 광고제에 참석하기 위해 칸에 방문하게 되고 광고제 기간 중 그가 묵던 호텔의 로비에서 그는 피아노로 본인이 직접 작곡한 곡을 연주하였다.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삼삼오오 피아노 가까이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의 연주를 들은 많은 이들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 경험은 회사원 10년 차였던 윱 베빙에게는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고, 이를 통해 본인의 음악에 대한 큰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는 당장 자비를 들여 자신의 집 부엌에서 작곡한 음악들을 직접 연주, 녹음하였고 2015년 자신의 첫 앨범인ᅠ[Solipsism]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앨범의 수록곡 중 "The Light She Brings"라는 곡이ᅠ유럽의 스트리밍 서비스인ᅠ"SPOTIFY"에서ᅠ"평화로운 피아노 음악"이라는 플레이리스트로 수록 및 추천이 되어 점차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듣게 되자, 이 앨범의 수록곡 모두가 인기를 얻게 되어 결국 그의 첫 앨범인 [Solipsism]은 5,100만 건의 스트리밍 기록을 세우며 큰 성공을 거뒀다.ᅠ온라인 음원차트의 큰 성공적인 결과로 윱 베빙은 네덜란드의 한 인기 TV 프로그램에 초청되어 공연을 선보였고, 다음 날 그의 앨범은 음원차트에서 영미권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 "One Directon"을 밀어낸다.

한 회사원의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또 한 번 영화 같은 운명의 사건을 만난다. 베를린에서 거주하는 윱 베빙의 친구는 어느 날 우연히 한 바(BAR)에서 윱 베빙의 음악을 연주하게 되는데, 그 바에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ᅠ"도이치 그라모폰"의 임원 크리스티앙 바주라가ᅠ자리해 있었다. 윱 베빙의 음악에 깊은 인상을 받은 크리스티앙 바주라는ᅠ머지않아 콧대 높고 까다롭기 소문난 도이치 그라모폰과 윱 베빙의 계약 체결을 이끌었고, 이후 윱 베빙의 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어쩌면 영화보다도 더 기적 같은 윱 베빙의 이야기는 그의 음악과 더불어 현대인들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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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s://www.amazon.co.uk/Solipsism-Joep-Beving/dp/B01BXNX86K



Solipsism, 세상을 향한 고요한 독백

회사원이었던 윱 베빙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무 일정을 마치고 귀가해, 가족이 잠든 새벽 틈에 주방에서 직접 장비를 설치하고 연주 녹음하여 3달 만에 그의 첫 앨범 [Solipsism]을 발매했다. 이 앨범 안에는 손목 부상으로 원치 않게 음악을 포기해야 했던 한 음악가의 20년이 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윱 베빙의 음악에 대한 철학, 인간에 대한 철학이 녹아들어 그의 음악은 진정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위로를 안겨준다. 앨범 타이틀명 "Solipsism(유아론, 唯我論 : 이 세상은 자신만이 존재하고 타인이나 그 밖의 다른 존재물은 자신의 의식 속에 있다는 철학 사상)"에서도 그의 음악관을 엿볼 수 있는데, 아래는 윱 베빙의 자신의 음악관과 "Solipsism"에 대한 짧은 글이다.


_20180410150725.jpgⓒ https://2017.festival.melbourne/events/joep-beving/#.WsrW3yM6_OQ


Solipsism (유아론, 唯我論)ᅠ은 오직은 현실이 한 개인의 마음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철학적인 사상을 일컫습니다. 한 개인의 마음을 벗어난 모든 것들과 외부 세계라고 일컸는 것 그리고 타인의 마음들은, 절대 명백하게 알아질 수 없고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음악은 존재적인 의사소통에 대한 실험입니다. 완벽한 미학에 대한 믿음이죠. 보편적이고 형이상학적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죠."


(출처: https://youtu.be/9WVHLHqZafQ))

 

Joep Beving - "Midwayer" from [Solipsism]

중간자라는 뜻의 "Midwayer"는 끊임없이 본질에 대해 탐구하며, 세상과 소통하려는 윱 베빙의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곡이다. 그는ᅠ매우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단순한 음들을 사용한다. 미니멀 음악이 그렇듯, 제한된 음역 안에서 단출한 음들이 최대한 간단한 방식으로 곡을 진행시켜나가지만 그 울림 안에는 깊이를 내려다볼 수 없는 심연의 감정들이 응축되어있다. 한 개인(윱 베빙)의 음악을 통한ᅠ자기 성찰이 이내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거대한 위로와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출처: https://youtu.be/WqlyrahFKsY))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프렐류드 Op.28 no.4

윱 베빙의 음악은 쇼팽을 연상시킨다. 평생을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만을 위한 음악을 작곡했던 쇼팽의 음악 속 "엘레지"가 윱 베빙의 음악에서도 느껴진다. 인간의 고독과 근본적인 슬픔, 외로움을 피아노 건반 위에 풀어놓은 쇼팽의 수많은 명곡들 중ᅠ"Midwayer"ᅠ특히 "Prelude in E-minor (Op.28 no.4)"와 비슷한 감정선을 노래하는 것 같다. 두 곡은 느리고 차분한 호흡 속에서 격정적이 않으면서도 분명하고 단단한 슬픔의 감정을 몇 개의 건반을 통해 표현한다.

음악은 듣는 이에 따라 모두 천차만별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한편, 음악은 여러 청자들에게 하나의 공통된 주제적 감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윱 베빙의 음악을 일컬어 "현대인을 위한 위로"라 한다. 음악을 통해 현 시대에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시키고자하는 그의 음악관과 이상적 세계관이 그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도 공통된 감정의 메시지로 전달되어온다.

 


참고문헌

• From kitchen composer to Spotify star – Dutch pianist hits big time, Dalya Alberge, The Guardian, May 1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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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이치훈
작사가, 음악 프로듀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했으며, 대중가요 및 드라마 영화 OST 작업으로 뮤지션 이문세, 화요비, 멜로망스 등의 다수 작품을 작곡, 작사, 프로듀싱 해오고 있다. 또한, 현재 명상음악 프로젝트 “퀘렌시아(Querencia)”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