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각 분야 명사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주제의 인문이야기를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지혜의 깊이를 더하시길 바랍니다.

종교[가톨릭] 한국 가톨릭 문화와 언어 (김윤욱)

2021-10-22

통곡의 벽 No! 반전의 벽 영어

작년 1월 미국 현지 성당소임으로 내정이 되고 비자 준비를 하면서 가장 걱정한 것이 언어였다. 사제로 7년차. 보좌신부 생활도 반복되다 보니 이제 웬만한 행사는 잘하지는 못해도 차질없이 치를 수 있지만 언어는 정말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내 말을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니... 내 강론을 신자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니....” 하긴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식 영어교육으로 영어에 자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라는 생각으로 인터넷에 영어 미사를 듣고 휴대폰에 영어회하 앱을 들으며 주섬주섬 영어에 대한 접근을 하다가 지난 8월 막상 이곳에 와서 보니 내 걱정과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신자분들이 한국보다 더 한국적으로 살아가고 있고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더 한국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열의가 있었다. 왜 미국까지 와서 한국적으로 살려고 할까? 그냥 영어 배우고 적당히 미국식으로 살면 안될까? 라는 생각을 하던차에 여러 신자분들과 주변에 다른 한인성당 공동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녀교육에 실패(?)한 세대가 있었다. 지역과 세대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에 15세~25세, 20세~30세 정도의 아이들의 언어교육에 약간에 문제가 있었다.

_20190118094318.jpg

▲ 워싱턴 한인성당의 자랑 성김대건 한글학교

 

잃어버린 어린양. 영어권

부모는 한국사람이지만 자녀는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미국인으로,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한국어는 필요 없으니 영어교육만 열심히 시켰던 세대가 있었다. 거기에 이민 생활을 하며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면 아이의 외국어 교육에 방해가 된다는 견해가 있었다. (이민와서 한국어를 사용하면 영어를 배우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 그러나 그 결과는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부모와의 대화는 줄어들었고 시간이 지나며 단절되었다. 무엇보다 한국인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한국식으로 살아가는 부모들의 정서를 아이들은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이 부모의 바램대로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그 아이들은 미국인 공동체도, 한국인 공동체에도 끼지 못한 채 공중에 붕~뜨게 되었다. (참고로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한국말을 전혀 못한다) 이렇게 한국인이지만 한국말은 전혀 모르고 영어밖에 못하는 이들을 여기서는 영어권이라 부른다. 실제 본당에 와서 주어진 첫번째 사목숙제가 한국청년 사이에도 끼지 못하고 자기들만의 공동체도 없는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정체성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공동체를 이루려 해도 한국인들 사이에 한국말은 전혀 할 줄 모르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난 누구? 또 여기는 어디?

2~30년 전 이곳에 어렵게 자리를 잡고 한국말은 집에서 충분하니 영어를 제대로 배워 주류사회에 진출하라는 부모의 마음을 모를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부모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와 정서를 통하는 언어가 받쳐주지 않으면 정체성에 혼란과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의식이 약해 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곳이 아무리 미국땅이라 해도 우리 신자들이 살아가는 공동체는 철저히 한국사회다. 한국사회에 살면서 한국어를 모르고 영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서울 한복판에서 영어만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들린다. 미국의 한인사회에서 영어를 잘하는 것은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기본적인 능력이지 마치 한국에서 영어를 잘하 듯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_20190118095701.jpg

▲ 교사워크샵-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이곳에서 태어난 영어권 선생님들이라 회의와 대화를 모두 영어로 한다

 

언어와 삶의 길잡이 한글학교

그래서 각 한인 성당에서 운영하는 한글학교가 붐빈다. 지금 초등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기보다 한 세대위의 이민 선배들이 실수한 언어교육을 타산지석으로 삼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글학교는 단순히 어학원을 넘어 한국과 한국의 정서를 가르친다. 내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 이지만 내가 혈통으로는 어느 나라사람이고 내가 앞으로 만나게 될 수 많은 한국인들과 어떤 정서를 나누고 공감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다. 이렇게 한글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쳐 주지만 종종 아이들의 언어교육을 한글학교에 전적으로 위탁하는 부모들이 있다. 다시 말해 한글학교에서만 한국어를 쓰고 집에서는 아이들이 편하다는 영어로만 대화를 하는 가정이 꽤 있다. “한글학교에서 열심히 배우고 있으니 괜찮지 않나요?” 라고 묻는 부모들을 보면 아직 자녀가 미취학 아동이기에 언어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아 내심 걱정이 든다.

하지만 먼저 아이를 키워본 부모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2시간 한글학교를 보내는 것으로는 한국어 교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만약 그런 부모들의 의견이 맞다면 모든 한국사람은 유창한 원어민 수준의 영어가 가능해야 할것이 한국에서 월.수.금 어학원에 다녀서 영어실력이 일취월장 늘었는가.... 주 1회 한글학교와 주 3회 영어회화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배움의 갈증들이 있는 것이다. 언어는 학문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이고 정서다. 인간의 정서가 몇 시간의 수업으로 완성 될 수가 없다는 것을 부모들도 잘 알고 있기에 가정에서 아이들과 더 많은 한국어 대화를 해야 하고 가르치려 노력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와 사회에서 쓰고 접하는 영어의 영향력이 워낙 강력하기에 한국어도 그만큼 강하게 받쳐주는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한글학교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집에서 한국말을 하는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한글학교만 보내면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이 알아서 될거라 생각하는 부모들은 영어를 학문으로 배운 한국의 영어교육, 영어 10년을 배워도 미국와서 햄버거 하나 주문하지 못하는 이 안타까운 외국어 교육의 현실을 하루 빨리 깨달으면 좋겠다.

 

아들의 타산지석 손자

언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본당 신자중에 의미있는 케이스를 접했다. 할머니 손을 잡고 성당에 나온 10살 꼬마아이인데 한국말이 아주 유창하다. 무엇보다 이 어린친구가 대단한 것이 진짜 한국에서 쓰는 한국 사람들만의 표현과 억양을 사용한다. 그 꼬맹이 친구의 한국말이 너무나 귀엽고 신기해서 조심스레 할머니께 여쭈어 보니 그 안에는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할머니의 자녀들은 위에 언급한 일명 영어권 아이들이었다. 20년 전, 당신들이 이민초기 겪었던 고통스러운 언어의 장벽을 미리 허물어 주기 위해 무조건 영어만 가르친 자녀들이 바로 그 할머니의 아들 딸들이었고 그 장벽이 무너지면서 자녀들과의 관계도 소원해 지게 된 것이다. 아들이 결혼해 한국인 며느리가 들어왔지만 며느리도 한국말은 전혀 모르는 것이 정작 아들이 한국어를 모르니 한국말 하는 사람과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손자를 보시고서 독하게 마음을 먹으셨다고 한다. “내 아들은 저리 보냈지만 손주 만큼은 잃지 않으리라!” 그렇게 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는 지금도 유창한 영어와 함께 한국 할머니들이 쓰는 재미난 표현과 억양을 사용하는 유일한 주일학교 꼬맹이로 자라고 있다.

_20190118094321.jpg

▲ 한국과 한국의 정서를, 앞으로 만나게 될 수 많은 한국인들과 어떤 정서를 나누고 공감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배운다_(한글학교)

 

귓가를 스치는 달콤한 한쿡말

한국어를 모국어로 배워 자라온 청년들이 종종 한국에 놀러(?) 여행을 가곤 한다. 복잡한 서울도심이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물어보면 한국 문화가 친숙한 미국청년들에게 한국은 정말 재미있고 신나는 곳이라 한다. 늦은 시간 퇴근길 소주한잔, 한밤에 팁 한푼 안줘도 치킨에 족발이 배달되고 밤늦게 야경을 보며 거리를 걸어도 안전한 한국은 미국과 다르게 매우 흥미로운 곳이었다. (먹는건 음식편에서 자세히 얘기하겠다)

그중에 독특한 재미라는 것이 한국에 가니 한국말이 들린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한국말 하는게 당연한거지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를 물어보니 평소 한국사람을 만나야 한국말을 하고 듣다가 길가다 한국말이 귀에 들리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다고 한다. 사람들이 한국말을 하고 그 말과 대화가 내 귀에 솔솔 들어오고 평소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듣지 못했던 생소한 표현과 발음들이 귀를 자극하니 길가다 야채가게 아주머니들의 대화 얘기를 들어도 그렇게 재미있게 들린다.

철학자 비트겐 슈타인은 언어와 철학에 대한 관계를 조명하면서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을 넘어 사람의 사고와 철학을 규정짓는 매우 중요한 그 무엇임을 설명했다. 그 언어의 차이에 따라 사고와 철학이 다르고 그 생각이 다른 만큼 행동과 삶과 문화가 다른 영어권과 한국어권의 신자들의 생활을 보며 정말 언어는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라는 것에 전적으로 공감을 한다.

이런 부모들의 생각과 바램과 다르게 지금도 한국어를 어려워 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수업과 회의와 미사의 절반은 모두 영어로 진행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인 성당이지만 한국어와 영어사이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신경전이 일어나는 듯하다. 이 보이지 않는 투쟁에서 어느 쪽이 이길지, 아니면 서로 세대 차이를 두고 평화로운 공존을 이어갈지 필자도 많이 궁금하다. 하지만 언어의 장벽이 있더라도 한국 사람으로의 정서를 가정과 성당-신앙공동체에서 잘 간직하며 모두가 한국인 특유의 정서인 “오순도순”을 살아가기 소망해 본다.


_20190117103030.jpg

필자_김윤욱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사당동, 화곡본동, 미아동 성당에서 사목
현재 워싱턴 대교구 성 김대건 안드레아 한인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