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은 한국음식을 먹는다
작년 8월 이곳에 도착해서 시차도 적응되기 전에 첫번째 맞이한 행사가 바로 청년들의 여름캠프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수고한 청년들이 2박 3일 동안 같이 게임과 스포츠를 즐기며 친교를 나누는 행사. 서울에서 보좌신부를 하면서 4~50명. 많게는 100명까지 캠프를 해서인지 이곳에 20명 남짓한 청년들과 함께한 자리가 행사로서 그리 부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 알게 모르게 부담스러운 것이 아직 청년들의 이름과 세례명, 청년신자들의 삶에 대해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친구들의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지 못해 나 혼자 이방인처럼 지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도 잠시 저녁 식사시간이 되자 각자 파트를 나눠 식사준비를 하는데 세상에!!! 누구는 삼겹살을 굽고 누구는 부대찌개를 끓이고 누구는 상추를 씻고 누구는 시원한 소주+맥주(소맥)을 준비했다. “세상에.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구나......” 미국을 향하며 막연한 생각이 소주나 삼겹살은 이제 떠나고 맥주나 소고기를 먹을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청년들과 소주에 삼겹살로 첫 저녁식사를 마쳤다. 고기를 먹고나니 그 남은 불판에 한국적인 후식, 볶음밥이 그리웠다. “혹시, 이 친구들도 밥을 먹을까?”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철판 그릴에 남은 재료를 모아 놓고 계란과 고추장을 넣고 비빈 그 엉성한(?) 볶음밥을 청년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아! 한국사람은 어디를 가도 먹는것이 똑같구나. 그래서 한국사람이구나.” 그 서먹했던 마음의 벽을 한번에 허물어 트린건 삼겹살, 소주, 부대찌개의 3단 콤보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인상깊은 첫 만남이었다.
▲ 청년캠프에서 청년들과 함께먹은 미쿡 삼겹살
그래서 조심히 물었다. “왜 미국식으로 그릴에 스테이크나 맥주 를 안 먹고 한국식 김치, 삼겹살, 소주 같은 한국 음식을 먹어요?” (이곳에 도착하고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미국 이민생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지라 미국에 살면 무조건 미국음식만 먹고 살거라고 생각한 지극히 단순한 이 질문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우습다.) 이 우스운 질문에 청년들은 놀란 마음을 조용히 쓸어 내리며 미국이 고기나 야채는 좋지만 한국음식이 훨씬 맛있고 모두가 한국에서 태어난 지라 어릴적 먹고 자란 한식을 그리워 함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지친 이민생활의 영혼을 달래주는 소울푸드(Soul Food)
우리 성당 신자분들의 중장년층은 청년시기에 이민 오신분들이 많고 청년들은 그분들의 자녀들로 초.중학생 시절 이민 온 경우가 많다. 그 짧은 청소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고 미국에서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태어나면서 부터 먹고 자란 그 음식에 대한 추억은 무조건 김치, 전골, 볶음, 찌게 각 지역의 향토음식들에 대한 간절한 소망으로 꽃피어 있었다. 보통 여행을 가면 그 현지에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려 노력하는데 여행이 아니라 현지에 정착하게 되면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현지에 음식보다 내 속이 편하고 기억저편에 향수에 젖은 추억이 묻어나는 음식이 더 좋은가 보다. 그래서 신자분들과 음식 얘기를 나누다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맛집 음식 사진을 보여주면 솔직히 신자분들이 약올라 하신다. “신부님 저희 지금 약 올리시는거죠?” 없는 것이 없는 이 풍부한 나라에서 뭐가 아쉬우실까 생각해 보니 한국에만 있는 음식은 이곳에는 없었다. 제철 해산물과 각 지방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들.
▲ 한국에서는 고기를 먹고 볶음밥을 먹지만 이곳에 고기집은 볶음밥 후식이 없어 한국 고기집 볶음밥은 청년들에게 매우 생소하고 인기있는 메뉴다
사람의 나이? 음식의 나이?
그러면 여기서 궁금한 것이 한국에 몇 살까지 살다 와야, 다시말해 한식을 몇 살까지 먹어야 그 음식에 적응이 되고 그 음식에 향수가 생기는 것일까? 왜냐하면 이곳에서 태어나 집에서 어머니가 뜨문뜨문 해주신 한식을 먹은 친구들은 한국음식과 한국식으로 함께 식사하는 문화에 잘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작년 말 송년모임에서 영어권 청년들은 맥시칸 또띠아 음식을 단체로 주문해 먹었고 한국어권 청년들은 성당에서 직접 만든 오삼불고기와 어묵탕을 먹은걸 보면 잔칫날 모두 둘러앉아 먹는 음식과 문화가 확연히 다르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부터, 얼마 만큼 한국음식을 접해야 속된말로 “먹고 죽어도” 한식을 찾는 한국사람이 되는 걸까? 지금 나의 짧고 짧은 미국 생활에서 우리 청년들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12~14살 정도라는 생각이 된다. 최소한 그 정도의 나이까지 한국에서 지내다 온 친구들은 한식에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한식을 만나면 반갑게 접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마 한국에서도 초등학교는 넘어야 한식에 매운 양념을 매콤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경계선을 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필자는 이 청소년기 초반의 나이가 실제 생물학적인 나이만을 넘어 정신-정서적인 나이도 포함된다고 생각된다. 12~13살이면 사춘기가 시작하며 내가 누구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인데 그 정도 연령을 보낸 친구들은 식생활로도 한국인, 정서적으로 한국 사람이라는 정서를 가지고 이곳에 오는 것이다.
피자와 감자칩 VS 소고기 무국과 김치
그래서 주일날 오전에 자모회 어머니들이 준비해주시는 주일학교 꼬맹이들의 간식을 보면 한없이 귀엽고 너무나 특이하다. 대표적인 간식이 두툼한 미국식 피자 한 조각(또는 긴 소세지가 들어간 핫도그)에 과일반쪽 그리고 꼭 과자 칩(Chip)이 있어야 한다. 원래 이 동네 음식 조합으로는 감자튀김이 있어야 하는데 주일마다 감자를 튀길 수가 없으니 피자옆에 감자칩 과자를 한주먹씩 얹어준다. “아니 피자 한 조각이 밥이 될까?”라는 질문은 둘째 치고 꼭 칩이 있어야 한다니. 칩을 준비하지 못하면 아무 과자라도 하나 있으면 된다는 어머니들의 말씀을 들으니 감자과자가 아이들에게 흰쌀밥 정도 되는 메뉴정도 되는가 보다. 아이들은 그 피자와 감자칩과 과일을 매우 훌륭한 한끼 식사로 만족하며 밥을 먹는다.
▲ 주일 점심에 판매되는 소박한 한국식 점심식사. 간소한지만 한국 가정집에서 먹는 메뉴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 아이들 바로 옆 테이블에 어른들은 소고기 무국과 김치에 밥을 말아 드신다. 이 어른들 보시기에 피자는 정말 난감한 점심이고 아이들 보기에 소고기 국은 매우 특이한 스프일텐데 피자와 소고기국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 주며 평화로운 주일 점심시간을 이어간다. (정말 그 식사장면을 처음 본 그날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해 기억이 난다.@.@a)
피자든 소고기국이든 한솥밥, 같이 먹어야 한다.
한인성당 마다 시설과 구조가 다르겠지만 우리 성당은 친교실이라는 아주 큰 식당과 같은 시설이 있다. 그 시설이 한국성당과 다른 것이 있다면 테이블 모양이 독특하다. 보통 한국에 많은 직사각형 모양이 아니라 동그랗게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파티 테이블 모양이고 주일 미사가 끝나면 7~8명씩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같이 한다. 거의 모든 신자들이 미사가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꼭 친교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매주 4$ 짜리 식사를 같이 먹는데 그 광경을 처음봤을 충격이 대단했다. 이 모든 신자분들이 한곳에 모여 식사를 한다니......
매주 구역별로 번갈아 가며 음식준비를 하고 1인당 4불씩 식사비를 받는데 사실 그 음식의 정도를 보면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잔치국수, 소고기무국, 육개장, 콩나물밥, 김치 콩나물국 등등에 반찬 2가지. 정말 딱 4400원 정도의 음식인데 우리 신자분들은 주일에는 이 친교실 밥을 꼭 드셔야 한다. 어른들은 반드시 드셔야 한다. 아니, 밖에 식당가시면 한.중.일.서양.미국식 없는 것이 없고 풍성한 고기에 신선한 야채 가득 메뉴가 넘치는데 왜 이 좋은 주일 점심에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드시는지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신자분들이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이 식탁이 이해가 가고 우리 신자분들에게 꼭 필요한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신자분들이 주일미사를 마치고 모여 한국음식을 드시는 것은 주린배를 채우기 위한 것을 넘어 한국사람을 만나 한국적인 정서를 나누는 소중한 자리다. 한 주 동안 직장에서 영어로만 살아왔던 입이 드디어 한국말을 하며 숨통이 트이고 한국적인 이야기 한국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하며 어르신들이 오란도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이 주일식사가 없으면 우리 어르신들 어쩔뻔했나 가슴을 쓸어내린다.
▲ 주일미사 후 거의 모든 신자들은 친교실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각자 연령과 공동체 별로 테이블에 앉아 식사와 함께 지난 한주간의 삶을 나눈다
하나의 빵을 쪼갠 최후의 만찬 한솥밥
피자든 소고기국이든 같이 둘러앉아 하나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교리와 매우 닮은 부분이 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최후의 만찬에서 하나의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시며 이제 하나의 빵을 나누어 먹었으니 우리 모두가 한 몸이라는 교리를 설명해 주셨다. 우리 신자분들도 영적으로는 미사중에 주님의 식탁에서 거룩한 빵과 포도주를 통해 영혼의 양식을 채우고 미사가 끝난후에는 친교의 식탁에서 고향의 음식을 나누며 오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것을 보면 참 흐뭇하다. 이렇게 미국을 살아가는 한국인, 우리성당 신자분들은 길이길이 한국음식의 힘으로 살아갈 것이고 주일 오후 같이 둘러앉은 소박한 식탁에 힘으로 앞으로의 한주도 힘차게 살아가실 것이다.
필자_김윤욱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사당동, 화곡본동, 미아동 성당에서 사목
현재 워싱턴 대교구 성 김대건 안드레아 한인성당 소임 중
한국사람은 한국음식을 먹는다
작년 8월 이곳에 도착해서 시차도 적응되기 전에 첫번째 맞이한 행사가 바로 청년들의 여름캠프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수고한 청년들이 2박 3일 동안 같이 게임과 스포츠를 즐기며 친교를 나누는 행사. 서울에서 보좌신부를 하면서 4~50명. 많게는 100명까지 캠프를 해서인지 이곳에 20명 남짓한 청년들과 함께한 자리가 행사로서 그리 부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음 한 켠에 알게 모르게 부담스러운 것이 아직 청년들의 이름과 세례명, 청년신자들의 삶에 대해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친구들의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지 못해 나 혼자 이방인처럼 지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도 잠시 저녁 식사시간이 되자 각자 파트를 나눠 식사준비를 하는데 세상에!!! 누구는 삼겹살을 굽고 누구는 부대찌개를 끓이고 누구는 상추를 씻고 누구는 시원한 소주+맥주(소맥)을 준비했다. “세상에. 여기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구나......” 미국을 향하며 막연한 생각이 소주나 삼겹살은 이제 떠나고 맥주나 소고기를 먹을거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청년들과 소주에 삼겹살로 첫 저녁식사를 마쳤다. 고기를 먹고나니 그 남은 불판에 한국적인 후식, 볶음밥이 그리웠다. “혹시, 이 친구들도 밥을 먹을까?”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철판 그릴에 남은 재료를 모아 놓고 계란과 고추장을 넣고 비빈 그 엉성한(?) 볶음밥을 청년들은 너무나 좋아했다. “아! 한국사람은 어디를 가도 먹는것이 똑같구나. 그래서 한국사람이구나.” 그 서먹했던 마음의 벽을 한번에 허물어 트린건 삼겹살, 소주, 부대찌개의 3단 콤보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인상깊은 첫 만남이었다.
▲ 청년캠프에서 청년들과 함께먹은 미쿡 삼겹살
그래서 조심히 물었다. “왜 미국식으로 그릴에 스테이크나 맥주 를 안 먹고 한국식 김치, 삼겹살, 소주 같은 한국 음식을 먹어요?” (이곳에 도착하고 1주일이 채 되지 않아 미국 이민생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지라 미국에 살면 무조건 미국음식만 먹고 살거라고 생각한 지극히 단순한 이 질문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우습다.) 이 우스운 질문에 청년들은 놀란 마음을 조용히 쓸어 내리며 미국이 고기나 야채는 좋지만 한국음식이 훨씬 맛있고 모두가 한국에서 태어난 지라 어릴적 먹고 자란 한식을 그리워 함을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지친 이민생활의 영혼을 달래주는 소울푸드(Soul Food)
우리 성당 신자분들의 중장년층은 청년시기에 이민 오신분들이 많고 청년들은 그분들의 자녀들로 초.중학생 시절 이민 온 경우가 많다. 그 짧은 청소년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고 미국에서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태어나면서 부터 먹고 자란 그 음식에 대한 추억은 무조건 김치, 전골, 볶음, 찌게 각 지역의 향토음식들에 대한 간절한 소망으로 꽃피어 있었다. 보통 여행을 가면 그 현지에 음식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려 노력하는데 여행이 아니라 현지에 정착하게 되면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현지에 음식보다 내 속이 편하고 기억저편에 향수에 젖은 추억이 묻어나는 음식이 더 좋은가 보다. 그래서 신자분들과 음식 얘기를 나누다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맛집 음식 사진을 보여주면 솔직히 신자분들이 약올라 하신다. “신부님 저희 지금 약 올리시는거죠?” 없는 것이 없는 이 풍부한 나라에서 뭐가 아쉬우실까 생각해 보니 한국에만 있는 음식은 이곳에는 없었다. 제철 해산물과 각 지방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들.
▲ 한국에서는 고기를 먹고 볶음밥을 먹지만 이곳에 고기집은 볶음밥 후식이 없어 한국 고기집 볶음밥은 청년들에게 매우 생소하고 인기있는 메뉴다
사람의 나이? 음식의 나이?
그러면 여기서 궁금한 것이 한국에 몇 살까지 살다 와야, 다시말해 한식을 몇 살까지 먹어야 그 음식에 적응이 되고 그 음식에 향수가 생기는 것일까? 왜냐하면 이곳에서 태어나 집에서 어머니가 뜨문뜨문 해주신 한식을 먹은 친구들은 한국음식과 한국식으로 함께 식사하는 문화에 잘 적응을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작년 말 송년모임에서 영어권 청년들은 맥시칸 또띠아 음식을 단체로 주문해 먹었고 한국어권 청년들은 성당에서 직접 만든 오삼불고기와 어묵탕을 먹은걸 보면 잔칫날 모두 둘러앉아 먹는 음식과 문화가 확연히 다르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부터, 얼마 만큼 한국음식을 접해야 속된말로 “먹고 죽어도” 한식을 찾는 한국사람이 되는 걸까? 지금 나의 짧고 짧은 미국 생활에서 우리 청년들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12~14살 정도라는 생각이 된다. 최소한 그 정도의 나이까지 한국에서 지내다 온 친구들은 한식에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한식을 만나면 반갑게 접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마 한국에서도 초등학교는 넘어야 한식에 매운 양념을 매콤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경계선을 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필자는 이 청소년기 초반의 나이가 실제 생물학적인 나이만을 넘어 정신-정서적인 나이도 포함된다고 생각된다. 12~13살이면 사춘기가 시작하며 내가 누구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인데 그 정도 연령을 보낸 친구들은 식생활로도 한국인, 정서적으로 한국 사람이라는 정서를 가지고 이곳에 오는 것이다.
피자와 감자칩 VS 소고기 무국과 김치
그래서 주일날 오전에 자모회 어머니들이 준비해주시는 주일학교 꼬맹이들의 간식을 보면 한없이 귀엽고 너무나 특이하다. 대표적인 간식이 두툼한 미국식 피자 한 조각(또는 긴 소세지가 들어간 핫도그)에 과일반쪽 그리고 꼭 과자 칩(Chip)이 있어야 한다. 원래 이 동네 음식 조합으로는 감자튀김이 있어야 하는데 주일마다 감자를 튀길 수가 없으니 피자옆에 감자칩 과자를 한주먹씩 얹어준다. “아니 피자 한 조각이 밥이 될까?”라는 질문은 둘째 치고 꼭 칩이 있어야 한다니. 칩을 준비하지 못하면 아무 과자라도 하나 있으면 된다는 어머니들의 말씀을 들으니 감자과자가 아이들에게 흰쌀밥 정도 되는 메뉴정도 되는가 보다. 아이들은 그 피자와 감자칩과 과일을 매우 훌륭한 한끼 식사로 만족하며 밥을 먹는다.
▲ 주일 점심에 판매되는 소박한 한국식 점심식사. 간소한지만 한국 가정집에서 먹는 메뉴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 아이들 바로 옆 테이블에 어른들은 소고기 무국과 김치에 밥을 말아 드신다. 이 어른들 보시기에 피자는 정말 난감한 점심이고 아이들 보기에 소고기 국은 매우 특이한 스프일텐데 피자와 소고기국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해 주며 평화로운 주일 점심시간을 이어간다. (정말 그 식사장면을 처음 본 그날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해 기억이 난다.@.@a)
피자든 소고기국이든 한솥밥, 같이 먹어야 한다.
한인성당 마다 시설과 구조가 다르겠지만 우리 성당은 친교실이라는 아주 큰 식당과 같은 시설이 있다. 그 시설이 한국성당과 다른 것이 있다면 테이블 모양이 독특하다. 보통 한국에 많은 직사각형 모양이 아니라 동그랗게 여럿이 둘러앉을 수 있는 파티 테이블 모양이고 주일 미사가 끝나면 7~8명씩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같이 한다. 거의 모든 신자들이 미사가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꼭 친교실로 향한다. 그곳에서 매주 4$ 짜리 식사를 같이 먹는데 그 광경을 처음봤을 충격이 대단했다. 이 모든 신자분들이 한곳에 모여 식사를 한다니......
매주 구역별로 번갈아 가며 음식준비를 하고 1인당 4불씩 식사비를 받는데 사실 그 음식의 정도를 보면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잔치국수, 소고기무국, 육개장, 콩나물밥, 김치 콩나물국 등등에 반찬 2가지. 정말 딱 4400원 정도의 음식인데 우리 신자분들은 주일에는 이 친교실 밥을 꼭 드셔야 한다. 어른들은 반드시 드셔야 한다. 아니, 밖에 식당가시면 한.중.일.서양.미국식 없는 것이 없고 풍성한 고기에 신선한 야채 가득 메뉴가 넘치는데 왜 이 좋은 주일 점심에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드시는지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신자분들이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이 식탁이 이해가 가고 우리 신자분들에게 꼭 필요한 자리임을 깨닫게 된다. 신자분들이 주일미사를 마치고 모여 한국음식을 드시는 것은 주린배를 채우기 위한 것을 넘어 한국사람을 만나 한국적인 정서를 나누는 소중한 자리다. 한 주 동안 직장에서 영어로만 살아왔던 입이 드디어 한국말을 하며 숨통이 트이고 한국적인 이야기 한국사람이 사는 이야기를 하며 어르신들이 오란도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이 주일식사가 없으면 우리 어르신들 어쩔뻔했나 가슴을 쓸어내린다.
▲ 주일미사 후 거의 모든 신자들은 친교실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각자 연령과 공동체 별로 테이블에 앉아 식사와 함께 지난 한주간의 삶을 나눈다
하나의 빵을 쪼갠 최후의 만찬 한솥밥
피자든 소고기국이든 같이 둘러앉아 하나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교리와 매우 닮은 부분이 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최후의 만찬에서 하나의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시며 이제 하나의 빵을 나누어 먹었으니 우리 모두가 한 몸이라는 교리를 설명해 주셨다. 우리 신자분들도 영적으로는 미사중에 주님의 식탁에서 거룩한 빵과 포도주를 통해 영혼의 양식을 채우고 미사가 끝난후에는 친교의 식탁에서 고향의 음식을 나누며 오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것을 보면 참 흐뭇하다. 이렇게 미국을 살아가는 한국인, 우리성당 신자분들은 길이길이 한국음식의 힘으로 살아갈 것이고 주일 오후 같이 둘러앉은 소박한 식탁에 힘으로 앞으로의 한주도 힘차게 살아가실 것이다.
필자_김윤욱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사당동, 화곡본동, 미아동 성당에서 사목
현재 워싱턴 대교구 성 김대건 안드레아 한인성당 소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