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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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톨릭] DC의 한국 가톨릭 문화와 관혼상제-일상 (김윤욱)

2021-10-22

가톨릭 혼인미사 + 미국식 축하파티 = 우리 성당의 결혼

서울에 가톨릭 청년 신자들은 결혼을 앞두고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본인들의 혼인성당 선정하는 일이다. 서울에는 성당이 200곳이 넘게 있고 그 성당마다 분위기, 데코, 주차장, 식사, 대관료 등등의 장단점이 있다. 많은 청년들의 혼인미사를 여러곳에서 집전하며 쌓은 노하우로 만든 나만의 “혼인성당 별점 리스트”가 있을 정도인데 이곳은 결혼식장으로 따로 호텔이나 야외시설을 택하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선택은 오직 하나 우리성당 바로 “워싱턴 한인 천주교회” 밖에 없다.

대신 청년들의 혼인미사가 예약되면 예비 신랑신부는 벌써부터 바쁘다. 매번 같은 장소의 같은 혼인예식이라 간단할 것도 같지만 가톨릭의 혼인미사와 미국식 축하연이 합쳐진 새로운 컬라보레이션이 이루어진다. 정해진 장소안에서 일정대로 움직이며 사람만 바뀌는 한국의 결혼식과 다르게 축하식 데코는 어떻게, 음식은 어떻게, 테이블셋팅과 축하식순과 혼인미사에 추가할 부분 모든 것이 신랑신부 정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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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식 데코와 음식, 테이블 셋팅과 축하식순 등 혼인미사에 추가할 부분은 신랑신부가 정하기 나름이다.


 

결혼식에 웬 리허설?

그러니 결혼식 전날 리허설을 통해 행사 기획을 꼼꼼이 확인해야 한다. 마치 한국에 결혼식장 업체와 웨딩플레너가 하는 모든일을 신랑신부가 다 해야 한다고 보는것이 이해가 쉽다. 혼인미사에도 신랑신부의 친구들이 멋지게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들러리를 서주고 이미 청첩장을 드릴 때 부터 하객분들이 앉을 테이블을 정해드려야 하기에 테이블 배치는 아주 신중을 요한다. 만약 청첩장에 테이블 넘버를 드리지 못했다면 개인의 휴대폰 문자로 테이블 번호를 늦게마나 보내드린다. 그러니 아무리 축의금을 내도 초대받지 않으면 파티에 입장 할수 없고 초대를 받았으나 테이블 배정이 없다면 손님에게 매우 큰 결례가 된다. 식권을 받고 자유롭고 신속하게(?) 식사를 마치는 한국을 생각하면 매우 형식적으로 느껴졌지만 막상 여기에 파티문화를 보니 이제는 충분히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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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식은 음악을 준비하는 DJ와 축하식을 진행하는 MC의 리드로 신랑신부가 입장하고 신랑신부가 먼저 하객들 앞에서 춤을추는(First dance)로 파티가 시작된다. 그리고 신랑과 신랑 어머니의 춤이 이어지고 신부가 신부의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춘다. 신랑신부가 부모님과 춤을 춘다는 것이 참 어색했지만 이 댄스는 미국의 대부분의 결혼식에 있는 매우 중요한 형식이라고. 축하연은 성경에 나온 가나안의 혼인잔치처럼 식사를 마치고 밤 늦게까지 신랑신부는 친구들과 음주가무의 흥겨운 파티를 이어간다.

 

시간과 장소의 여유

한국의 결혼식은 주로 “돈내고 인사하고 밥먹고” 이 세 가지 패턴으로 주일 오후가 바쁘게 진행되는 느낌이 있었다. 서울에 성당은 혼인미사 신청자가 많기에 주로 미사 1시간, 식사 1시간으로 타이트하게 짜여있기 때문인데 이것이 속도감이 넘치는 한국식이라면 여기는 성당을 늦은 시간까지 온전히 대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객들도 주일 오후는 그 결혼식을 위해 반나절은 비우고 참석하는 것을 보면 개인의 시간과 공간의 장소에 큰 미국식(?) 여유가 있다는 것이 이곳에 결혼을 이루는 것에서 가장 큰 문화적 차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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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 추석명절

한국은 명절이 연휴로 지정되서 고향에 가든안가든 명절이 너무나 기다려졌지만 막상 미국에 와보니 한국 명절은 빨간날이 아니었다. 미국에 전통명절인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은 당연히 공휴일이고 명절 전후로 나라 전체에 축제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조촐한 면이 없지않아 많이 아쉬웠다. 그러다 보니 신자분들은 보통 명절이 있기 전 주일에 성당에 모여 명절을 보낸다. 먼저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위한 합동 위령미사를 드리고 설에는 신자와 성직자 수도자가 함께 세배도 하고 사물놀이 공연과 제기차기, 윷놀이 같은 행사도 열린다. 그리고 이날 점심은 당연히 떡국이 나온다. 명절이 덤으로 쉬는 공휴일이 아니어서 그 분위기가 한국보다 덜 하지만 아이들과 많은 어른들이 성당에 한복을 입고 오는데 한국 신자들보다 한복을 더 많이 입고 오는 것을 보면 그 마음 만큼은 한국 명절 못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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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함께 지켜드리는 고인의 마지막 길

우리성당의 장례에 참례하는 신자분들의 정성은 매우 감동적인 만큼 지금도 솔직히 적응이 되지 않을 만큼 미국적인 장례문화는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한국에 관혼상제 중에 현대에 와서 가장 독특하게 변화된 문화가 있다면 장례문화 일텐데 이곳 역시 가톨릭적인 장례와 미국적인 문화가 융합된 모습을 많이 엿볼수 있다. 그중에 무엇보다 특이한 것이 뷰잉(Viewing)이다. 뷰잉은 돌아가신 고인의 관을 공개해서 조문객들이 고인의 마지막 얼굴을 보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왜 돌아가신 분의 얼굴을 봐야 하는지 이해가 어려웠지만 한국의 장례는 상주가 주인이고 미국의 장례는 돌아가신 고인이 중심이 되기에 고인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예식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장례가 생기면 한국은 장례식장과 입관예절 장례미사를 공지하지만 여기서는 꼭 뷰잉과 연도(돌아가신 고인을 위한 기도) 그리고 장례미사의 일정을 공지한다. 한국과 같이 상주가 조문객을 맞이하고 밤을 새우고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상주와 유가족들에게 시간적, 체력적으로 부담이 된다면 여기서는 오직 뷰잉에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하고 오직 그 때만 조문객을 맞이하면 된다. 그 뷰잉이 사회적인 장례식이 되는 것이다.

복장으로 드러나는 마음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장례에 함께하는 신자분들의 모습과 마음이다. 먼저 복장부터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신자분들이 검은색 정장을 단정하게 입고 오신다. 이 복장이 왜 놀랍냐면 한국은 평소 성당에서 못뵙던 분들이 돌아가시면 신자분들도 그 고인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보통 평일 미사에 장례미사를 함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어쩌다 평일미사에 왔는데 모르는 분의 장례미사일수 있는 것. 그러니 한국은 평소 케주얼 한 복장으로 장례미사에 참례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거의 모든 신자들이 고인과 장례미사인 것을 잘 알기에 복장부터 예를 갖추고 정말 마을에 어르신 돌아가신 그런 마음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다.

뷰잉에서 장지까지

고인의 마지막 길은 기도와 미사만이 아니라 장지(묘지) 까지 함께한다. 원래 가톨릭의 전통적인 장례문화는 성당 바로 옆에 교회묘지가 있어서 사제가 장례행렬을 앞장서며 신자분들과 마지막 하관예절까지를 함께한다. 하지만 한국은 장지가 주로 서울 외곽의 공원묘지나 고인의 고향인 지방에 있기 때문에 신자들이 함께하기란 매우 어려운 부분이있다. 그러나 여기는 성당 묘지가 차로 10분 거리에 있으니 미사가 끝나면 거의 모든 신자분들이 본인 차량으로 이동하여 장지에서 하관예절까지 함께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다. 개인 차량 앞유리에 장례표식을 달고 수십대의 차량이 운구차를 뒤따르는 행렬하는 것을 보면 정말 장관이고 감동이다.

그래도 한민족 한솥밥

미국식 장례문화에서 한국식에 장례식장처럼 조문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술을 대접하는 것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2편에 음식에 대해 이야기 한것 처럼 우리성당 신자분들은 장례를 마치면 다시 성당에 돌아와 모두가 식사는 같이하는걸 보면 고인의 마지막 길까지 함께해준 신자분들에 대한 유가족분들의 심심한 감사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역시 한국사람은 무슨 일이 끝나면 밥이나 술을 꼭 같이 먹으며 식탁공동체를 이루는 전통적인 문화를 살아가는 것 같아 참 독특하기도 하면서 그 식사자리에서 한번 더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사람과 정이 살아있는 곳임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인식

이곳에 장례를 천주교 사제로 접하면서 이곳에 독특한 문화에 대해 새삼 느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죽음에 대한 한국과는 인식이다. 아마 한국 전통의 장례는 눈물과 무거운 곡소리와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무거움이 느껴지지만 그리스도교 종교관을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답게 그 장례 문화안에 부활신앙이 엿보인다. 고인의 일생에 대한 좋은 기억을 바탕으로 죽음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길, 먼훗날 우리도 그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나기를 약속하는 훈훈한 자리로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그 장례예식 안에 은은히 느껴진다.

일상에 여유 & 삶의 여유

결혼, 명절, 장례에 대한 글을 쓰면서 우리 신자분들의 이러한 삶을 규정짓는 한국과 다른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이곳에 관혼상제와 일상에는 서구적인 여유가 느껴진다. 물론 땅도 넓고 풍족한 곳이니 공간적인 여유가 있지만 그 공간적인 여유 위에 사람 개개인이 살아가는 정서적인 여유로 사람을 대하며 그 시공간의 틈을 최대한 확장하여 일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준비하고 가장 슬픈 시간을 떠나보내는 생활양식은 결혼식과 장례식이라 하면 “돈내고 인사하고 밥먹고” 왔던 필자의 한국에서의 일상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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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김윤욱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사당동, 화곡본동, 미아동 성당에서 사목
현재 워싱턴 대교구 성 김대건 안드레아 한인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