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씩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에 힘겨울 때가 있다.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겁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때, 상사에게 심하게 질책 당하고 한없이 초라해 질 때, 함께 어려움을 나누었던 동료가 나에 대한 뒷담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직장에서 나의 한계를 실감할 때, 나와 다른 조직문화에 섞여 들어가지 못할 때, 혹시 직장생활에 마이너스가 될까 봐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 될 때,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로 괴로울 때,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혼자 감수하며 살아가야 할 때 우리는 정말 한없이 외로워 진다. 이런 힘겨움을 나이 드신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도 없고, 든든한 엄마 또는 아빠이어야 할 내 아이들과 가족에게 꺼낼 수도 없고, 주변 친구들에게조차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초라함과 외로움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행복한 척, 괜찮은 척 하며 살기 일쑤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나의 힘겨움을 외로움 속에 꼭꼭 묻어두어도 되는 걸까?
"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한 마음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
며칠 전, 퇴근길에 예정 없이 지인 몇 명과 시내에 있는 작은 카페에 모여 앉았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 하다가 누군가 최근 행복한 일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지인 A는 요즘 행복하기 보다는 힘들다고 말을 꺼냈다.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가도 이유를 몰라 무척 불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믿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가 그 이야기가 뒤에서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는 점차 자신의 이야기를 안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유 없이 몸이 길게 아팠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가 홀로 자신의 아픔과 두려움을 견뎌내며 느꼈을 외로움이 전해져 와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A의 마음에 공감하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는데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눈물이 고이고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언제나 밝고 행복해 보였던 B도 요즘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 맘인 그녀는 직장에서 일을 끝내면 집으로 다시 출근을 한다고 했다. 늘 긍정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성격의 그녀였지만, 직장의 업무를 끝내면 집에서 다시 아이들을 챙기고, 쌓여있는 집안 일을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자주 찡그리고 짜증난 얼굴을 하게 되었고 남편과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과 가정에서의 역할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그녀 역시 자신만의 외로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행복해 보이기만 했던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늘 누군가의 힘겨운 이야기를 들어주고 씩씩해만 보였던 C는 B의 이야기를 듣다가 지난 밤 자신의 외로움을 직면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마음 속에 꾹 눌러두었던 외로움을 솔직하게 바라보며 느껴지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았다. 평소 어려운 상황을 늘 극복해 내던, 괜찮아 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함께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 내놓은 솔직한 고백에 더 이상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이제야 그 외로움을 진심으로 보듬어 줄 수 있음에 축하를 보냈다. 나 역시 가끔씩 삶이 너무 힘겨울 때, 괜찮은 척 살다가도 아무도 없는 들판에 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울고 있는 외로운 아이가 되곤 했기에, 그녀의 외로운 이야기는 다시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위로했다.
"자칫 외롭고 혼자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득해지는 삶의 순간순간에,
한자리에 둘러앉아 서로의 삶을 경청해주고
거울이 되어 주는 것은 가장 따스한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 사려깊은 수다, 박정은, 232쪽
요즘 행복한 일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경청했다.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고 답을 주려 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심으로 그 감정에 공감해 주었다. (최근 읽은 『사려 깊은 수다』에서는 이런 공감을 세련된 공감이라고 했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작은 카페였지만, 그곳은 어느새 솔직하게 현재 자신의 본 모습을 꺼내 놓을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대화를 하면서 깊은 곳에 있는 진짜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거울 삼아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서로에게 따뜻하고 푹신한 쿠션이 되어 주었기에, 비록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지만, 그 문제로 인해 비롯된 상처와 혼자서 짊어졌던 각자의 두렵고 외로웠던 마음을 솔직히 꺼내 놓고 어루만져 다시 각자의 삶 속으로 돌아갈 힘을 얻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괜찮은 척 하느라 참고 또 참으며 마음 속 외로움을 애써 피하는 사이 더 이상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지도 모른다. 예전에 잠시 '사랑의 전화'에서 전화 상담가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참 외롭구나, 그런데 그걸 털어놓을 곳이 없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위로와 격려가 아닐까 싶다. 한 지인은 절망적인 삶 속에서 자살 하려고 했을 때, 친구의 전화 한 통화에 자살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살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은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매일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을 때 "내가 너 살아온 거 다 지켜봤잖아. 너 정말 잘 살아왔어" 라고 말해 주는 친구 덕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다. 나 역시 혼자 짊어져야 할 삶의 아픔과 외로움 속에 무너졌을 때, 나를 다시 숨쉬게 하고 살게 했던 건 함께 울어주고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내 삶을 함께 하며 지켜봐 주는 존재, 그리고 나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고 어둠 속에서 불빛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내 삶의 지지자들이다.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등불이며 보석이다.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나누어 받은 지혜로 마음을 다잡아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우리 삶의 기반은 훨씬 탄탄해지고 삶의 결도 더욱 아름다워지리라 믿습니다."
- 사려깊은 수다, 박정은, 232쪽 -
오늘도 "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시대의 동지들이여, 지금 이 시간에도 아픔과 힘겨움 속에 혼자 쓸쓸함을 달래고 있을 친구 또는 이웃과 함께 서로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며 '혼자가 아닌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회사 이야기도 아니고, 가족의 이야기도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솔직한 만남 속에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비슷한 아픔을 겪어낸 사람으로부터 위안을 얻는 시간을 말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삶의 지지자'가 되어준다면 힘든 삶, 한번 살아볼 만 할 것 같다. 만약 그런 사람을 지금 당장 찾기가 힘들다면, 일기를 써보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적어내려 가보자. 글로 숨김없이 써내려 가다 보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시원해지고 더 나아가 거리를 두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다면, 마음의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치유센터나 상담센터, 또는 삶/마음을 공부하는 작은 모임에 참여해봐도 좋다. 언젠가 다시 삶의 힘겨움에 갇혀 한없이 외로워질 때, 우리가 서로에게 "널 지켜 봐왔어. 지금까지 참 잘 살아왔어. 힘내" 라고 말해주는 지지자가 되어 준다면 이번 생, 한번 살아볼 만 하지 않겠는가.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자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 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친구와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쳐 주고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며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진 않다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우리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은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창문을 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면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손이 작고 어리어도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이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니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책추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꿈꾸는 서재
사려깊은 수다, 박정은, 옐로브릭
가끔씩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에 힘겨울 때가 있다.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겁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할 때, 상사에게 심하게 질책 당하고 한없이 초라해 질 때, 함께 어려움을 나누었던 동료가 나에 대한 뒷담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직장에서 나의 한계를 실감할 때, 나와 다른 조직문화에 섞여 들어가지 못할 때, 혹시 직장생활에 마이너스가 될까 봐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해야 될 때,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문제로 괴로울 때,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혼자 감수하며 살아가야 할 때 우리는 정말 한없이 외로워 진다. 이런 힘겨움을 나이 드신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도 없고, 든든한 엄마 또는 아빠이어야 할 내 아이들과 가족에게 꺼낼 수도 없고, 주변 친구들에게조차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초라함과 외로움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행복한 척, 괜찮은 척 하며 살기 일쑤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나의 힘겨움을 외로움 속에 꼭꼭 묻어두어도 되는 걸까?
"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한 마음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
며칠 전, 퇴근길에 예정 없이 지인 몇 명과 시내에 있는 작은 카페에 모여 앉았다.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 하다가 누군가 최근 행복한 일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다. 그러자 지인 A는 요즘 행복하기 보다는 힘들다고 말을 꺼냈다. 몸이 아픈데 병원에 가도 이유를 몰라 무척 불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더 힘든 것은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믿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가 그 이야기가 뒤에서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는 점차 자신의 이야기를 안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유 없이 몸이 길게 아팠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녀가 홀로 자신의 아픔과 두려움을 견뎌내며 느꼈을 외로움이 전해져 와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A의 마음에 공감하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는데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눈물이 고이고 위안이 되었다고 했다.
언제나 밝고 행복해 보였던 B도 요즘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 맘인 그녀는 직장에서 일을 끝내면 집으로 다시 출근을 한다고 했다. 늘 긍정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성격의 그녀였지만, 직장의 업무를 끝내면 집에서 다시 아이들을 챙기고, 쌓여있는 집안 일을 처리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자주 찡그리고 짜증난 얼굴을 하게 되었고 남편과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과 가정에서의 역할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그녀 역시 자신만의 외로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행복해 보이기만 했던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늘 누군가의 힘겨운 이야기를 들어주고 씩씩해만 보였던 C는 B의 이야기를 듣다가 지난 밤 자신의 외로움을 직면했노라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마음 속에 꾹 눌러두었던 외로움을 솔직하게 바라보며 느껴지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았다. 평소 어려운 상황을 늘 극복해 내던, 괜찮아 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함께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그녀가 처음 내놓은 솔직한 고백에 더 이상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과 이제야 그 외로움을 진심으로 보듬어 줄 수 있음에 축하를 보냈다. 나 역시 가끔씩 삶이 너무 힘겨울 때, 괜찮은 척 살다가도 아무도 없는 들판에 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울고 있는 외로운 아이가 되곤 했기에, 그녀의 외로운 이야기는 다시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고 위로했다.
"자칫 외롭고 혼자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득해지는 삶의 순간순간에,
한자리에 둘러앉아 서로의 삶을 경청해주고
거울이 되어 주는 것은 가장 따스한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 사려깊은 수다, 박정은, 232쪽
요즘 행복한 일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경청했다.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고 답을 주려 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심으로 그 감정에 공감해 주었다. (최근 읽은 『사려 깊은 수다』에서는 이런 공감을 세련된 공감이라고 했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작은 카페였지만, 그곳은 어느새 솔직하게 현재 자신의 본 모습을 꺼내 놓을 수 있는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대화를 하면서 깊은 곳에 있는 진짜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서로의 이야기를 거울 삼아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서로에게 따뜻하고 푹신한 쿠션이 되어 주었기에, 비록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지만, 그 문제로 인해 비롯된 상처와 혼자서 짊어졌던 각자의 두렵고 외로웠던 마음을 솔직히 꺼내 놓고 어루만져 다시 각자의 삶 속으로 돌아갈 힘을 얻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괜찮은 척 하느라 참고 또 참으며 마음 속 외로움을 애써 피하는 사이 더 이상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지도 모른다. 예전에 잠시 '사랑의 전화'에서 전화 상담가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참 외롭구나, 그런데 그걸 털어놓을 곳이 없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혼자가 아니라는 작은 위로와 격려가 아닐까 싶다. 한 지인은 절망적인 삶 속에서 자살 하려고 했을 때, 친구의 전화 한 통화에 자살을 포기하고 지금까지 살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은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매일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을 때 "내가 너 살아온 거 다 지켜봤잖아. 너 정말 잘 살아왔어" 라고 말해 주는 친구 덕에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다. 나 역시 혼자 짊어져야 할 삶의 아픔과 외로움 속에 무너졌을 때, 나를 다시 숨쉬게 하고 살게 했던 건 함께 울어주고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내 삶을 함께 하며 지켜봐 주는 존재, 그리고 나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고 어둠 속에서 불빛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내 삶의 지지자들이다.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등불이며 보석이다.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나누어 받은 지혜로 마음을 다잡아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때
우리 삶의 기반은 훨씬 탄탄해지고 삶의 결도 더욱 아름다워지리라 믿습니다."
- 사려깊은 수다, 박정은, 232쪽 -
오늘도 "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시대의 동지들이여, 지금 이 시간에도 아픔과 힘겨움 속에 혼자 쓸쓸함을 달래고 있을 친구 또는 이웃과 함께 서로의 외로움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며 '혼자가 아닌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회사 이야기도 아니고, 가족의 이야기도 아닌 나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되는 솔직한 만남 속에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비슷한 아픔을 겪어낸 사람으로부터 위안을 얻는 시간을 말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삶의 지지자'가 되어준다면 힘든 삶, 한번 살아볼 만 할 것 같다. 만약 그런 사람을 지금 당장 찾기가 힘들다면, 일기를 써보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적어내려 가보자. 글로 숨김없이 써내려 가다 보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시원해지고 더 나아가 거리를 두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다면, 마음의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치유센터나 상담센터, 또는 삶/마음을 공부하는 작은 모임에 참여해봐도 좋다. 언젠가 다시 삶의 힘겨움에 갇혀 한없이 외로워질 때, 우리가 서로에게 "널 지켜 봐왔어. 지금까지 참 잘 살아왔어. 힘내" 라고 말해주는 지지자가 되어 준다면 이번 생, 한번 살아볼 만 하지 않겠는가.
<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저녁을 먹고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자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 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친구와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쳐 주고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흰눈 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며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진 않다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우리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은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창문을 열다가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면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손이 작고 어리어도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이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니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책추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꿈꾸는 서재
사려깊은 수다, 박정은, 옐로브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