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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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클래식] 2018 아트센터 인천 개관기념 음악회 (오지희)

2021-10-22

2018 아트센터 인천 개관기념 음악회 & 조성진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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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교향악단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인천시민의 오랜 숙원이자 공연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이 11월 16일, 마침내 문을 활짝 열고 관객을 맞이했다. 16일 인천시립교향악단의 개관기념 음악회, 17일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자가 이끄는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협연으로 음악가들은 새로운 공연장을 맞이한 관객과 함께 축배를 높이 들어올렸다. 오페라 하우스와 뮤지엄이 완성되야 온전한 아트센터로서의 위용을 드러낼 수 있지만, 일단 핵심 축인 콘서트홀이 개관했다는 것은 인천 예술문화가 몇 단계 뛰어오를 토대를 구축한 엄청난 사건이다. 인천시민과 가까운 송도 지역주민에게 수준 높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거점이 생겼다는 사실을 넘어 우리나라 클래식 공연생태계 외연 확대에 중추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공연장이 건립됐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서해 바다를 고즈넉이 바라보고 서있는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외관은 얼핏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내부는 희고 거대한 달 항아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자못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다. 객석과 무대 거리감을 줄여 소리 편차를 최소화 한 포도모양의 빈야드 스타일이 부드럽게 객석 양옆과 뒤를 감싸고 있고, 동시에 무대와 중앙 객석이 직사각형 형태로 반사음을 풍부하게 구현하도록 슈박스 형태로 결합됐다. 즉 인천아트센터 콘서트홀은 양쪽의 장점을 합쳐 음향과 소리질이 최적화된 공간을 지향한 클래식 전문공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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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텔 리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16일, 인천시립교향악단이 지휘자 이병욱의 힘찬 동작과 함께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 1번을 연주하며 축가는 시작됐다. 개관공연 첫 곡이라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 긴장한 듯 한껏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이내 관객을 축제 분위기로 끌고 가며 밝고 경쾌한 행진곡이 내뿜는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텔 리는 스페인 작곡가 사라사테의 서주와 타란텔라, 지고이네르바이젠을 통해 사라사테 작품이 지닌 기교와 이국적인 선율의 느낌을 섬세하게 전달했다. 소프라노 이명주가 선택한 노래는 오페라 아리아 중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사랑받는 곡이다.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중 ‘꿈 속에 살고 싶어라’로 관객의 열광적인 박수를 받은 이명주는 풍부한 음색과 뛰어난 표현력으로 푸치니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멋지게 해냈다. 프리마 돈나로 빛났다. 테너 김동원 역시 베르디 아리아 ‘여자의 마음’과 레하르 오페레타 중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불러 개관기념 음악회를 흥이 가득 찬 축제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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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이명주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이 모든 이벤트의 마지막 바통을 이어받은 인천시립교향악단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을 호기롭게 연주함으로써 마침내 2018년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시대가 새롭게 열렸음을 천명했다. 나아가 콘서트홀 무대에 익숙치 않은 인천시립교향악단 입장에서 이번 무대가 각 악기간의 음악적 균형감이나 소리에 대한 민감한 반응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기회와 도전의 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서서히 음악적 경험이 쌓이면서 입체적으로 변화된 음색이 공연장과 예술단체간 시너지효과를 통해 단체의 색깔을 명료하게 비출 때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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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김동원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개관 둘째 날인 17일,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기다리던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협연이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을 뜨겁게 달궜다. 조성진이란 이름 석 자는 여기 인천에서도 영락없이 클래식음악 최고의 브랜드임을 입증한다. 베토벤 교향곡 2번을 필두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 베토벤 교향곡 5번으로 구성된 이 특별한 베토벤 음악회는 조성진에 대한 기대감 못지않게 이탈리아 최초의 관현악연주 전문악단인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연주력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과연 베토벤 음악해석에 있어 차별화된 그들만의 독창적인 울림을 들을 수 있는지 말이다.

우선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베토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분하고 진지했다. 피아노 소리가 연주자와 완전한 혼연일체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특유의 유려함은 교향악적인 피아노협주곡 3번에서도 어김없이 부각된다. 베토벤 c단조 음악이 지닌 비극적인 정서는 특히 2악장에서 피아노가 매우 긴 호흡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압도적인 깊이를 드러냈다. 피아노협주곡 3번에 내재된 서정적 아름다움과 폭풍처럼 몰아치는 열정은 조성진의 섬세한 타건으로 자연스럽게 조율됐고 음색과 강도는 한순간도 과하지 않았다. 때로 오케스트라가 피아노 울림을 덮음으로써 음악적 균형감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연주자가 반주에 정교하게 맞춰가며 움직이니 피아니스트가 지닌 예리하고 단단한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사색적이면서도 과시하는 소리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진실과 대면한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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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한편 교향곡 두곡과 협주곡 레퍼토리는 실제 2시간이 훌쩍 넘는 연주시간으로 통상적인 연주회보다 길었지만 오히려 베토벤 초기 교향곡과 전성기 걸작 교향곡을 비교해서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교향곡 2번은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썼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베토벤이 다시 희망을 갖고 일어선 시기에 작곡됐다. 그렇기 때문일까? 소리에 삶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느껴진다.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2번은 웅장하고 역동적이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게 움직임으로써 선율의 흐름에 역점을 둔 노래하는 교향곡이었다. 반면 교향곡 5번에서는 디테일이 살아있으면서도 다채로운 음색으로 베토벤 교향곡 5번이 지닌 풍부한 아이디어와 빛나는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운명 교향곡을 통해서 비로소 오랜 전통을 지닌 이탈리아 관현악 연주단체의 진가가 관객에게도 전달됐다. 소위 독일의 정통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정밀하고 엄숙한 운명이 아닌 색채감이 살아있는 화사한 운명을!

이렇듯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은 개관기념 음악회를 시작으로 클래식음악가들에게 본격적으로 속살을 드러냈다. 아직은 울림에 대해 축적된 경험이 부족하기에 연주자들이 최적화된 음향을 구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인천시립교향악단 뿐 아니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무대에서도 매우 조화로웠던 울림이 한순간 음색과 음량이 미세하게 불일치하면 산만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음향이 예리한 콘서트홀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 노력하는 불쏘시개로 작용해 부지불식간 인천음악지형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제 클래식음악계의 활기찬 미래를 이곳 인천에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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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_오지희
서울대학교에서 음악이론과 음악사를 전공한 후 백석문화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음악평론가와 클래식음악 전문해설가로 활동중이다. 클래식음악을 넘어 다양한 공연예술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2018년 출판한 평론집 <음악에 글을 새기다> 는 이러한 필자의 활동을 담은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