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169] 12월의 전시 소식

허혜선
2024-12-10
조회수 328


겨울이 되면 네덜란드에서는 산타 할아버지를 꼭 닮은 신터클라스(Sinterklaas)가 배를 타고 등장합니다. 그는 4세기 무렵, 현재의 튀르키에에 있던 동로마 제국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스인데,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신발에 동전을 넣어 다니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것이 훗날 양말과 신발에 선물을 넣어두는 유래가 되었습니다.

성 니콜라스를 기리는 축일은 유럽으로 전해져 네덜란드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축제 문화로 변모합니다. 그곳에서 경건하고 엄숙한 흰 수염을 가진 계르만계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바뀐 신터클라스는 매년 12월 6일 축일 전날까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줍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신발을 굴뚝 앞에 두면, 다음 날 아침 과자와 장난감이 신발 안에 들어 있습니다. 착한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주지만, 나쁜 아이들은 망태 할아버지처럼 데리고 간다고 합니다. 

흰 수염이 수북한 그가 직접 굴뚝을 타기는 어려웠기에, 그를 보좌하는 '검은 피에트(Zwarte Piet)'가 대신 선물을 배달하곤 했습니다. 현재 이 캐릭터는 식민지 역사와 인종차별 논란으로 굴뚝을 오르내리느라 얼굴에 굴뚝 재가 묻어 검게 된 것이라는 서사로 바뀌고 있습니다. 

초기 식민화를 주도했던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된 이 축제는, 곧 그리스도의 탄생일과 결합됐습니다. 1923년, 클레멘트 클라크 무어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라는 시에서 북유럽의 신 오딘의 이동을 도왔다고 알려진 순록에 영감을 받아 산타클로스가 여덟 마리의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이후에 피에트는 산타의 마을에 살고 있는 엘프의 이미지에 흔적을 남기고 은퇴하기에,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이 되죠. 1929년 한 백화점의 광고 캠페인을 통해 루돌프 캐릭터가 등장했고, 1931년 코카콜라 광고에서 주교의 붉은 로브는 지금의 산타복으로 바뀌게 됩니다. 하얀색 털 장식이 돋보이는 그 의상은 지금 산타클로스의 시그니처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노예들과 평등하게 앉아 연회를 즐기는 로마의 사투르날리아 축제, 한 겨울 사철나무의 가지를 잘라 생명을 상징하는 의미로 문에 걸거나 집안을 장식하고, 곧 빛의 계절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집 안에 초를 밝히는 로마의 태양신 축제와 북유럽의 동지 축제 등,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어 현재의 크리스마스 전통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고, 신 앞에서 모두 평등한 인간으로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희망의 가치를 되새기는 12월의 의미일 것입니다. 이달의 전시소식이 길을 잃은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침묵, 그 고요한 외침-폴란드 포스터 ㅣ 경기 이함미술관
Jan Lenica, Wozzeck, 1964
ㅣ철의 장막에서 창조한 혁신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혹독한 시련에서 살아남은 폴란드는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전에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당시 포스터는 상업적인 목적 이외에도 정부의 선전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50년대 당시 폴란드의 포스터 업계는 혁신에 가까운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냅니다

예술가들은 메시지를 압축적이면서도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실험적 디자인을 시도했습니다폴란드 포스터는 회화적 요소와 단순하고 강렬한 메타포를 결합하여단순한 광고물 이상의 예술적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Tadeusz trepkowski, Nie!, 1952
폴란드 포스터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강렬한 색상, 민속적 요소, 유머와 환상적 이미지를 활용하여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점입니다. 이는 억압적인 정치 체제 속에서도 예술적 표현의 한계를 확장하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그래픽 디자인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폴란드 포스터는 그림, 타이포그래피, 콜라주, 상징, 은유를 조합해 감각적이고 시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는데, 이들의 예술적 실험과  표현 방식은  ‘폴란드 포스터 학파’라는 새로운 예술운동으로 불리게 됩니다. 당시의 작품들은 현재까지 전 세계 그래픽과 시각 예술 분야에 영감을 주게 됩니다. 
ㅣ포스터, 예술이 되다!
Waldemar Swierzy, Midnight Cowboy, 1973
이번 전시는 헨리크 토마세프스키, 얀 레니차 등 당시를 대표하는 10인의 디자이너 작품들이 선보입니다. 특히 영화 포스터를 통해 어떻게 영화의 내용과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전달하는지, 그리고 최종 포스터가 완성되기까지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를 단계별로 구체화하고 시각적으로 구현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포스터가 단순한 홍보 도구를 넘어 정체성과 서사를 함축하는 예술적 작업으로 발전하는지 보여줍니다.
Henryk Tomaszewski, Poster advertising an exhibition of Polish poster art, 1956


공교롭게도 포스터라는 제한된 형식은 당시 스탈린의 지배와 통제에 놓인 국가에서 당시 폴란드 예술인들이 처한 현실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취는, 엄혹한 시대에도 빛을 발하는 예술적 저항과 창조적 표현의 힘을 우리에게 환기시킵니다

■ 기간: 2024.11.22(금)-2025.6.22(일)
■ 시간: 화-일 오전 10시-오후 6시(하절기엔 7시)
■ 장소: 경기ㅣ이함미술관
■ 안내: 031-773-7888

<행복한 기억의 순간> 미셸 들라크루아ㅣ 서울 롯데갤러리 잠실점
Michel Delacroix, Noël est de retou, 2005, 출처 : 롯데갤러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하느냐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ㅣ불안과 고난의 시간을 지운 행복한 추억
이번엔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전시를 소개합니다. 1933년생인 작가 미셸 들라크루아는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 발발과 나치 점령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았던 따뜻한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그 기억 속 풍경을 그려냅니다. 그 속의 파리는 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예술과 낭만이 넘치는 벨에포크 시대의 어느 순간에 영원히 멈춰 있는 듯 우리를 부릅니다. 
 Michel Delacroix, Pétrouchka, 2013, 출처 : 롯데갤러리
ㅣ꿈과 낭만적인 과거를 그리는 화가
작가는 스스로를 '꿈과 시적 과거를 그리는 화가'라고 표현하는데, 옛 골목, 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 한가로운 오후의 시장 풍경, 골목길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까지, 그의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추억 속 아늑한 순간과 풍경을 포착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은 흔히 나이브 아트(naïve art)로 분류되는데, 이는 앙리 루소와 같이 아마추어 미술가들의 소박하고 평면적인,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화풍을 일컫는 말입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작가임에도 직관적이고 소박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은 그의 예술적 영감이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온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작품이 전 세계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기간: 2024.11.22(금)-2025.2.16(일) 
■ 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7시
■ 장소: 서울ㅣ롯데갤러리 잠실점 에비뉴엘 6F 아트홀 
■ 안내: 02-3213-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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