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184] 기억이 쓰는 봄 시

관리자
2025-04-01
조회수 100


무탈하시지요? 열흘간 괴물처럼 다녀간 화마에 피해지역은 앞길이 속수무책인데, 야속하게도 봄의 꽃나무들은 흐드러지게 꽃잎을 피워 올립니다. 그러고 보니 언제는 안 그랬을까요. 삶의 풍경은 늘 고통과 기쁨이, 불행과 행운이 얼기설기 뒤섞여 흘러갑니다. 시린 겨울바람 가운데도 따뜻한 햇살이, 컴컴한 밤 가운데도 반짝이는 별들이 함께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인생의 여정에 함께하는 우리 모두가 늘 안전하고 무탈하기를 이 기회 빌려 빌어봅니다. 사월도 안녕(安寧)하시기를요.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상처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상처는 아프고, 치유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일어나는 상처가 있듯,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도 있습니다. 바로 ‘마음의 상처’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기억’에 저장되고, 이는 쉽게 아물지 않으며, 아문 듯해도 어느 때에 또다시 새살 돋듯 생생한 아픔으로 돋아나곤 합니다. ‘기억’은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과거를 순식간에 현재의 풍경으로 소환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삶 모든 장면이 낱낱이 저장되는 ‘기억’에 대해 흥미로운 시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기억은 인간에게

축복일까, 저주일까?

기억은 우리가 살면서 경험한 기쁨과 고통의 저장소입니다. 기억은 우리가 힘들 때 위안과 희망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를 ‘지금 여기’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주범으로, 고통의 진원지라고도 합니다. 기억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없는 유년 시절의 일, 심지어 엄마의 뱃속에서 겪었던 경험까지 저장되어 있어, ‘과거의 상처’는 언제든 ‘현재의 상처’로 되살아날 태세로 우리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통의 진원지인 기억을 ‘지금 여기’로 소환하는 주체는 ‘생각’입니다. 흔히 ‘상처받았다’고 할 때, 우리는 그 공을 쉬이 어떤 상황이나 가해자에게로 넘기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상처는 누가 준 것이라기보다 내 안의 기억이 현재로 소환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가해자가 ‘상처받음’에 있어 일종의 ‘조연’의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주연은 결국 과거의 기억을 소환한 나 자신입니다.


그렇게 현재로 소환된 과거의 기억은, 그 자체로도 ‘상처’이면서 또 다른 새로운 고통의 기억(상처)을 형성합니다. 손 닿지 않는 기억 속 과거의 고통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현재에 새로운 고통을 추가하는 일은 우리 손으로 멈춰야 하지 않을까요?


환호환탄환사

幻虎還呑幻師

‘환호환탄환사 幻虎還呑幻師’라는 고전의 옛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술사가 환술을 부려 ‘가짜 호랑이’를 만들어냈는데 그 호랑이가 너무도 사실 같아서, 결국 마술사 자신도 그 호랑이에 잡아먹히고 마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괴담이 아닙니다.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입니다. ‘생각’이 실화가 되어 나를 사로잡아, 나의 삶을 지배하게 되는 흔한 일상의 풍경입니다.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은 호랑이만이 아니지요. 생각은 호랑이와 함께 ‘겁먹은 나’도 만들어 냅니다. 서로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호랑이 없이는 ‘겁먹은 나’도 없고, ‘겁먹은 나’가 없이는 호랑이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습니다. 생각은 과거, 현재, 미래를 종횡무진하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펼쳐 보입니다. 생각은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 재잘거리는데, 우리는 그 재잘거림을 내면의 목소리로 여기고 자신을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라 믿습니다. 그러다 어떤 상황이 과거의 부정적 기억과 결합이 되어버리면,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생각이라는 가상현실의 재료가 되는 것은 과거의 상처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욕망’ 또한 가상현실의 중요한 재료가 됩니다. 인도철학 전통에서 자주 등장하는 ‘은화 銀貨’에 관한 예화가 있습니다. 길을 가던 중 저기 모래 더미에서 반짝이는 은화를 발견합니다. 기쁜 마음에 달려가 보니 은화가 아니라 조개껍데기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개껍데기를 은화로 만들어낸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의 '욕망'입니다.


알아차림


꿈속의 현실은 꿈을 깨버리면 사라집니다. 생각이 만들어낸 가상현실 또한 마찬가지이겠지요. ‘가상’이 ‘가상’인 줄 알면, 환상은 사라집니다. 그것을 ‘알아차림’ 또는 ‘자각 自覺’이라고 합니다. 알아차린다는 것 혹은 자각한다는 것은 생각에 사로잡힌 나를 바라보고, 생각과 나 자신을 구별하는 일입니다. 메타인지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욕망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욕망과 내가 구별이 안 되는 상태입니다. 욕망이 좌절되는 것이 꼭 ‘나’가 좌절되고 부정되는 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흔히 분노조절 장애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의 레벨을 조정하는 어떤 정신적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분노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분노하는 나’를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가 곧 분노조절 장애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도 없고 기억 자체를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린다면,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상처를 마주하고 고통을 직면하는 일입니다. ‘상처받은 나’를 바라보고, ‘고통’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여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일’을 ‘과거의 것’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내면의 풍경을 바라보는(알아차리는) 수단으로 마음 챙김과 명상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마음의 풍경을 바라보는 또 다른 대표적 활동으로 ‘예술’이 있습니다. 특히 시 詩를 쓰고 감상하는 것이 그러한데요, 시는 우리에게 ‘관조 觀照의 미학’이라 할 아름다움을 선물합니다.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을 빌려와, 자기 내면을 풍경처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함께 음미해 보겠습니다. 흔히 이 시를 두고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쓸쓸하고 고독한 시인의 내면을 형상화한 시”라고 많이들 평가하지만, 「가는 길」의 시적 성취는 ‘바라보는’ 거리감에 있다고 봅니다. 애이불비 哀而不悲, ‘슬프지만 슬픔에 빠지지 않는’ 그 거리감 말입니다. 내면의 쓸쓸함을 하나의 ‘풍경’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이 글의 주제인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치유가 되어줍니다.

김소월 「가는 길」


첫 연은 ‘생각’의 마법과도 같은 능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흔히 우리는 그리움이라는 감정 상태가 ‘그립다’는 생각을 일으킨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립다’는 생각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런 심리 과정에 대한 소월의 통찰은 매우 놀랍습니다. 길을 가던 시인은 예기치 않은 계기로 기억 속의 옛 연인을 떠올리게 되고 그리움이라는 감정 상태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둘째 연은 ‘그립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길을 잃어버린 시인의 모습입니다. 이제 옛 연인과의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되었고, 옛일에 사로잡힌 시인은 ‘가던 길을 잃고’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머뭇거립니다. 그러다 느닷없이 까마귀가 등장하는 세 번째 연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진다고 지저귑니다.

 

‘까마귀’는 시인의 귀환을 알리는 시적 장치입니다. 까마귀 소리는 기억의 저편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닙니다. ‘저 산’과 ‘들’에서 들리는 바로 ‘지금·여기’의 소리입니다. ‘옛일’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인은 까마귀의 지저귐을 통해 깨어나 지금 여기로 돌아왔습니다. 트라우마 치유에 명상이 사용될 때 가장 많이 강조하는 것이 청각에 대한 마음 챙김과 방향감각입니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피해자를 현재로 돌아오게 하고, 자신이 현재에 있음을 가장 분명하게 자각하게 하는 수단이 바로 청각과 방향감각이기 때문입니다. ‘까마귀 소리’와 함께 ‘저 산’, ‘들’ 그리고 ‘서산’이라는 방향감각은 시인이 기억의 저편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려주는 시적 장치입니다. 지금·여기로 복귀한 시인은 이제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을 풍경처럼 바라봅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시인은 이제 ‘기억’이라는 강물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습니다. 그 기억의 강물을 다만 바라볼 뿐입니다.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부정하지 않으나, 과거는 과거일 뿐, 시인은 담담히 옛일로 돌려놓습니다.


옛일을 과거의 일로 남겨두는 시인의 담담한 시선처럼, 상처를 그저 하나의 풍경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과거가 현재의 아픔으로 되살아나는 일은 멈출 것입니다.

위 글은 2025년 3월 25일 발행된 재단법인 플라톤 아카데미 칼럼, 조성택 교수의 "환호환탄환사 幻虎還呑幻師: 호랑이에 잡아먹힌 마법사"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www.platonacademy.org/29/?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59415341&t=board

지금, 이 봄날에,
여러분의 기억은
어떤 시를 쓰고 있나요?

김소월의 시가 제 기억 속에서 불러일으킨 음악이 하나 있습니다. 시인의 대표작  「못 잊어」 를 기억하시나요? 역시나 가슴 절절한 그리움과 이별의 아픔을 절제된 언어로 아름답게 표현한 그 시에, 작곡가 조혜영 씨가 음을 붙여 새로운 창작 가곡으로 탄생한 곡이 있습니다.
[조혜영 - 못 잊어 (김소월 시)]

작곡가 조혜영 씨는 한양대학교 작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 2009년 대한민국 창작합창제에서 작품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합창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국립합창단, 대전, 안산, 울산, 원주, 인천 등 여러 시립합창단의 위촉을 받아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특히나 한국의 서정시를 바탕으로 한 합창곡을 다수 작곡하였으며, 전통적인 민요와 가곡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합창 래퍼토리를 확장하는 데에 기여하였습니다.


조혜영 작곡의 「못 잊어」는 많은 성악가와 합창단을 통해 재연됐는데요, 그중 국립합창단의 소리와 표현이 시인의 담담한 관조적 시선과 참 많이 닮아있는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어 추천드립니다. 노래로 듣는 「못 잊어」를 통해, '그리움의 풍경'을 관조하시며 색다른 감상을 경험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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