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58 #존엄] 존엄과 존엄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에 관하여



당신은 사람의 존엄이 어디서 어떻게 온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번 호 주제는 '존엄'입니다. 두 권의 인문학 도서와 영상들을 통해 '존엄을 가능하게 하는 형식'을 살펴보겠습니다🚸


 📚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문학과지성사, 2015)
환대는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장소를 열어준다

먼저 환대가 재분배를 포함한다는 점을 확인하기로 하자.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 또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 그가 편안하게 '사람'을 연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하여 그를 다시 한 번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사회 안에 자리를 갖는다는 것 외에 다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을 연기하려면 최소한의 무대 장치와 소품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공간, 갈아 입을 옷, 찻주전자와 차를 살 돈 같은 것 말이다. 그러므로 환대는 자원의 재분배를 포함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시작할 때 먼저 장난감을 나누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아무리 욕심 많은 아이라도 상대방이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 서로 초대할 수도, 선물을 주고받을 수도 없다는 걸 알기에, 기꺼이 살림을 나누어준다. (194쪽)

김현경 저자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장소를 갖는 것, 인정투쟁을 통한 사회적 성원권(成員權: 구성원으로서의 인정과 권리)을 갖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때 '환대'란 이러한 자리를 다른 사람의 '자리'를 인정하거나 내어주는 상호작용 행위를 뜻하죠.

학교에서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치죠. 지배 문화의 요구공부 못 하는, 가난한, 힘없는, 국적이 다른, 성 정체성이 다른, 장애가 있는, 어울리지 못하는 등 따라 등수를 나누고 낙인을 찍습니다. 학교가 사회의 단순한 축소판이 아니라 집약체라는 것을 상기할 때, 이런 체제는 개인들의 사람됨과 관계 맺음에 긴장을 조성합니다. 일상이라는 상호작용 질서 안에서 우리는 형식적인 평등을 이루고 있지만, 구조 안에서 실질적 불평등의 관계는 여전하고 심지어 강화되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사람 대 사람의 '평등한 계약'을 통해 '정당화된 불평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체제나 규범을 거부해야 할까요?

저자는 모든 인습을 거부한 개인의 자아는 결국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벌레가 된 주인공이 머무는 좌표 잃은 장소, 타자의 무분별한 난입에 노출된 감옥에 기거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이중적이며 모순된 개인의 지위에는 총체적 의미에서의 이원론이 있는데 "결국 세계와 자아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이 맥락에 따라 2, 3, 4장에서는 '주인과 노예, 외국인과 내국인, 더러움과 신성함, 가면과 얼굴, 명예와 존엄, 가면과 얼굴, 정상인과 낙인자' 등을 다루며 이러한 이원적 대립과 혼동을 논의합니다. 

그중 '명예와 존엄'의 논의에 집중해보죠. '명예'는 도덕적인 공공 자격으로서 사회가 개인에게 부여하는 것, 그리고 '존엄'은 인간으로서의 절대 평등으로 개인이 타고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는 공사(私)의 분리, 개인의 분열이 특징적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둘을 '과거와 현재', '인습과 자유'라는 대립 항으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환대란 타자를 도덕적 공동체로 초대하는 행위"인데, 이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환대"이기 때문이죠. 그 핵심에는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의례가 있습니다. 이런 의례는 비가시적이고 역동적이지만, 여기서 오는 모욕과 소외를 단순히 사적 감정이나 당연한 차별으로 치부되는 사회는 위험합니다. 

이는 모욕에 의한 '명예 훼손'처럼 '존엄 훼손'을 객관화시켜 표현할 때 분명해집니다. 민권 운동, 성소수자 운동, 장애인 운동 등... 사회운동의 역사는 모욕에 대한 저항의 역사이며 사람으로서의 성원권을 주장하는 환대받지 못한 개인들의 현실이기 때문이죠.


모욕은 존엄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무너뜨린다. 배타적 민족주의운동이나 파시즘은 먼저 배제하고자 하는 집단을 공공연히 모욕하는 데서 출발한다. 모욕당하는 집단이 여기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면, 그리하여 다른 사회 구성원들의 침묵과 방관 속에서 이러한 모욕이 일상화되면, 그때부터는 법적으로 이 집단의 권리를 축소시키는 일이 가능해진다. (103쪽) 


저자는 조건부 환대 너머, 절대적 환대의 양태인 '사회운동'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도덕의 원론적 주장이나 초월 혹은 특정 체제를 뜻하지 않습니다. 객관적 언어 표현,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의 의례, 그것들의 수행성과 영향력을 기반으로 목소리를 내며 당당하게 움직이죠. '여기 사람 있어요!'가 아닌 '우리가 여기다!'라며 약동하는 장소, 이미 도래한 미래로요.


신원을 묻지 않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복수하지 않는 환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절대적 환대이다. 누군가는 우리가 한번도 그런 사회에서 살아본 적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현재 속에 그런 사회는 언제나 이미 도래해 있다. (242쪽)


*이 책은 11월 22일 (화) 저녁 7시 30분에 줌(Zoom)에서 열리는 독서모임 도서입니다. 모임장 전병근 지식큐레이터와 함께 "책 읽는 저녁"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제 환대의 손을 클릭해주세요🙌


 📚 『리추얼의 종말』 한병철 (김영사, 2021)

리추얼을 통해 시적 세계관으로


신자유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도덕을 착취한다. 도덕적 가치들이 특색으로 소비된다. 그것들은 자아 계좌Ego-Konto에 기입되고, 그러면 자기가치가 높아진다. 그것들은 나르시시즘적 자존감을 높인다. 사람들은 가치들을 통하여 공동체와 관련 맺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와 관련 맺는다. (14쪽)

지배가 자유로 자처하는 순간, 지배는 완성된다. 진정성은 신자유주의적 생산형식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실현한다고 믿으면서 자유의지로 자기를 착취한다. 진정성 숭배를 수단으로 삼아 신자유주의 체제는 인간 자체를 체제의 소유물로 만들고 그를 효율성이 더 높은 생산소生産所로 변신하게 만든다. (29쪽)

존엄에 대한 책은 많습니다. '나'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전략이 담긴 책들 말입니다. 하지만 '존엄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그에 대한 탐구와 대안을 담으려 노력한 책은 드물죠. 그런 의미에서 『리추얼의 종말』은 앞의 책 『사람, 장소, 환대』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삶에 대한 대안적 모색을 '공동체, 장소, 형식'을 통해 찾으며 키워드로 논의한다는 점이죠. 다른 점은 앞의 책이 사회학적 논의로 존엄을 논의하며 사회운동에서 가능성을 찾았고, 이 책은 철학을 근간으로 개인의 소외 원인을 형식의 소멸로 진단하며 그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입니다.
'리추얼(ritual)'은 사전적 의미로는 '규칙적인 의례'입니다. 한병철 철학자는 리추얼이 "루틴(routine)과 달리 집약성을 산출할 능력"이 있고 공동체의 "느낌을 동반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말 큰 문제는 광범위하게 문화를 침식한 신자유주의의 구호들이라고 지적합니다. 
기존 것을 자극적으로 변형한 새로움, 그리고 새로움의 지루한 생산자와 소비자로서의 개인, 개인의 진정성을 볼모로 잡아 자기도취적 절대 노예로 만들기. 완전 개방과 상시적 접속 가능성으로 인한 탈경계화, 과잉 긍정과 세속적인 투명성으로 이질성과 저항 없애기. 기계적 지식과 더 강한 자극 생산으로 자아의 꾸준함과 흥분을 퍼뜨리기. 더 나은 도덕으로 더 야만적으로 굴기. 이는 개인의 경험을 원자화시키며 관계의 매듭들을 '나'와 '너'의 글자 획 차이보다도 더 잘게 끊어내죠. 
저자는 "형식의 우위를 복원하는 리추얼적 전환"으로서 내면과 외면의 관계, 정신과 몸의 관계를 뒤집기를 주창합니다. 마치 "미디어가 메시지를 산출"하는 것처럼요. 이는 관조와 침묵을 통한 소통 없는 공동체, 시의 향유를 통한 언어의 기계적 의미 도출에의 저항, 법과 도덕이 아닌 합의를 통한 규칙에의 열정과 아름다운 형식에의 윤리 추구, 삶과 죽음의 교류 장으로서 놀이라는 대안 모색으로 이어집니다. 
'무슨 예술이 삶의 대안일 수 있어? 당장 사느라 바빠 죽겠는데!'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예술이 당신을 독촉하는 삶이 아니라, 당신이 마음 깊이 바라는 삶에 이롭다는 사실입니다. "예술의 본질은 삶에 지속성(멈춤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언어가 놀이하지 않으면, 오직 정보만 운반하면, 언어는 포르노적으로 된다. 몸이 연출적 성격을 완전히 잃고 오로지 기능만 해야 하면, 몸은 포르노적으로 된다. 프로노적인 몸은 어떤 상징성도 없다. (115쪽)
아름다움 앞에서 인식능력들, 곧 상상력과 지성은 놀이 모드로 작동한다. 아름다움은 주체에게 만족스러우며 쾌감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인식능력들의 조화로운 합동 놀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비록 그 자체로 인식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인식 장치들을 즐겁게 해줌으로써 지원한다unterhalten. 이를 통해 놀이는 인식의 생산을 촉진한다. (105쪽)

💽 All Human Beings (Official Music Video by Yulia Mahr)- Max Richter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인간은 천부적으로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과 같은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선언에 규정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과 세계 각국의 분쟁으로 세계가 뒤집어진 것처럼 느껴질 무렵,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특별한 낭독이 담긴 음악 앨범을 발표합니다. 낭독 텍스트는 1948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쓰인 '세계인권선언문'이었으며 이를 세계 각국 70인이 각자의 언어로 낭독합니다. 선언문의 내용은 현대 사회상에 맞게끔 수정했죠. '형제애(Brotherhood)'를 '공동체(Community)'로, '모든 남성과 여성은'을 '누구나'로요. 현악 구성도 높은 음이 아닌 낮은 음을 중심으로 사용하여 어두운 시대에 우리가 예술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녹여냈다고 합니다.

*세계인권선언문 전문을 읽고 싶다면 비둘기를 클릭하세요🕊️


📺 ‘조력 존엄사’ 법안 발의…허용돼야 하나? - KBS NEWS (54분)

한국에서 조력 존엄사가 가능할까?

22년 6월 15일, 국회에는 '조력 존엄사' 법안이 발의됐습니다. 조력 존엄사는 연명 의료 중단보다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본인 선택에 따라 담당 의사의 도움으로 삶을 마치는 것입니다. 법안을 발의했던 안규백 의원은 한국 성인의 80%가 안락사에 찬성한다는 응답을 근거로 한국도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논의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영상은 ‘조력 존엄사’에 대해서 윤영호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 김현선 서울대 철학과 교수, 박은호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연구소장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당신은 조력 존엄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아웃 어브 아프리카 - 카렌 블릭센 I 고전5미닛 (5분 내외)
피와 살이 그들과 하나되어-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그들의 역사에 ‘제국주의’라는 어두운 시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인 중에는 착취와 탄압으로 피식민지인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피식민지인들의 고통을 공감하며 이들과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았던 유럽인들도 있었습니다. 작가 카렌 블릭센은 원주민들과 우정을 나누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 애썼으며, 그들을 가르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에게 배우려 했다고 합니다. 1985년 영화화 되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개 부문을 석권하며 전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진 《아웃 어브 아프리카》를 소개합니다.
*포스터를 클릭하면 소개 영상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맺는 말


이성이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어떤 다른 실천적 동인이나 장래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동시에 자기에게 세우는 법칙 이외의 어떤 것에도 복종하지 않는 이성적 존재자의 존엄성의 이념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 목적들의 나라에서 모든 것은 가격을 갖거나 존엄성을 갖는다. 가격을 갖는 것은 같은 가격을 갖는 다른 것으로도 대치될 수 있다. 이에 반해 모든 가격을 뛰어넘는, 그러니까 같은 가격을 갖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존엄성을 갖는다.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B77쪽), 백종현 옮김, 아카넷,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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