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146] 삶의 은밀한 안내자 “감정”

이치훈
2024-07-03
조회수 239


이천이십사년의 반절이 접히고 남은 반절에 접어들었습니다. 소서(小暑, 7월 5일)를 앞두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늘처럼 장마는 찾아와 다음 주 끝자락까지 긴 비를 내린다고 합니다. 이렇듯 자연은 세운 계획을 한 치 어김이 없는 것 같은데, 저의 지나온 해의 절반은 시작할 때의 계획 중 그대로 이행한 것을 찾는 게 더욱 어렵습니다. 오늘도 우연과 우연이 설켜 이 하루를 빚어 가고 있지만, 남은 해의 절반은 어디를 향하여, 얼마의 속도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겨서, 어떤 마음으로 걸어가야 할지, 잠시 멈추어 다시금 깊이 되짚어보고 길을 나서야겠습니다.


최근 개봉한 디즈니·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가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단기간 큰 흥행 수입과 역대 픽사 애니메이션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의 기록을 세우며 국내에서도 개봉 이후 20일간 연속 박스오피스 1위, 현재 누적 관객 570만 명을 훌쩍 넘으며 많은 사랑과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전편 ‘인사이드 아웃 1’은 주인공 11살 소녀의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불철주야 열심히 일하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의 흥미로운 우여곡절을 다뤘고, 속편에서는 사춘기를 맞이한 주인공에게 “불안, 당황, 따분, 부럽” 네 가지 낯선 감정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평화롭던 일상 깨지고 위기와 모험을 맞으며 감정들의 충돌과 변화, 극복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의 아홉 개의 감정이라니요! 참 흥미롭습니다. 여러분 안에는 몇 명의 ‘감정이’가 함께하고 있나요? 지금, 어떤 ‘감정이’가 본부의 운전대를 잡고 있나요?

IMAGE ⓒ WITH ASHLEY AND COMPANY

감정을 뜻하는 영어 “Emotion"‘밖으로’를 의미하는 접두사 “e-"‘움직이다’를 의미하는 동사 “movere”를 결합한 라틴어 “emovere"을 어원으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감정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내적 상태이자 동력이라는 개념을 내포합니다. 뇌신경과학과 심리학에서 감정을 정의하는 개념도 이와 비슷합니다. 감정은, 몸이 보내오는 신호이며 미래 예측을 위해 생성하는 생물학적 반응이고, 독립적으로 인지적 평가를 하는 몸의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즉, 감정은 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동양에서는 감정을 몸이 아닌 “마음의 상태” 혹은 “느낌”으로 받아들여 개념화 되어왔습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그렇듯이, 서양에서는 감정을 머릿속(뇌)에서 일어나는 작용으로 바라보는 반면, 동양에서는 감정을 가슴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작용으로 바라봅니다. 감정은 어디에 있고 무엇일까요? 서강대학교 희망연구소 김향숙 (심리학과) 교수의 칼럼을 통해 이토록 가까우면서도 그토록 모르고 사는 “감정”에 대해 살펴봅니다.


감정은 호흡과 닮았습니다. 늘 함께 하지만 매 순간 인식하며 살지 않고, 굳이 들여다보고 살펴볼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감정의 존재를 특별히 인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감정이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주거나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는요. 어느 날 문득 감정이 의식 표면 위로 솟구치는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눈물을 왈칵 쏟거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기도 합니다. 뜻하는 대로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 아픈 상처가 드러나면서 느끼는 수치심, 관계의 진전을 만들어 나가면서 커지는 만족감 등 감정이 마음을 폭풍처럼 또는 산들바람처럼 소리 내며 스쳐 지나갈 때야 우리는 비로소 감정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정은 내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꾸준히 나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긍정적 감정이든, 부정적 감정이든, 어떤 감정이든, 모든 감정은 나에게 신호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몸의 다양한 영역의 상호작용을 통해 감정은 쉼 없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내 것이 아닌 감정을 내 것으로 오해하거나 혹은 나의 진실한 감정을 내 것이 아닌 양 무시하거나 부인할 때, 소외된 감정들은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고통을 동반해 다시 찾아오게 됩니다. 결국, 불편한 감정들은 내가 나의 몸으로부터, 나의 경험으로부터 멀어졌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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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이민한 후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지내던 희수 씨에게 불면증과 초조함, 불안과 우울이 찾아온 것은 4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였다. 교외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한 후 새롭게 집을 수리하느라 힘에 부쳤고, 무엇보다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두고 자신만 호사를 누리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어느 날 문득 '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란 생각이 들면서 텅 빈 느낌이 들었고, 제대로 식사를 못하고 토하는 증상과 함께 몸무게가 줄고 가슴과 얼굴이 조이며 목이 아픈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혼자 누워 있을 때면 호흡이 가빠지면서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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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 씨가 느끼는 감정은 "우울"과 "불안"입니다. 이는 느낌만이 아니라 생각과 신체의 변화를 동반하는데, ‘나만 이렇게 잘 살고 어머니를 등한시하는 건 아닌가?’라던가,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타국에서 외롭게 살겠구나’라는 생각들은 "우울"의 한 부분입니다. 구토감이나 목에서 느껴지는 이물감, 수면 곤란이나 체중감소, 가쁜 호흡은 마음의 긴장, 불편감 및 "불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은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한편으로는 희수 씨의 삶에 일종의 신호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울"은 잠시 멈추어서 나를 돌보라는 메세지를 줍니다. 타국에서의 삶에 적응하느라, 가정을 일구느라 온통 외부로만 향했던 관심을 이제 자신에게로 향하고 이제는 자신을 돌보라는 메세지인 셈입니다. "불안"은 삶의 균열을 비집고 스멀스멀 피어나오곤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는 위협이나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있으니 미리 조심하라는 신호입니다. 또한, 불안은 지금까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사용해 온 삶의 방식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불안을 통해서 삶을 다른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감정을 조절해야 할 필요성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희수 씨와 같이, 어느 날 문득, 예기치 않게 찾아와 문을 두드리는 감정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가장 먼저 1) 감정의 방문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감정이든 분명히 일어난 이유가 있기에, 의식하지 않는다거나 돌려보낸다고 해서 그 감정이 사라질 리 만무합니다. 무시나 회피는 당장의 해소감을 얻는 듯하지만, 더욱 강하게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고는 2)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명료히 파악해야 합니다. 어떤 감정인지 알아야 그 감정이 보내오는 메세지를 온전히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감정은 주관적 느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생각이나 신체의 변화를 통해서 읽을 수도 있고, 혹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지레 겁먹지 않고 감정을 바로 마주하고 그 이름을 묻게 된다면 감정은 더 이상 낯선 침입자가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 그 감정을 잘 대접하고 떠나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정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과정에서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압도하는 불편함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다루고 조절할 수 있는 삶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2024년 01월 18일 발행된 '기능주의 관점에 기반한 감정에 대한 이해'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https://platonacademy.org/29/?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7636016&t=board

아프가니스탄과 이란과 튀르키예의 시인이자 이슬람 법학자이자 철학자인 마울라나 잘랄루딘의 시 <여인숙>에서도, 나를 찾아오는 감정을 귀한 손님처럼 환대하고, 깊이 이해하고, 잘 떠나보내라는 지혜의 말을 가르쳐줍니다. 감정이 우리를 방문하는 순간, 우리는 감정을 손님으로 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감정과 동일화 되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감정이 곧 '나'가 됩니다. 심장을 두드리거나, 목덜미를 데우거나, 머리를 지끈하게 하거나, 소화 기관 먹통을 만드는 감정에 "손님"이라고 이름표를 붙여주세요. 그리고 친절한 눈길로 손님을 맞이하고 따뜻한 주의를 기울여주세요. 중요한 메세지를 들려줄 거랍니다. 
 


<여인숙>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

기쁨, 절망, 슬픔

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

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

 

그 모두를 환영하고 맞아들이라.

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

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

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

 

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

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어두운 생각, 부끄러움, 후회

그들을 문에서 웃으며 맞으라.

그리고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하라.

누가 들어오든 감사하게 여기라.

 

모든 손님은 저 멀리에서 보낸

안내자들이니까.


- 잘랄루딘 루미 Jalāl ad-Dīn Muhammad Rūmī -

1970년대, 당시 지배적이었던 사람의 감정을 극대화하는 록 음악의 강렬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음악이 공기처럼 공간의 배경으로 존재하면서 정신을 집중시키고 신경을 안정화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Ambient 앰비언트" 음악이 영국 뮤지션 "브라이언 이노 Brian Eno"를 통해 창시되었습니다. 앰비언트 음악은 듣는 이의 감정을 이끌지 않고, 공간의 배경을 채우며 듣는 이의 활동에 방해를 주지 않고 대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음악을 목적으로 합니다. 아래 브라이언 이노의 대표곡을 공간에 재생해 두고, 잠시, 나를 찾아온 손님(감정)을 환대하고 주의 기울여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Brian Eno, Laraaji - Ambient 3 : Meditations

최근의 진화심리학 연구는 감정이 단순히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공포는 위험을 피하게 하고, 사랑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하며, 혐오감은 해로운 물질을 피하게 합니다. 감정은 단순히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인 것입니다. 감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것은 억제하거나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지혜롭게 활용해야 할 내면의 소중한 자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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