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의 끝자락입니다. 아직도 낮으로는 이렇게 더우면 어쩌란 말이냐 싶다가도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짧은 옷을 나무라듯 팔다리를 펄럭이며 불어갑니다. 일교차가 특히 큰 때입니다. 코로나19 재감염 소식도 드물잖게 들려와 외출 시 마스크와 도톰하고 긴 외투를 챙기셔야겠습니다. 가을의 한가운데인 추석 명절 연휴가 든 구월, 모든 날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
최근, 도심을 벗어난 산사에서 수행자의 일상과 문화를 단기간 체험하는 ‘템플스테이’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의 템플스테이 참여자 수는 34만 1000여명으로 전년(29만 1000명) 대비 17% 증가하였고, 눈에 띄는 점은 그중 절반 정도가 2030, MZ 세대라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관심과 참여가 커짐에 따라 사찰마다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는데요, 2박 3일 동안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작은 방 안에서 홀로 오롯이 수행에만 전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반려견과 함께하는 댕플 스테이, 양양 서피비치(SURFYY BEACH)가 협업하여 서핑과 명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는 서핑 템플스테이, 뿐만 아니라 코레일관광개발 사이트에서는 템플 스테이의 다소 긴 일정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대상으로 하루 간 산사 문화를 체험하는 당일치기 프로그램으로 ‘템플 스테이 테마 기차여행’ 패키지가 지난 6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2002년 처음 시작된 ‘템플 스테이’에 작년까지 참여한 인원이 대략 64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불교를 종교로 하는 국내의 인구는 300만 명이 줄었다고 합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무종교인이 60%로 급기야 이마저도 늘어나는 추세란 것을 고려하면, 종교는 갖지 않지만 종교적 문화를 향유하고 싶고, 정신적・영성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하겠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이름 붙여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종교에 얽매이지 않지만 영성적인. 즉, 제도권 종교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종교 밖에서 홀로 영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종교’가 영향력을 갖고 기능하였으나 지금은 일상의 영역 밖에서 그 역할과 영향력이 매우 축소된 현시점에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성해영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현시대의 ‘종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의미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
성해영 교수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및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Rice) 대학에서 플로티노스의 종교 체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주된 관심 분야는 종교 심리학과 신비주의의 비교 연구다. 특히 개인의 종교 체험 전반에 관한 연구와 종교 체험과 종교 사상의 상호 관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서울대학교에서 1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수업으로 ‘명상과 수행’을 진행해 오고 있다. |
한국의 무종교인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 23% 정도 되고 전 세계 평균이 16~17%가량으로 추정되니까 우리나라(60%)가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무종교’라 하면 흔히 유물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거나 인간의 영혼 혹은 사후 세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매우 많은 수가 종교적 문화를 향유한다고 할까요? 단적인 예가 ‘템플스테이’이죠
종교가 없는데도 절이나 교회, 성당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도 종교 단체나 모임에 가지 않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곱씹어 볼 대목이 있는데, 첫째로, 인간의 합리성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과학, 법률, 정치, 교육, 경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이 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독립하며, 종교의 역할이나 영향력이 굉장히 축소되었습니다. 덧붙여, 현대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개인이 중심이 되는 최초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교육 수준도 높아지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으며, 과거보다 오래 살면서 ‘삶의 의미’를 직접 찾고, 그렇게 찾은 의미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된 시대 상황에 종교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는 물음이 최초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 스마트폰 속 가상의 공간이 ‘성전’이 되기도 합니다. 중세 기독교 시절에는 개인적으로 경전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거나 심지어 다른 종교 경전들을 가져다 읽는 행위 자체가 거의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습니다.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나 영어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도 화형을 당했으니까요. 혜초(통일신라시대의 승려)는 불경을 구하러 인도까지 갔지만,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모든 종교 경전뿐 아니라 해석이나 설명을 다 구해서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개인들(SBNR)에게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대입니다. |
탈종교 속, 자기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영적 탐구자(Seeker)가 많아졌다.
이것은 제도권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저 같은 종교심리학이나 신비주의를 전공한 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좀 다르게 보입니다. 인간에게는 근원적으로 자기보다 더 큰 차원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확대하려고 하는 능력과 본능이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존재론적으로 ‘엑스터시(ECSTASY)적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 능력으로 접하게 된 초월적 차원(혹은 자기 존재의 더 깊은 차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제도화된 종교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불교도 생로병사의 궁극적 의문에 사로잡혀서 온갖 고행 끝에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개인적인 체험이 제도화되고 역사화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운 최제우 이후에 동학도 그렇듯, 개인이 자기 자신을 넘어선 어떤 차원과 접촉하고 그 만남의 경험이 그다음 제도로 혹은 역사로, 조직으로 만들어진 것이 제도화된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시커(Seeker)들의 영적 추구라고 하는 건 제도화된 종교를 부정해서라기보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영적 추구 욕구’가 현대사회로 갈수록 더 많이 장려되거나 허락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죠. 사실, 종교 전통 안에는 개인의 의식이 바뀌는 그 체험 속에 놀라운 영적 통찰이 있다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현대에서는 그 체험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제도화된 종교 조직 테두리 바깥에서 막 일어나고 있는 거죠. 한마디로, ‘삶의 기쁨에 대한 내적인 체험’입니다. 존재가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는 게 아니라 더 큰 차원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그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경험이죠.
이걸 저는 ‘영적 기쁨의 대중화’로 봅니다. 무종교인이 급속하게 늘어가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죠. 사람들이 유튜브가 됐든 요가 모임이 됐든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하는 엑스터시 체험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지금까지 전통 종교들이 이런 체험과 그 체험에 도달하는 길을 독점해 왔다면 지금은 더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전통 종교는 이런 변화된 시대에 새롭게 적응해야 합니다. |
덧붙여 성해영 교수는 이러한 의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꼭 조심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1) ’가짜 기쁨과 진짜 기쁨을 구분해야 한다.’ 내 마음속으로는 아닌데 하면서, 남들이 기쁜 것이라 하니까 나도 기뻐해야 하나? 따라가지 않고, 감정도 거짓말을 한다는 걸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진짜 기쁨을 찾는 것. (2) ’나의 기쁨이 남의 기쁨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남을 괴롭히면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 각자가 자기 주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조화를 이룰 것. |
종교적 문해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문해력이 있어야 전자 기기들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듯, 종교도 그렇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안 되고, 자신이 선택한 종교의 주된 가르침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와 역할을 가졌는지, 특히 한국과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다른 종교와 어떻게 평화적으로 공존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사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문해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종교에 대한 앎과 지식이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 큰 효용성과 더 큰 기쁨,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종교에 관한 공부는 특히 인간이 실존적 물음에 가장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중년 이후에 정말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 영역 중에서 종교만큼 인간의 삶을 정리하고 죽음 이후를 맞이하는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게 없거든요. 자기 삶의 의미를 더 큰 삶의 맥락에서 회고하고 성찰하고 종국에는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까지가 종교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종교 전통의 사후 세계관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물질적 차원을 벗어나 어떻게 또 다른 차원까지 연결이 되는가, 각각의 종교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또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삶에 도움이 되는가와 같은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문해력이 높아지면 지적 측면, 윤리적 측면 그다음에 명상과 직관의 측면이라는 세 분야가 골고루 조화를 이루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
Mort Garson [Mother Earth ‘s Plantasia] |
최근 레트로 사운드가 유행하고 70년대 신시사이저 음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소셜 미디어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뒤늦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음악이 있습니다. 전자음악의 선구자이자 캐나다 작곡가인 모트 가슨(Mort Garson, 1924~2008)의 1976년 발매된 전자음악 앨범 [Mother Earth ‘s Plantasia] 입니다. "Warm earth music for plants and the people who love them”라는 부제로 ‘식물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지구 음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식물의 성장을 돕기 위해 작곡되었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그 배경은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물가게에의 의뢰로 제작된 식물 판매 독려 및 홍보용 목적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모그 신시사이저(Moog Synthesizer)라는 전자 악기를 주로 사용하여 매우 몽환적이고 부드러우며 독특한 음향을 자아내는 이 앨범은 또한 전자음악의 선구적 작품으로서 후대의 음악평론가들에게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최근 실내 식물 가꾸기가 유행했던 까닭도 있겠지만, 음악의 부드럽고 몽환적이며 반복적인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스트레스 해소와 생각 버리기, 명상'을 위한 음악으로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되고 또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듯합니다. 7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빈티지한 음향도 덤으로 영향을 주었겠습니다. 식물 또는 식물과 관련된 주제의 10개 수록곡들이 식물 생장에 도움이 될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는 물론 없습니다만, 안팎으로 먼지 많은 요즘, 내 집의 식물에게든 내 안의 식물에게든 이 따뜻한 음악을 선물해 주시길 추천드립니다. 작곡가 모트 가슨 역시,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음악’이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오늘, 이 음반과 함께 내 안에 사랑의 햇살과 물, 사랑과 친절의 거름을 주세요. |
본래 ‘영성’이라는 단어는 나보다 더 큰 차원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회복하려는 노력입니다. 좋은 대화를 하거나 좋은 영화를 보거나 좋은 책을 보거나 아름다운 자연 공간에 있을 때, ‘나’라고 하는 작은 자기가 타인,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더 큰 존재가 되어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궁극적 기쁨의 상태가 우리 삶의 곳곳에 내재한다는 뜻입니다. 일상의 기쁨을 되도록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키워나가면 나도 기쁘고 상대방도 기쁘잖아요. 그러면 그게 천국이 되는 거죠. (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인터뷰 중에서) |
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
(재)플라톤 아카데미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2길 19 SK에코플랜트 15층 수신거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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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의 끝자락입니다. 아직도 낮으로는 이렇게 더우면 어쩌란 말이냐 싶다가도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짧은 옷을 나무라듯 팔다리를 펄럭이며 불어갑니다. 일교차가 특히 큰 때입니다. 코로나19 재감염 소식도 드물잖게 들려와 외출 시 마스크와 도톰하고 긴 외투를 챙기셔야겠습니다. 가을의 한가운데인 추석 명절 연휴가 든 구월, 모든 날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최근, 도심을 벗어난 산사에서 수행자의 일상과 문화를 단기간 체험하는 ‘템플스테이’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의 템플스테이 참여자 수는 34만 1000여명으로 전년(29만 1000명) 대비 17% 증가하였고, 눈에 띄는 점은 그중 절반 정도가 2030, MZ 세대라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관심과 참여가 커짐에 따라 사찰마다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는데요, 2박 3일 동안 자물쇠로 문을 걸어 잠그고 작은 방 안에서 홀로 오롯이 수행에만 전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반려견과 함께하는 댕플 스테이, 양양 서피비치(SURFYY BEACH)가 협업하여 서핑과 명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하는 서핑 템플스테이, 뿐만 아니라 코레일관광개발 사이트에서는 템플 스테이의 다소 긴 일정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대상으로 하루 간 산사 문화를 체험하는 당일치기 프로그램으로 ‘템플 스테이 테마 기차여행’ 패키지가 지난 6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2002년 처음 시작된 ‘템플 스테이’에 작년까지 참여한 인원이 대략 64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불교를 종교로 하는 국내의 인구는 300만 명이 줄었다고 합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무종교인이 60%로 급기야 이마저도 늘어나는 추세란 것을 고려하면, 종교는 갖지 않지만 종교적 문화를 향유하고 싶고, 정신적・영성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하겠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이름 붙여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종교에 얽매이지 않지만 영성적인. 즉, 제도권 종교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종교 밖에서 홀로 영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멀지 않은 과거에는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종교’가 영향력을 갖고 기능하였으나 지금은 일상의 영역 밖에서 그 역할과 영향력이 매우 축소된 현시점에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성해영 교수의 인터뷰를 통해 현시대의 ‘종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의미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한국의 무종교인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 23% 정도 되고 전 세계 평균이 16~17%가량으로 추정되니까 우리나라(60%)가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무종교’라 하면 흔히 유물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거나 인간의 영혼 혹은 사후 세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매우 많은 수가 종교적 문화를 향유한다고 할까요? 단적인 예가 ‘템플스테이’이죠
종교가 없는데도 절이나 교회, 성당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도 종교 단체나 모임에 가지 않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곱씹어 볼 대목이 있는데, 첫째로, 인간의 합리성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과학, 법률, 정치, 교육, 경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이 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독립하며, 종교의 역할이나 영향력이 굉장히 축소되었습니다. 덧붙여, 현대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개인이 중심이 되는 최초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교육 수준도 높아지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졌으며, 과거보다 오래 살면서 ‘삶의 의미’를 직접 찾고, 그렇게 찾은 의미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된 시대 상황에 종교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는 물음이 최초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 스마트폰 속 가상의 공간이 ‘성전’이 되기도 합니다. 중세 기독교 시절에는 개인적으로 경전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거나 심지어 다른 종교 경전들을 가져다 읽는 행위 자체가 거의 목숨을 내놓는 일이었습니다.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나 영어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도 화형을 당했으니까요. 혜초(통일신라시대의 승려)는 불경을 구하러 인도까지 갔지만,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모든 종교 경전뿐 아니라 해석이나 설명을 다 구해서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개인들(SBNR)에게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시대입니다.
탈종교 속,
자기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영적 탐구자(Seeker)가 많아졌다.
이것은 제도권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저 같은 종교심리학이나 신비주의를 전공한 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좀 다르게 보입니다. 인간에게는 근원적으로 자기보다 더 큰 차원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확대하려고 하는 능력과 본능이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존재론적으로 ‘엑스터시(ECSTASY)적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 능력으로 접하게 된 초월적 차원(혹은 자기 존재의 더 깊은 차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서 제도화된 종교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불교도 생로병사의 궁극적 의문에 사로잡혀서 온갖 고행 끝에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개인적인 체험이 제도화되고 역사화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운 최제우 이후에 동학도 그렇듯, 개인이 자기 자신을 넘어선 어떤 차원과 접촉하고 그 만남의 경험이 그다음 제도로 혹은 역사로, 조직으로 만들어진 것이 제도화된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는 시커(Seeker)들의 영적 추구라고 하는 건 제도화된 종교를 부정해서라기보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영적 추구 욕구’가 현대사회로 갈수록 더 많이 장려되거나 허락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죠. 사실, 종교 전통 안에는 개인의 의식이 바뀌는 그 체험 속에 놀라운 영적 통찰이 있다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현대에서는 그 체험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제도화된 종교 조직 테두리 바깥에서 막 일어나고 있는 거죠. 한마디로, ‘삶의 기쁨에 대한 내적인 체험’입니다. 존재가 시간과 공간에 묶여 있는 게 아니라 더 큰 차원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그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경험이죠.
이걸 저는 ‘영적 기쁨의 대중화’로 봅니다. 무종교인이 급속하게 늘어가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죠. 사람들이 유튜브가 됐든 요가 모임이 됐든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하는 엑스터시 체험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건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지금까지 전통 종교들이 이런 체험과 그 체험에 도달하는 길을 독점해 왔다면 지금은 더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전통 종교는 이런 변화된 시대에 새롭게 적응해야 합니다.
덧붙여 성해영 교수는 이러한 의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꼭 조심해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1) ’가짜 기쁨과 진짜 기쁨을 구분해야 한다.’ 내 마음속으로는 아닌데 하면서, 남들이 기쁜 것이라 하니까 나도 기뻐해야 하나? 따라가지 않고, 감정도 거짓말을 한다는 걸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진짜 기쁨을 찾는 것. (2) ’나의 기쁨이 남의 기쁨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남을 괴롭히면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 각자가 자기 주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조화를 이룰 것.
종교적 문해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문해력이 있어야 전자 기기들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듯, 종교도 그렇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안 되고, 자신이 선택한 종교의 주된 가르침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와 역할을 가졌는지, 특히 한국과 같은 다종교 사회에서 다른 종교와 어떻게 평화적으로 공존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사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문해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종교에 대한 앎과 지식이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 큰 효용성과 더 큰 기쁨,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종교에 관한 공부는 특히 인간이 실존적 물음에 가장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중년 이후에 정말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 영역 중에서 종교만큼 인간의 삶을 정리하고 죽음 이후를 맞이하는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게 없거든요. 자기 삶의 의미를 더 큰 삶의 맥락에서 회고하고 성찰하고 종국에는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까지가 종교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종교 전통의 사후 세계관을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물질적 차원을 벗어나 어떻게 또 다른 차원까지 연결이 되는가, 각각의 종교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또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삶에 도움이 되는가와 같은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종교적 문해력이 높아지면 지적 측면, 윤리적 측면 그다음에 명상과 직관의 측면이라는 세 분야가 골고루 조화를 이루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Mort Garson [Mother Earth ‘s Plantasia]
최근 레트로 사운드가 유행하고 70년대 신시사이저 음악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소셜 미디어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뒤늦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음악이 있습니다. 전자음악의 선구자이자 캐나다 작곡가인 모트 가슨(Mort Garson, 1924~2008)의 1976년 발매된 전자음악 앨범 [Mother Earth ‘s Plantasia] 입니다. "Warm earth music for plants and the people who love them”라는 부제로 ‘식물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지구 음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식물의 성장을 돕기 위해 작곡되었다는 독특한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그 배경은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한 식물가게에의 의뢰로 제작된 식물 판매 독려 및 홍보용 목적으로 탄생하였습니다. 모그 신시사이저(Moog Synthesizer)라는 전자 악기를 주로 사용하여 매우 몽환적이고 부드러우며 독특한 음향을 자아내는 이 앨범은 또한 전자음악의 선구적 작품으로서 후대의 음악평론가들에게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최근 실내 식물 가꾸기가 유행했던 까닭도 있겠지만, 음악의 부드럽고 몽환적이며 반복적인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스트레스 해소와 생각 버리기, 명상'을 위한 음악으로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되고 또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듯합니다. 7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빈티지한 음향도 덤으로 영향을 주었겠습니다. 식물 또는 식물과 관련된 주제의 10개 수록곡들이 식물 생장에 도움이 될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는 물론 없습니다만, 안팎으로 먼지 많은 요즘, 내 집의 식물에게든 내 안의 식물에게든 이 따뜻한 음악을 선물해 주시길 추천드립니다. 작곡가 모트 가슨 역시,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음악’이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오늘, 이 음반과 함께 내 안에 사랑의 햇살과 물, 사랑과 친절의 거름을 주세요.
본래 ‘영성’이라는 단어는 나보다 더 큰 차원과의 관계를 인식하고 회복하려는 노력입니다. 좋은 대화를 하거나 좋은 영화를 보거나 좋은 책을 보거나 아름다운 자연 공간에 있을 때, ‘나’라고 하는 작은 자기가 타인,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더 큰 존재가 되어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궁극적 기쁨의 상태가 우리 삶의 곳곳에 내재한다는 뜻입니다. 일상의 기쁨을 되도록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키워나가면 나도 기쁘고 상대방도 기쁘잖아요. 그러면 그게 천국이 되는 거죠. (성해영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