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45 #바다] "자아는 해변 없는 바다"

관리자
2022-07-19
조회수 854


자아는 해변 없는 바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시작과 끝이 없다

여기에서나 다음 세상에서도

 

-무히딘 이븐 알-아라비(Muhyiddin Ibn al-Arabi, 1165~1240)


이번 위클리 지관에서는 '바다'와 관련된 시, 소설, 비디오 아트, 인문학 관련 책과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해변 없는 바다 저자빌 비올라 (비디오 아트,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2007)

오늘의 서가 첫 순서는 여는 말에 소개한 시와 관련이 깊습니다. 이븐 알-아라비는 11, 12세기 활동한 시인으로 수피즘에 입각한 자아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시편들을 남겼습니다. 제목이 따로 없어 ‘해변 없는 바다’로 애송되는 시는 미국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가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 제목으로 인용했습니다.

어두운 벽면에 노이즈같은 빛으로 밝혀진 인물. 그는 움직이는 화석처럼, 오래된 흑백 영상처럼, 창백한 유령처럼 서서히 다가옵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빛나는 물줄기를 터뜨립니다. 보이지 않는 경계, 아래로 쏟아지는 투명한 물의 장막은 인물의 실루엣을 터진 솔기처럼 휘감죠.

2008년 6월 27일 한국을 찾은 작가는 ‘모든 것은 움직인다’는 전제로 작업한다며 그것은 몸 전체 세포가 7년마다 새롭게 바뀌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폭넓은 미술 공부는 물론이고 불교의 선종, 이슬람의 수피교와 기독교의 신비주의에도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해변 없는 바다>에 쓰인 영상이 모두 첫 번째 촬영본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과도한 지시 없이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몸짓을 담으려던 의도였죠. 비올라는 모든 등장하는 사람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들이 삶에서 크고 작은 상실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내밀한 이야기를 말에 의존하지 않고 ‘표면’으로 떠오르도록 물을 이용했다는 겁니다. 물의 무수한 속성과 상징성 그리고 매체의 특성(Streaming 등)을 통합하며 이렇게 직관적이면서도 숭고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이 작품은 베니스의 San Gallo 교회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작품 특유의 영적인 색감, 분위기, 빛과 물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비디오아트라는 점에서 21세기 종교화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느리게 흘러가는 영상 속에서 ‘물’은 생명의 탄생과 함께 쏟아지는 양수로 보였다가, 아이가 노는 폭포처럼 보였다가, 우는 중년에게 쏟아지는 폭우로 보였다가, 뒤돌아 퇴장하는 모습에선 날개나 망토 혹은 지느러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드레스가 물에 젖어 수척해진 모습으로 서 있는 여자, 팔다리를 떨며 얼빠진 표정을 짓는 중년 남자, 자신에게만 보이는 무언가를 향해 미소 짓는 듯한 노인... 우리는 이들에게서 삶의 숭고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물처럼 자연스레 탄생과 죽음, 꿈과 현실, 유한과 무한을 가로지르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사유로 흘러가게 되죠.

지금 당신의 자아는 어떤 모양으로 물결치고 있나요?


 📚 『호모 씨피엔스』 윤학배(생각의 창, 2021.12)
 지구별 항해자를 위한 본격 바다 인문학

“바다는 낮은 곳에 있어서 어떠한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포용해야 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사람의 됨됨이가 폭넓어야 하고, 그런 사람이 큰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하죠.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管仲에게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19쪽)
지금 여러분이 사용하는 인터넷 용어는 물론 항공업과 방송에 관련된 용어 상당수가 바다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웹 서핑은 모두가 아시겠지만 로그인과 로그아웃, 다운로드와 업로드, 여권과 앵커 등이 모두 항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항해하는 동안 선박의 선장이나 항해사가 기록하는 항해일지를 로그 북log book이라고 한다. 로그인은 로그 북을 열어서 로그 북에 항해와 관련한 내용을 기재하는 것이고, 반대로 로그아웃은 로그 북을 닫고 기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60쪽)

윤학배 저자는 인문학은 물론 바다와 밀접한 일을 해왔는데요. 1986년 해운항만청에서 공직부터 2017년 해양수산부 차관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국내는 물론 UN과 영국 런던 대사관 등에서 일하며 유럽인들의 바다관(觀)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공부할수록 바다가 지형학, 생태학, 정치학의 차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언어와 의식에도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한 구절을 빌려와 바다의 인문학적 의의를 설명한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일반인은 알기 힘든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 영토 전쟁을 다룬 <바다 밑 해저케이블 전쟁>, 버스커버스커의 음악으로 유명해진 여수와 세계 해양 박람회의 연관성을 다룬 <여수 밤바다와 세계 박람회>. 이 외에도 <런던의 택시 운전사와 모기 함대>, <해양 강국이 된 산악 국가 스위스> 등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를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이번 주는 다방면의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저자의 직관 그리고 담백하고 재치 있는 문장들로 짜인 이 책으로 인문학 로그인(log in)하시는 건 어떨까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파도 예술의 이유 (11분 내외)

자포니즘(Japonism)은 19세기 프랑스 혁명과 함께 서양의 새로운 회화 양식인 인상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구체제의 몰락에 따른 새로운 문화 양식의 필요, 정치적 요구 등 서양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더라도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죠.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그림은 우키요에 화가, 일본 망가의 창시자 ‘카츠시카 호쿠사이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입니다. 고흐의 그림, 드뷔시의 음악 등 예술 전반에 광범위한 영감을 준 작품을 해설과 함께 만나보시죠.


📺파도는 부서지기 전에 가장 높다 이성호 대표 세바시 (18분 내외)

호쿠사이의 ‘파도’는 오늘날 어떤 파도 이어졌을까요? 이번엔 서울 삼성동으로 파도를 옮겨봅니다. 코엑스 건물 외부에 파도가 출렁이는 전광판을 본 적 있으신가요? 한 번 쳐다보면 한동안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죠. 가로디스트릭트가 제작한 실감콘텐츠 공공미술작품으로 전 세계 전광판 마케팅에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혁신적인 작품을 내놓기까지 그들은 10년 동안 실감콘텐츠를 제작하면서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고 회사는 파산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겨야 했답니다. 현실의 파도가 덮쳐오는 순간마다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이성호 디스트릭트 대표에게 직접 들어봅니다.


📺 '씨스피라시'의 6가지 논쟁점과 매체들의 반응 - 영화잡학사전 (9분 내외)
작년 초 넷플리스 다큐멘터리 화제작《씨스피라시(Seaspiracy)》에 나온 중요한 쟁점들과 매체들의 반응에 대해 알아봅니다. 해양 오염의 심각성이 대중 의식에 자리 잡게 된 건 '쓰레기 섬, 코에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 등의 뉴스를 통해서인데요. 이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자, 텀블러를 쓰고 플라스틱 빨대는 쓰지 말자'라는 구호가 기업과 국가 차원의 움직임을 이끌어내기도 했죠. 하지만 씨스피라시에서는 정작 해양 오염의 주범은 상업 어업이라는 사실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다큐는 해양 오염의 한 측면만을 다루거나 일부 오래된 자료를 사용했지만, 그럼에도 그 메시지와 영향력 만큼은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해양 오염의 진실 지금 확인해 보시죠. 

 🏛️ 노인과 바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l 고전5미닛 (5분 내외)
 인생이란 망망대해 앞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통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는 “이 작품이 우리 시대 작가가 쓴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라며 극찬을 표했습니다. 헤밍웨이가 전하는 인생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In Memory> ©가나아트센터

 📰한강 소설서 영감받아 엮어낸 '백색 실의 바다' - 김슬기 기자, 매일경제, 2022.07.17

 "저에게는 사는 것이 곧 예술입니다. 전시 직전에 암 선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항암제 치료를 받을 때 진료도구를 일루미네이션으로 꾸며서 작품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머리가 빠진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서 작품으로 승화한 적도 있습니다. 예술을 하는 것이 곧 삶이고, 생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에 천착하는 설치 예술가 시오타 치하루. 그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일본계 스타 작가입니다. 그는 한강 소설가의 소설 『흰』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 개인전 <인 메모리(In Memory)>를 통해 그가 천착하던 '죽음'은 물론 '생명과 존재'의 의미까지도 포괄했다고 합니다. 
소설『흰』은  2018년 맨부커 인터네셔널 부문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강보, 배내옷, 각설탕, 입김, 달, 쌀, 파도, 백지, 백발, 수의 등 '나'와 '그녀'를 매개하는 '흰 사물' 총 65개의 이야기로 파생되는 독특한 형식입니다. 치하루 작가는 그동안 자신이 천착했던 죽음의 오브제인 배, 드레스, 혈관처럼 퍼진 실타래 연결망, 인형, 트럼프 카드 등에 소설 '흰'의 주제를 적용한 것이죠.
이번 전시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고찰하며 방황하던 작가가 누군가의 소중했던 사물을 만나 그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으로 승화한 결과물입니다.

*위치: 가나아트센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30길 28 (평창동)
*전시 기간: 2022. 7. 15 ~ 8. 21 
*운영 시간: 화~일 10:00 ~ 19:00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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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우크라이나 뱀 섬-김화진 교수, 뉴스1

 ✍️ 맺는 말

정신 없이 또 한 주가 지났습니다. 우리는 사이렌의 노래에 쉽게 현혹 당하고 현실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피곤한 선원들입니다. 오늘 날 우리를 이끌 오디세우스는 어디에 있으며 도대체 이 배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저는 이 구절에 쓰인 ‘창조’를 조금 비틀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는 파멸의 방식을 창조하도록 창조되었다고, 더 나은 방식의 파멸과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유한하고 유약하며 무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용감하게 진리를 시험하고 미지를 탐험하며 자신을 초과한 것들 앞에 당당할 수 있다고... 오래된 한계의 해변으로 밀려드는 인간의 굳건한 파도들을 저는 믿습니다.


“노인은 모든 게 늙고 오래됐지만, 바다색을 닮고 활기와 불굴의 의지가 서린 그 눈만큼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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