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지관

위클리 지관에서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잠시 '멈춤'신호를 받을 수 있는 삶의 물음들을 살펴봅니다. 책, 영화, 강연, 칼럼 등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서 매주 하나의 물음을 사유합니다. 매주 수요일,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Vol.49 #비움] 비움을 배우고 배움을 비워라

관리자
2022-08-15
조회수 1131


이번 호 주제는 '비움'입니다. 지난 호 '절제'에 이어 어떤 수양자 풍의 주제로 이어보았어요🧘‍♂️ 바깥이 격변할수록 오히려 우리 내면을 세심하게 살펴야 할 때라는 생각에 선정했습니다. 이번 '비움'호에서는 장자를 통해 배우는 비움 가이드북, 상실과 비워짐 그리고 삶의 의미에 관한 영화, 정리와 미니멀리즘에 관한 영상 콘텐츠를 다룹니다. 


 📚 『장자의 비움 공부』 조희 (리텍콘텐츠, 2020.12)
 비움과 채움은 본질적으로 같다

새들이 날 수 있는 이유는 뼈가 비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뼈가 비어 있기에 무게를 줄일 수 있고 그 줄인 무게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다. (...) 학교에서의 쉬는 시간은 비어 있는 시간이다. 수업 시간이 아니라서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잠시 휴식을 갖고 재정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듯 장자의 비움 철학은 날 수 없는 생물을 날 수 있게 하는 진화론의 설명까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준다. (276쪽)

이 책은 <장자> 원서와 생애를 파고드는 연구서가 아닙니다. 장자를 통해 '비움'을 공부하고 일상에서 실천해보자는 가이드북이죠. 현대인의 삶에 적합한 면을 부각하다보니 의미망이 협소해진 논의들이 있지만, 바쁜 일상에서 비움을 추구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습니다. 또 한자어 뜻풀이, 전문용어, 인용에 기대지 않고 장자의 한계점도 짚어주는 논의들로 구성해 치우침 없이 소박한 책입니다.

장자의 핵심 사상은 만물제동(萬物齊同)입니다. 공자와 맹자가 인의(仁義)를 강조하며 시비선악(是非善惡)의 분별하고 절제했다면, 장자에게 그런 것은 모두 다른 한쪽이 있기에 가능한 의존적 개념이며 '작은 도'라는 거죠. 장자는 그보다 큰 '자연의 도'에 합일되어 차별 없는 초월적 경지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노자가 도를 '만물의 불변실체'로 바라보며 외적 사물과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과 처세를 논했다면, 장자는 도를 '만물의 변화운동 자체'로 바라보며 상대주의이자 내부로부터의 초월로 논했습니다.

지난 [위클리 지관] '절제' 편에서 공자의 <중용>을 다루며 성실함과 절제를 이야기했죠. 연달아 이 책을 다 읽고 저는 어떤 생각과 비유가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배움에 끝을 두지 않고 지극하게 성을 다하라는 공자가 나를 '압박하는 들숨'이라면, 장자는 내 본성에 맞게 그 배움을 소화하고 경험으로 체득하여 '풀어내는 날숨'이라는 생각이요. 그래서 물을 호흡하고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비워내는 일이 '지극함'이 아닐까, 그래서 채운 것을 체화하여 거리낌 없이 행해도 안팎으로 거부감이 들지 않는 합일이 '지극한 도'가 아닐까 하고요.

실제로 장자는 앞선 현자들의 논의를 끌어와 더 나은 사유를 이끌어내려 노력했습니다. 저도 공자와 장자를 조금이나마 읽었으니 제 본성에 따라 시도는 해봐야 했죠. '비움을 배우고 배움을 비워라!'

지금 당신은 무엇을 호흡하고 있나요? 무엇을 채우고 비우며 당신을 사유하고 있나요?


 🎥 《노매드랜드》클로이 자오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데이빗 스트라탄 외 I 2021)
 움직이는 영혼의 영토를 위하여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 속에 시들고

우연히 혹은 자연의 변화로 빛을 잃지만

그대의 여름날은 시들지 않으리

그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리


-주인공 '펀'이 낭독하는 시 중에서


2017년 출간(한국에서 2021년 번역·출간)된 논픽션 원작『Nomadland』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세계금융위기로 경제 붕괴를 겪은 네바다주에서 떠나 미국 서부를 여행하는 현대 유목민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신이 굳건히 믿거나 소유한 것들이 사라졌을 때,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요?

저라면 우선 상실을 겪은 곳에서 떠날 것 같습니다. 주인공 ‘펀’은 사는 지역의 경제가 몰락하고 남편도 죽자 낡은 밴을 끌고 미국 서부로 노마드의 삶을 개척해갑니다. 길 위에서 그는 노매드로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스왱키, 캠핑장에서 일하던 데이브와의 인연, 5년 전 아들이 자살한 이후 노매드들의 안내자로 살아 온 밥 웰스 등 제각각 사연을 가진 노매들을 만나며 자신의 빈 자리와 삶의 의미를 성찰합니다. 누군가에게 사막의 도로는 그저 황량한 장소지만, 노매드들이 함께 머문 그곳은 삶의 의미를 함께 적셔가는 잘 마른 여백이었죠. 그들이 자신을 짓누르는 상실감을 어떻게든 표현할 때 우리는 그 사람들의 결핍과 공명하여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원작과 달리 주인공 '펀'과 '데이브'의 서사가 추가되었는데요. 주인공 ‘펀’ 역을 맡은 맥도맨드와 ‘데이브’ 역을 맡은 데이빗 스트라탄 두 배우 외에는 모두 실제 노매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출연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각본에 따라 연기를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경유하여 목소리를 내는 인물들. 그들은 자연스럽고 분명한 어조로 노매드의 영토를 증언하는 것만 같습니다.  ‘노매드랜드’는 자본으로 환원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움직이는 생의 영토’라고요.

특히 아름다운 씬이 있어 아래 영상으로 소개해드립니다. 다른 젊은 노매드의 여름을 응원하며 주인공 펀은 자신의 젊은 시절에 지은 시를 낭송해줍니다. 또 아름다운 씬은 스왱키가 펀과 헤어진 후 소식을 전해오는 장면과 대사들인데요. 입과 손가락이 근질거리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말을 아끼겠습니다🤫

코로나, 장마, 혼란스러운 국제관계, 물가상승으로 기분이 나지 않는 휴가철입니다. 그럼에도 노매드들이 자신의 분신인 '밴'을 장식하듯, 영화를 감상하며 당신 생의 여름날을 아름답게 장식해보시길 바랍니다.

*🚐[노매드랜드]는 현재 시리즈온, 티빙, 웨이브에서 유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밴을 클릭하시면 영화 플랫폼 링크로 이동합니다.


📺 2,000가구 넘게 집정리를 하며 내가 깨달은 것 - 정희숙 대표 I 스터디언 (10분 내외)
 물건이든 생각이든 하루에 한 가지씩 정리를 시작하세요 

"미니멀라이프가 다시 유행이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못 살거 같아요. (...) 버리는 건 정리의 해결책이 아니에요! 그냥 한 부분인 거죠. 분명히 내가 사는 공간에는 쓰레기보다는 보물이 훨씬 많아요. 그걸 찾아내려면 분류를 해야 돼요."


📺 혁신은 절제에서 나온다 - 스터디언 (3분 내외)
 더하기보다 빼기가 완벽함을, 더 많은 연결을 만든다

1990년대 초 레고는 전세계 장난감 시장의 80%를 장악했었습니다. 하지만 곧 매출이 급감했는데요. 원인은 독점특허인 상호결속블록 기간이 만료된 것, 비디오 게임의 등장이었습니다.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레고의 본질인 블록 간의 연결에 집중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레고가 발전하며 부속품이 너무 많이 늘었다는 것이었죠. 블록 디자이너들의 과도한 상상력이 오히려 특수 블록과 난해한 모델을 증가시켜 블록간 연결을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레고는 과연 이문제를 과연 어떻게 이를 극복했을까요?


📺 철 박스가 미술 작품? 단순함의 미학, 미니멀리즘 아트란? - 스튜디오 메타아트 (3분 내외)
 "사물에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 도널드 저드

독창성과 감성을 배제하며 전통적인 작가 신화를 파괴한 도널드 저드. 그의 작품에는 작가의 내면을 중시하던 추상표현주의, 형식주의 모더니즘 담론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시도가 담겼습니다. 무제 연작을 이어가는 방법부터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단순한 반복과 통일된 양식이 특징적인데요. 차가운 산업 재료를 사용하고 제작은 외주에 맞기며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직관적인 컬러 사용했습니다. 존재의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사물성도 드러내며 현실과 예술 작품의 거리를 좁힌 것이죠. 미니멀리즘의 서구자로 평가받는 로널드 저드의 작품 세계를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 빨강 노랑 파랑이 있는 구성 - 피에트 몬드리안 I 고전5미닛 (5분 내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법칙을 찾아라
이 광활한 우주를 노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수만 장, 수백 장의 그림을 그리고 수천 개의 시를 써도 이 우주를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몬드리안은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이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법칙을 찾아내 그것을 표현하면 아무리 큰 우주도 하나의 작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2022년 의정부 백영수미술관에서 '백영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특별 전시를 엽니다. 백영수 화백은 한국 최초 추상미술그룹인 '신사실파' 중 한 사람으로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이중섭 화가 등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신사실파는 일제 해방 후 최초로 등장한 추상주의 서양화가의 모임으로 '새로운 사실(寫實)을 표방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추상미술그룹으로 발전했습니다. 
현재 백영수 화백의 자서전 『성냥갑 속의 메세지』와 김명애 회고집 『빌라 슐바의 종소리 』를 매개로 전시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번 전시는 2부로, 1970년말 의정부 시절부터 30여 년의 프랑스 시절 그리고 2011년 귀국 후 호원동에 이르는 여정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남은 전시 기간이 촉박하지만, 백영수미술관에서는 현재 백영수 화백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며 매주 목금토일마다 친절한 도슨트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전시기간: 2022. 06. 07 ~ 08. 19(금)
*전시장소: 백영수미술관 - 경기 의정부시 안말로58번안길 55-1
*도슨트 운영: 목금토일 14, 15, 16시부터 20분씩
*운영시간: 화~일 10:00 ~18:00 (매주 월요일-신년-설날-추석 휴관, 점심시간 매일 12시~13시)

 ✍️ 맺는 말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가죽나무라고 부르는 큰 나무가 있습니다. 큰 줄기는 굴곡이 심하고 잔가지는 너무 구부러져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이 나무처럼 당신의 주장도 크기만 하고 아무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혜자의 말이 끝나자 장자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대는 살쾡이라는 짐승을 본 적이 있지요? 살쾡이란 놈은 몸을 최대한 낮춘 채로 작은 짐승들을 노리거나, 먹이를 찾아 사방을 뒤지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덫이나 그물에 걸려 잡혀 죽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 검은 소는 큰 덩치 때문에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대에게 쓸모 없는 큰 나무가 걱정이라면 그것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진 너른 들판에 심어 놓고 그 그늘 아래서 낮잠이나 자는 편이 나을 겁니다. 이 큰 나무는 세상의 관심과 소용에서는 멀어졌으나 해를 입을 걱정에서도 멀어진 것이지요."


-『장자의 비움 공부』 4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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