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 달력 한 장을 또 뒤로 넘깁니다. 여름의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小暑, 7월 7일)에 다다라, 약속한 듯 때맞춰 햇볕은 뜨거워지고 장맛비에 공기는 무거워졌습니다. 7월 위클리 지관 주제는 ‘자연’입니다. 하늘과 바다, 나무들과 동식물들을 떠올리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에게 주제를 빌려, 우리 인간의 본성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하여 곰곰 헤아려 보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
삶을 실험하러 미국 시골로 떠난 강남 마님 이야기 |
서울 강남에서 자라,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신문기자로 4년, 워싱턴대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엘리트 박혜윤 씨. 강남에서 자랐지만 거기서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그녀는 시애틀 외곽의 시골 이동식 주택에서 두 딸, 남편과 함께 딱히 직업도 없이 반(半) 자급자족 하며 8년째 시골살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았던 적 없는 세상인데 동시에 이렇게 나빠진 적도 없는 세상을 살다 보니, ‘원하는 대로 산다는 게 뭔지, 삶의 진짜 의미는 뭔지’ 질문의 무게는 현대의 우리에게 더욱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녀처럼, 정말 숲에서 자급자족하며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주소지도, 집도 없이 여행하듯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그 무거운 질문에 대해 치열히 답을 찾은 이들의 한 강구책이겠지요. 경제 성장이 멈춰진 한국사회에서 밀려난 박혜윤 씨가 개발한 그녀만의 새로운 능력은 ‘쓰지 않는 능력’입니다.
“빵 만드는 걸 예로 들고 싶어요. ‘빵을 직접 굽느니 사 먹을 돈을 벌겠다.’ 이렇게 흔히 말하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빵을 사 먹을 때의 기쁨도 있지만 직접 만들면서 누리는 기쁨도 있어요. 그 기쁨을 증폭시키면 훨씬 많은 다른 능력이 내게 있었다는 걸 발견하죠. 빵을 사는 일과 만드는 일은 단순히 이거 아껴서 저걸 사는 ‘산수’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평행우주예요. 집에서 만들면 일단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돈 쓸 시간이 없고 만들고 배우는 데 대한 기쁨이 증폭되면서 소비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와요.” |
그녀는 자신의 ‘삶을 실험'하게 된 출발이 자신이 진짜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는 깨달음에서 왔다고 합니다.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썩 그렇게 중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모두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녀는 하찮은 집안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 엄마 시대만 해도 집안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잖아요. 지금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집안일을 하면 뭔가 상실되고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기 쉽잖아요. 이걸 겉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집안일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제게는 집안일이 하찮다는 걸 부정하는 건 제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어요. 집안일은 사회적인 가치로 봤을 때 하찮은 게 맞는 거예요. 집안일의 하찮음이 바로 삶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진 힘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인생 자체가 원래 이렇게 하찮게 살다가 하찮게 죽어가는 거 아닐까. 그래서 어느 날, 이 하찮은 일에 굉장히 집중하기로 결심한 거죠.”
두 딸이 사춘기 때 반항한다든지,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 왜 나는 이래?’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이 집안일에 집중하면서 자기 존재감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설명합니다. 아이들은 남보다 공부를 잘하는 데서 자기 존재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갖고 놀던 장난감은 내가 치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고 싶으면 스스로 일어난다, 내가 먹은 거는 내가 설거지한다, 다음 날 입고 싶은 옷을 입으려면 빨래는 어떤 스케줄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날씨를 체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찮은 집안일을 통해 단단하고 자주적인 개별적 존재로서 성장한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
“저는 제 삶을 한번 실험해 보고 싶었어요. 생각한 대로 과연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지난 8년간 잘 살았고 의외의 기쁨과 만족을 얻고 있어요. 제가 추구하는 건 자유예요. 행복과는 다르죠. 그렇다고 하늘을 날겠다거나 요트를 탈 수 있는 자유가 아니고 그냥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거죠. 빵 만드는 그 순간에 집중하면서 얻는 만족, 쾌락, 기쁨 그럴 때 자유로움을 느껴요.” |
자세히 살펴보러 가기 → https://shorturl.at/hAG05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 시리즈 - 인생의 본질이 뭔지 제대로 실험해 보고 싶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도시인의 월든’ 저자 박혜윤 인터뷰) |
현대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셨나요? 역사적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클래식 음악을 일컫는데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곡가로는 '올리비에 메시앙, 존 케이지, 쇤 베르크, 한국에는 윤이상과 진은숙' 등이 있습니다.
미술, 건축, 여느 예술처럼 음악도 이 시기에는 '새로운 것을 좇아' 혹 작품이 파괴적이고 비일상적이며 청중이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기존의 없던 새로운 것만이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던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역시 다양한 전위적 기법들로 난해하고 불협화적인 전형적 현대 클래식 음악을 선구하며 작품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다 1970년경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염증과 개인사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그는 모든 창작활동을 그만두고 한참을 침묵합니다. 그는 그 침묵의 시기에 과거로 돌아가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시대 다중합창을 연구합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무늬'를 만들죠. 종소리를 뜻하는 틴틴나불레(Tintinnabular)라는 이름으로요. 아주 제한된 소재로 매우 단순하고 기본적인 작곡어법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오직 그만의 고유한 것이기에 가장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만의 무늬'로 작곡된 여러 작품들로, 그는 현대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현대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곡가가 됩니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삶을 살아가려는 순결함을 박혜윤 씨의 '삶의 무늬'와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 무늬'에서 고스란히 느낍니다. 어쩌면 어느 영화, 드라마, 광고 속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그의 대표곡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을 Leonhard Roczek(첼로)와 Herbert Schuch(피아노)의 연주로 감상하시며 고난과 시련 속에서 찾은 그만의 고유한 무늬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어떻게 보면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버리고 비우면 가벼워지나요?' 라는 질문에 박혜윤씨의 답변.
"버리고 비우는 것 자체도 귀찮으니까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자유를 추구하면 자연스럽게 버리고 비우게 돼요. 물건을 쌓아놓으면 제한을 받거든요. 채식주의니 뭐니 하는 어떤 주의에 묶이는 것도, 인생을 잘 살아야 된다는 명제에 충실한 것도 다 묶이는 제한이 되잖아요. 왜 꼭 잘 살아야 돼요. 그냥 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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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신동아 2022년 12월호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 "인생의 본질이 뭔지 제대로 실험해 보고 싶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도시인의 월든’ 저자 박혜윤) 인터뷰에서 발췌한 글들을 각색/편집하여 사용하였습니다. |
인문 큐레이션 레터 《위클리 지관》 어떠셨나요? 당신의 소중한 의견은 저희를 춤추게 합니다🤸♂️ |
(재)플라톤 아카데미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2길 19 SK에코플랜트 15층 수신거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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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달력 한 장을 또 뒤로 넘깁니다. 여름의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小暑, 7월 7일)에 다다라, 약속한 듯 때맞춰 햇볕은 뜨거워지고 장맛비에 공기는 무거워졌습니다. 7월 위클리 지관 주제는 ‘자연’입니다. 하늘과 바다, 나무들과 동식물들을 떠올리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연’에게 주제를 빌려, 우리 인간의 본성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하여 곰곰 헤아려 보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삶을 실험하러 미국 시골로 떠난 강남 마님 이야기
서울 강남에서 자라,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신문기자로 4년, 워싱턴대에서 교육심리학 박사학위까지 받은 엘리트 박혜윤 씨. 강남에서 자랐지만 거기서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이후로, 그녀는 시애틀 외곽의 시골 이동식 주택에서 두 딸, 남편과 함께 딱히 직업도 없이 반(半) 자급자족 하며 8년째 시골살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좋았던 적 없는 세상인데 동시에 이렇게 나빠진 적도 없는 세상을 살다 보니, ‘원하는 대로 산다는 게 뭔지, 삶의 진짜 의미는 뭔지’ 질문의 무게는 현대의 우리에게 더욱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녀처럼, 정말 숲에서 자급자족하며 아이들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주소지도, 집도 없이 여행하듯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그 무거운 질문에 대해 치열히 답을 찾은 이들의 한 강구책이겠지요. 경제 성장이 멈춰진 한국사회에서 밀려난 박혜윤 씨가 개발한 그녀만의 새로운 능력은 ‘쓰지 않는 능력’입니다.
“빵 만드는 걸 예로 들고 싶어요. ‘빵을 직접 굽느니 사 먹을 돈을 벌겠다.’ 이렇게 흔히 말하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빵을 사 먹을 때의 기쁨도 있지만 직접 만들면서 누리는 기쁨도 있어요. 그 기쁨을 증폭시키면 훨씬 많은 다른 능력이 내게 있었다는 걸 발견하죠. 빵을 사는 일과 만드는 일은 단순히 이거 아껴서 저걸 사는 ‘산수’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평행우주예요. 집에서 만들면 일단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돈 쓸 시간이 없고 만들고 배우는 데 대한 기쁨이 증폭되면서 소비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이 와요.”
‘하찮은’ 집안일의 철학
그녀는 자신의 ‘삶을 실험'하게 된 출발이 자신이 진짜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는 깨달음에서 왔다고 합니다.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썩 그렇게 중요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모두가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녀는 하찮은 집안일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 엄마 시대만 해도 집안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잖아요. 지금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집안일을 하면 뭔가 상실되고 나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기 쉽잖아요. 이걸 겉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집안일은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말하죠. 하지만 제게는 집안일이 하찮다는 걸 부정하는 건 제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았어요. 집안일은 사회적인 가치로 봤을 때 하찮은 게 맞는 거예요. 집안일의 하찮음이 바로 삶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진 힘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인생 자체가 원래 이렇게 하찮게 살다가 하찮게 죽어가는 거 아닐까. 그래서 어느 날, 이 하찮은 일에 굉장히 집중하기로 결심한 거죠.”
두 딸이 사춘기 때 반항한다든지,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 왜 나는 이래?’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이 집안일에 집중하면서 자기 존재감이 확고해졌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설명합니다. 아이들은 남보다 공부를 잘하는 데서 자기 존재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갖고 놀던 장난감은 내가 치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고 싶으면 스스로 일어난다, 내가 먹은 거는 내가 설거지한다, 다음 날 입고 싶은 옷을 입으려면 빨래는 어떤 스케줄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날씨를 체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찮은 집안일을 통해 단단하고 자주적인 개별적 존재로서 성장한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러 가기 → https://shorturl.at/hAG05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하는 ‘삶이 묻는 것들에 답하다’ 시리즈 - 인생의 본질이 뭔지 제대로 실험해 보고 싶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도시인의 월든’ 저자 박혜윤 인터뷰)
현대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셨나요? 역사적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클래식 음악을 일컫는데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곡가로는 '올리비에 메시앙, 존 케이지, 쇤 베르크, 한국에는 윤이상과 진은숙' 등이 있습니다.
미술, 건축, 여느 예술처럼 음악도 이 시기에는 '새로운 것을 좇아' 혹 작품이 파괴적이고 비일상적이며 청중이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기존의 없던 새로운 것만이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던 에스토니아 출신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역시 다양한 전위적 기법들로 난해하고 불협화적인 전형적 현대 클래식 음악을 선구하며 작품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러다 1970년경 당시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염증과 개인사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며, 그는 모든 창작활동을 그만두고 한참을 침묵합니다. 그는 그 침묵의 시기에 과거로 돌아가 그레고리오 성가와 르네상스 시대 다중합창을 연구합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무늬'를 만들죠. 종소리를 뜻하는 틴틴나불레(Tintinnabular)라는 이름으로요. 아주 제한된 소재로 매우 단순하고 기본적인 작곡어법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오직 그만의 고유한 것이기에 가장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만의 무늬'로 작곡된 여러 작품들로, 그는 현대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현대 클래식 음악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곡가가 됩니다.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삶을 살아가려는 순결함을 박혜윤 씨의 '삶의 무늬'와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 무늬'에서 고스란히 느낍니다. 어쩌면 어느 영화, 드라마, 광고 속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그의 대표곡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을 Leonhard Roczek(첼로)와 Herbert Schuch(피아노)의 연주로 감상하시며 고난과 시련 속에서 찾은 그만의 고유한 무늬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보면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버리고 비우면 가벼워지나요?' 라는 질문에 박혜윤씨의 답변.
"버리고 비우는 것 자체도 귀찮으니까 거기에 얽매이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자유를 추구하면 자연스럽게 버리고 비우게 돼요. 물건을 쌓아놓으면 제한을 받거든요. 채식주의니 뭐니 하는 어떤 주의에 묶이는 것도, 인생을 잘 살아야 된다는 명제에 충실한 것도 다 묶이는 제한이 되잖아요. 왜 꼭 잘 살아야 돼요. 그냥 사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