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
이번 탐방기에서는 저희가 독일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 ‘바이마르’에 대한 여정을 적어보려고 하는데요.
바이마르에서는 총 4일을 지냈는데, 그 이유는 괴테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이마르에서 보냈고 사랑했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마르는 독일 문학과 예술의 영감을 주는 장소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적인 도시입니다.
바이마르 곳곳에는 여전히 괴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17~18세기 괴테의 삶에 잠시나마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바이마르에서는 가장 인상 깊었던 3곳,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괴테 쉴러 아카이브 그리고 부헨발트 수용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바이마르로 함께 떠나 볼까요? :)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 안나아말리아 도서관에서 가장 유명한 로코코 홀
괴테는 바이마르에서 문화적 활동을 주도했습니다.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관장을 35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도서관은 본관 내부는 17세기의 고전적인 스타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벽에는 책이 가득 꽂혀 있었고, 천장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도서관에는 많은 책과 필사본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괴테가 직접 사용했던 책도 있었습니다.
괴테는 관장직을 수행하는 35년 동안 이 도서관을 "나의 보물"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많은 책을 읽고 연구했으며, 그의 창작 활동에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 스터디 센터의 수많은 책들에 감탄하는 장학생들
▲수 만권의 책들이 보관된 책 보관실에서
▲로코콜 홀 관람중 팀B 학생들 찰칵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은 독일 문화 유산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괴테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2004년 화재로 심각하게 파손되었지만 복원되어 현재는 원래의 영광을 되찾았습니다.
도서관은 약 100만 권의 책, 필사본, 기타 인쇄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 기관 중 하나라고합니다.
[괴테 쉴러 아카이브]
▲쉴러 아카이브에서
괴테실러 아카이브는 바이마르에 있는 괴테와 쉴러의 유산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데 전념하는 문학 아카이브입니다.
이 아카이브는 1885년 괴테의 손자 빌헬름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두 작가의 원고, 편지, 그림, 기타 개인 소지품을 수집하고 보존해 왔습니다.
괴테와 실러는 1794년에 만나서 금방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디 호렌》(Die Horen) 잡지와 《발렌슈타인》(Wallenstein) 연극 등 여러 작품들을 함께 작업했는데요.
그들은 또한 정기적으로 편지 교환을 했는데, 그들의 편지는 그들의 생각과 아이디어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육필 보존 작업을 설명해주시는 에클 박사님
괴테 쉴러 아카이브에는 이들의 육필들 뿐만 아니라 이 육필들의 보존 작업을 직접 볼수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이 작업을 볼 수 없지만, 전영애 교수님 덕분에 연구실로 들어가 보전 작업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시는 박사님께서 잉크 성분으로 인한 부식으로 종이에 생겨난 미세한 구멍들을 메워가는 섬세한 작업을 직접 보는데,
저희는 모두 감탄하며 정말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
마지막으로 바이마르에 있는 나치 강제 수용소인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에 갔습니다.
이곳은 전영애 교수님께서 매번 회의 때뿐만 아니라 독일에 가기 직전까지 우리 학생들이 꼭 봐야하는 곳으로 강조해주셨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는 1937년 7월에 나치 독일에 의해 세워진 강제 수용소입니다.
1945년 4월 11일에 미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25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수감되었으며, 그중 5만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수용소의 내부에는 수감자들이 살았던 수용소 막사, 강제 노동을 했던 공장, 학살을 자행했던 가스실과 화장터,
수감자들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비와 박물관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희생된 이름들
우리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 소설 ‘안네의 다이어리’ 등 미디어, 책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나치 독일 정권의 처참한 역사를 접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수용소에 방문해서 참혹한 당시의 상황을 직접 두 눈으로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게 정말 인간이 할수 있는 일인지 믿기지 않았고 수용소에서 전영애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의 양면성 속에는 모두 짐승이 살고 있는데 극한 상황에는 누구나 이 짐승이 튀어나올수 있기에,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부헨발트 수용소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기억하고,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였습니다.
수용소를 방문하는 것은 끔찍한 역사를 목격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인류의 어두운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결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크란츠 선생님과 전영애 교수님
수용소를 들른 다음날, 홀로코스트 유대인들을 돌보고 계시는 크란츠 선생님을 가튼하우스 들판에서 만나 귀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생존자들의 이야기, 근황, 그리고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들려주셨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부헨발트 수용소의 생존자 나플라티 씨의 이야기였습니다.
나플라티 씨는 9살 때 형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수감되었습니다.
다행히 그와 형은 아우슈비츠 수감 중에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의 행군을 겪어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밤을 새우며 135km를 4일 동안 걸어야 했고, 또 4일을 화물 열차로 이동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후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갔고, 다행히 살아 남았지만,
형이 죽을 때까지 50년 동안 아무에게도 자신이 당했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신들이 당한 일을 수십 년 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40년 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이 수용소 생존자인지 모르고 사신 가족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동안 우리는 다시 한번 숙연해지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크란츠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씀은 전날 교수님께 들었던 것과 비슷했습니다.
“인간 모두에게는 결정권이 있습니다. 옳은 길로 갈 것인지, 악한 길로 갈 것인지.”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는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크란츠 선생님께 질문하는 학생들
바이마르는 괴테가도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찾지 않았을 도시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와 보니 왜, 괴테가 이곳을 이토록 사랑했고 오래 머물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바이마르에서의 탐방이 다른 곳보다 길었던 만큼 여운이 오래 남고, 많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전영애 교수님의 따뜻한 가르침과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함께했던 바이마르에서의 4일,
오래도록 가슴속 깊이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 :)
이번 탐방기에서는 저희가 독일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 ‘바이마르’에 대한 여정을 적어보려고 하는데요.
바이마르에서는 총 4일을 지냈는데, 그 이유는 괴테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바이마르에서 보냈고 사랑했던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마르는 독일 문학과 예술의 영감을 주는 장소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적인 도시입니다.
바이마르 곳곳에는 여전히 괴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는 17~18세기 괴테의 삶에 잠시나마 들어가 볼 수 있었습니다.
바이마르에서는 가장 인상 깊었던 3곳,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괴테 쉴러 아카이브 그리고 부헨발트 수용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바이마르로 함께 떠나 볼까요? :)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은 독일 문화 유산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괴테 쉴러 아카이브]
괴테실러 아카이브는 바이마르에 있는 괴테와 쉴러의 유산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데 전념하는 문학 아카이브입니다.
이 아카이브는 1885년 괴테의 손자 빌헬름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두 작가의 원고, 편지, 그림, 기타 개인 소지품을 수집하고 보존해 왔습니다.
괴테와 실러는 1794년에 만나서 금방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디 호렌》(Die Horen) 잡지와 《발렌슈타인》(Wallenstein) 연극 등 여러 작품들을 함께 작업했는데요.
그들은 또한 정기적으로 편지 교환을 했는데, 그들의 편지는 그들의 생각과 아이디어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괴테 쉴러 아카이브에는 이들의 육필들 뿐만 아니라 이 육필들의 보존 작업을 직접 볼수 있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이 작업을 볼 수 없지만, 전영애 교수님 덕분에 연구실로 들어가 보전 작업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작업을 하시는 박사님께서 잉크 성분으로 인한 부식으로 종이에 생겨난 미세한 구멍들을 메워가는 섬세한 작업을 직접 보는데,
저희는 모두 감탄하며 정말 집중해서 보았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
마지막으로 바이마르에 있는 나치 강제 수용소인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에 갔습니다.
이곳은 전영애 교수님께서 매번 회의 때뿐만 아니라 독일에 가기 직전까지 우리 학생들이 꼭 봐야하는 곳으로 강조해주셨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는 1937년 7월에 나치 독일에 의해 세워진 강제 수용소입니다.
1945년 4월 11일에 미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 25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수감되었으며, 그중 5만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수용소의 내부에는 수감자들이 살았던 수용소 막사, 강제 노동을 했던 공장, 학살을 자행했던 가스실과 화장터,
수감자들의 죽음을 기리는 추모비와 박물관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희생된 이름들
우리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 소설 ‘안네의 다이어리’ 등 미디어, 책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나치 독일 정권의 처참한 역사를 접해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수용소에 방문해서 참혹한 당시의 상황을 직접 두 눈으로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게 정말 인간이 할수 있는 일인지 믿기지 않았고 수용소에서 전영애 교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의 양면성 속에는 모두 짐승이 살고 있는데 극한 상황에는 누구나 이 짐승이 튀어나올수 있기에,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부헨발트 수용소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기억하고,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였습니다.
수용소를 방문하는 것은 끔찍한 역사를 목격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인류의 어두운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결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크란츠 선생님과 전영애 교수님
수용소를 들른 다음날, 홀로코스트 유대인들을 돌보고 계시는 크란츠 선생님을 가튼하우스 들판에서 만나 귀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생존자들의 이야기, 근황, 그리고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들려주셨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부헨발트 수용소의 생존자 나플라티 씨의 이야기였습니다.
나플라티 씨는 9살 때 형과 함께 아우슈비츠로 수감되었습니다.
다행히 그와 형은 아우슈비츠 수감 중에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죽음의 행군을 겪어야 했습니다.
추운 겨울에 밤을 새우며 135km를 4일 동안 걸어야 했고, 또 4일을 화물 열차로 이동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후 부헨발트 수용소로 옮겨갔고, 다행히 살아 남았지만,
형이 죽을 때까지 50년 동안 아무에게도 자신이 당했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자신들이 당한 일을 수십 년 동안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40년 동안 함께 살았던 남편이 수용소 생존자인지 모르고 사신 가족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는 동안 우리는 다시 한번 숙연해지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크란츠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씀은 전날 교수님께 들었던 것과 비슷했습니다.
“인간 모두에게는 결정권이 있습니다. 옳은 길로 갈 것인지, 악한 길로 갈 것인지.”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하며,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는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크란츠 선생님께 질문하는 학생들
바이마르는 괴테가도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찾지 않았을 도시였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와 보니 왜, 괴테가 이곳을 이토록 사랑했고 오래 머물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바이마르에서의 탐방이 다른 곳보다 길었던 만큼 여운이 오래 남고, 많은 깨달음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전영애 교수님의 따뜻한 가르침과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함께했던 바이마르에서의 4일,
오래도록 가슴속 깊이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