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K정신이다.]⑨ 교육개벽·정치혁명 이뤄야 전세계 깨우는 한류로 자란다(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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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플라톤 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 

⑨ 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정성헌 한국디엠제트(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재)플라톤 아카데미가 공동으로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아홉 번째 마지막은 정성헌(76) 한국디엠제트(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이다.




독재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두 번의 구속과 네 번의 수배 등 고초를 겪었던 정 이사장은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했고, 1990년대엔 우리밀살리기운동 본부장을 맡아 우리밀살리기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확산시킨 농민운동가다. 지금은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을 중심으로 생명살림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민주화운동가 출신이지만 진보와 보수 어느 한쪽에 경도되거나 편향되지 않아, 양쪽 모두가 그의 생각을 경청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그 때문인지, 그는 2012년엔 독립운동가 민세(民世) 안재홍(1891~1965) 선생을 기리는 민세상 사회통합 부문에서 수상했고, 최근엔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성균관대 초대 총장인 심산 김창숙(1879~1962)을 기리는 심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2길 (재)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정 이사장을 만났다. 자그만 체구지만 흰 눈썹의 청아한 모습이다. 외모만이 아니다. 2010~1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회장을 하면서 관용차와 고액 연봉을 거절하고 당시 노동자들의 월급액 중간에 해당하는 월 200만 원만을 스스로 책정해 받았던 그다. 2018~21년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을 지낼 때도, 현재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을 지내면서도 자기가 먹는 채소를 직접 가꾸어 먹는다. 봉자옥골(鳳姿玉骨·봉황의 자태와 옥같이 깨끗한 골격) 같은 외모 그대로 단순 소박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운동가다. 자기만의 삶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삶의 철학은 늘 실천을 동반한다. 새마을운동중앙연수원에서 1600~2300㎡(대략 500~700평) 남짓한 대형 텃밭 8개를 만들어 매일 400명이 먹는 채소를 자급자족했고,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에서도 그런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 앞엔 ‘만사지식일완’(萬事知食一碗)이라는 글귀가 돌에 새겨져 있다.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해월 최시형의 말이다. 동학경전 ‘천지부모’ 편에 나오는 이 말은 ‘하늘은 사람에 의지하고, 사람은 먹는 것에 의지하나니,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아는 것에 있느니라’란 뜻이다.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에서 재생 에너지로 기후위기도 극복하며 농촌도 살리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태양광 발전소로 만든 전기로 유기농 채소를 가꾸고 있는 정성헌 이사장.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 제공


밭일을 하기 전 낫을 갈고 있는 정성헌 이사장.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 제공



“밥 한 그릇이 되기까지 햇빛과 땅, 벌레, 농민의 모든 수고가 거기에 다 담겨 있다.
그것만 알아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밥 한 그릇을 먹는 것이 천지를 먹는다는 이치도 모르면서 공허한 철학과 이론을 들먹이는 것은 그의 보짱(마음속에 품은 꿋꿋한 생각)에 맞지 않는다. 그가 새마을운동중앙회 관사나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에 손님이 오면 손수 정성껏 밥을 지어 대접하는 것도 그런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는 어디를 가든 필요 없는 전기를 끊고, 혼자서는 늘 어두운 곳에 있기를 자처한다. 그는 누구나 그 자신부터 기후 위기, 생태 위기에 맞선 실천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표현은 못 했어도 모든 생명을 ‘천지부모’로 여겼다. 그래서 설거지를 할 때, 물을 버릴 때도 벌레들 놀랜다고 함부로 버리지 않고 천천히 버렸다. 해월 선생은 인간이 하늘을 모시고 있음을 알았기에 제사도 벽을 보고 지내지 않고 나를 향해서 지내는 향아설위(제사하는 사람을 향해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는 천도교 교리)를 하도록 했다.”


이런 정신에 따라 매년 한 차례씩 지내는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의 천제와 민회에도 사람이 곧 하늘인 ‘인내천’이 담겨 있다. 천제 때는 참여자들이 빙 둘러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이런 방식은 황제만 제관이 되었던 중국의 천제와 달리 누구나 하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보았던 동이족의 평등의식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그는 <현장에서, 평화 생명 통일이야기>란 저서를 통해 ‘한국인의 얼을 가진 지구촌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가 생각한 한국인의 얼은 하늘을 나와 동떨어지게 본 것이 아니라 천지인을 하나로 보고 하늘과 땅과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깨고 천지인이 하나라는 생명존중의식으로 깨어나는 것을 개벽으로 본다. 그는 한류가 흥기한 것도 1990년대 이후 냉전이 해체되면서 억눌린 의식이 폭발해 우리가 가진 역동성이 발현됐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그는 자칫 인내천의 평등사상을 잘못 해석해 다툼으로 치닫는 것을 경계한다. 가령 성평등을 내세우면서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는 경향에 대해 “여러 성 공경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철학에 따라 그는 새마을운동중앙회장 때도 ‘근면·자조·협동’이라는 기존의 슬로건을 ‘생명·평화·공경’으로 바꾼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지난달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에서 펼쳐진 천제와 민회.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 제공


지난달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에서 펼쳐진 천제와 민회.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 제공


―요즘 한류가 전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데, 한국인의 역할은?

“역할보다 과제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삶의 총체적 표현이다.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뭇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죽음에서 살림으로 사고를 대전환하고, 이를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교육개벽과 정치혁명이 이뤄져야 한다. 교육도 혁명 정도가 아니라 교육개벽을 해야 한다. 지덕체(智德體)가 아니다. 체덕지(體德智)다. 공부한다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체육 시간조차 없앴으니 말이 되는가. 아이들을 죽이자는 것이다. 13살 때까지는 하루 2만보의 활동량이 있어야 정상적으로 몸이 발육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은 5천보 걷는 정도나 할까. 태어나서 5살 때까지는 4만회 이상의 질문을 해야 하는데 인터넷이니 휴대전화니 하는 것들이 질문의 기회를 뺏어간다. 그래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질문을 제일 못한다. 체덕지 중 지식과 정보만 중시하니, 지혜가 없다. 자연과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전세계를 깨우는 한류가 될 수 있다.”


―한국 역사와 문화에서 가장 큰 강점은 무엇으로 볼 수 있나?

“우리는 고구려를 군사 강국으로만 기억하고 배우는데, 고구려는 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까지 말을 800필씩 선단으로 실어 날랐던 무역 강국이었다. 당시 스웨덴의 바이킹족들이 말 5필씩 실어 나를 때였다. 고구려는 대륙과 해양 문명이 합쳐져 많은 종족을 포용한 다민족 국가였다. 또한 문무를 겸비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기 성리학의 이념 독재가 짓누르며 지나치게 폐쇄돼 우리의 좋은 기질을 억압해버렸다. 외세의 침략에 항거하는 것도 한민족의 힘이다. 구한말 을미의병 때부터 1945년까지 50년을 줄기차게 항거한 민족은 드물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항거의 표준으로 많이 들지만, 히틀러 치하에서 항거한 것은 겨우 4년이다. 우리는 50년을 더한 악조건에서 싸웠다. 억압에 대해서는 생득적으로 저항하는 게 우리 민족이다. 자유와 해방 의지가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 이제 억압과 착취에 대한 저항을 인간의 자연 억압 착취에 대한 저항으로 확산해가는 것은 천지인 삼재 의식을 가진 한민족다운 것이다. 또 우리나라 지리 교과서를 보면 딱하다. 한반도는 대략 22만㎡다. 어느 책도 바다의 면적을 이야기 안 한다. 바다는 땅의 몇 배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육지와 바다를 합하면 꽤 큰 나라다. 물과 흙과 산과 바다를 같이 알고, 좋게 해야 한다. 크게 해야 한다.” 

 

정성헌 한국디엠제트평화생명동산 이사장. 조현 종교전문기자


―우리나라에선 전후 70년이 지나도 이념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데 이를 극복할 방법은 없나?

“조선 성리학을 한 사대부가 그랬지만 이념으로 인해 먹고 살 수가 있어서, 즉 생계의 방편이 될 수 있어서 이념을 내세웠다. 요즘도 글을 쓰고 방송을 할 때 양극단으로 가는 건 세게 지를수록 수입이 늘어나서다. 외세의 영향력이 커지고 민족의 자율 공간이 좁아지면서 주인 정신을 잃고 외부 사상을 좇아 살길과 이익을 도모한 것이 병폐를 쌓았다. 주인 됨을 회복하는 것이 해법이다. 외부의 많은 사상과 가르침을 참고하되 사람이 크고 깊게 되는 문화와 교육이 이뤄져야만 한다. 운동가들도 현장을 무시하고 이념적 구호에만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운동이 성공하는 법은 모르겠지만 실패하는 법은 안다. 모든 것을 이념적으로 보고 자기중심적으로만 보면 실패한다. 현장은 생활이니, 이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엔 나쁜 사람, 못난 사람, 보통 사람,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은 내 생각을 주로 하고 남 생각을 가끔 하는 사람이다. 못난 사람은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이다. 나쁜 사람은 남을 해치는 사람들이다. 좋은 세상이란 좋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중간층이 많은 곳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72483.html 한겨레 휴심정, (재)플라톤 아카데미 ‘이것이 K정신이다’ 교육개벽·정치혁명 이뤄야 전세계 깨우는 한류로 자란다 (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인터뷰

필자_조현 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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