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K정신이다.]⑩ “남들 안 하는 천한 일 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하다”(임락경 전북 정읍 사랑방 목사)

2023-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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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플라톤 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

⑩ 임락경 전북 정읍 사랑방 목사


전북 정읍 사랑방 임락경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 예술도 정신 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재)플라톤 아카데미가 공동으로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마지막 열 번째는 전북 정읍 사랑방교회 임락경(78) 목사다.



기독교 수도공동체 동광원 설립자 이현필(1913~64)은 한국전쟁 이후 광주광역시에서 결핵 환자와 사별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는 눈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헌신적 삶을 살았다고 해서 ’맨발의 성자’로 불린다. 동시대 광주에서 오방 최흥종(1880~1966) 목사도 결핵 환자와 한센 환자들을 돌봤고 한국 최초의 한센 환자 수용시설인 광주 나병원과 여수 애양원을 설립하고, 고흥 소록도에 한센 환자 갱생원이 설립되도록 했다. 그는 ’한센 환자들의 아버지’로 불렸다. 한국의 대표적인 영성가이자 사상가로 꼽히는 다석 유영모(1890~1981)는 이들의 헌신이 깃든 광주를 ‘빛고을’이라고 찬양하며, 1946년부터 1971년까지 무려 25년 동안 매년 여름이면 광주 동광원 하계수련회에서 일주일씩 사경회를 했다.


한국 기독교 130년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운 제자가 있다. 전북 정읍시 산내면 사랑방의 임락경(78) 목사다. 지난 10일 전북 정읍시에 있는, 옥정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한옥 사랑방이 그의 거처다. 요양하러 온 환자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하고 일하며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모습이 16살 때 동광원에 출가한, 이현필의 마지막 제자답다. 또한 평생 새 옷을 입지 않기로 작정한 대로 허름한 차림새도 역시 그답다.


임 목사는 군대 생활을 했던 강원도 화천군 화악산 자락 산골 마을에 시골 교회를 설립해 1980년대 초부터 지체장애인 등을 돌봤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면서 지체장애인들이 하나둘씩 정규 사회복지시설로 떠난 뒤 지금은 고향 마을 인근인 이곳과 강원도 화천을 오가며, 주로 민간건강요법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환자들을 돌봤던 동광원을 거쳐 시골 교회에서도 장애인·환자들을 돌봤기에 평생 병자들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하루 한끼만을 먹고, 선체조를 직접 개발해 새벽마다 몸을 풀곤 했던 스승 유영모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으면서 건강비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돌팔이’라고 한다. 늘 병자들과 함께해도 의사는 아니라는 뜻도 있지만, ‘이치를 돌파한 자’라는 뜻도 담긴 말이다. 그의 건강 교실은 감리교 교육원 18년 동안 열린 것을 비롯해 채현국 선생이 이사장으로 있던 효암고, 경북 상주 환경농업교육관, 전북 남원 실상사와 귀정사 등을 거쳐 10년 전부터는 이곳 사랑방 교회에서 매달 셋째 주 금·토·일 2박3일간 펼쳐지고 있다. ‘임락경의 건강교실’은 몸 건강만이 아니라 마음의 건강도 깨닫게 하는 그의 넘치는 재치와 유머 섞인 입담으로 인기를 끈다. 


그로부터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건강비법만은 아니다. 그가 10대 때부터 들어가 살던 동광원에서의 경험은 공동체성이 부서져 내린 이 시대에 한줄기 서광이 아닐 수 없다. 동광원에서는 부모 잃은 아이들이 수백명씩 함께 살았는데, 원장이나 수도자 그 누구도 ‘내 자식 네 자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북 정읍 사랑방에서 ’임락경의 건강교실’ 참석자들이 자연 건강밥상으로 식사하고 있다. 사랑방 제공


임 목사는 당시를 회고하는 말을 이어 했다. “부모 잃은 아이들을 학교에 다 보낼 수 없으니 돌아가면서 원장을 하는 분들을 비롯해 누구도 자기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잠자는 것, 먹는 것 모두 똑같이 했고, 자기 자식을 따로 더 챙기는 법이 없었다. 내 친구 엄마가 동광원 주방에서 일했다. 그 친구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면 도망쳤다. 만약 자기 엄마가 남몰래 누룽지라도 쥐여주거나, 껴안아주면, 엄마가 없는 친구들이 얼마나 슬프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한국인의 남다른 정이라고 했다. 한국인의 정은 얍삽한 정이 아니라 ’두터운 정’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는 어린 시절 전라도에 와있던 많은 서양 선교사들을 보았다. 그들 가운데는 포사이드나 서서평(본명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 같은 헌신적 분들도 있었지만, 당시 너무 가난했던 이 땅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국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장닭을 통으로 삶아 침 흘리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혼자서만 다 먹는 선교사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비해 그가 살면서 체감한 한국인들의 정은 두터웠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위해, 또 누나가 동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돌보았다. 힘든 일은 자기가 하고, 형제자매와 친구의 짐을 덜어주었다. 가족 간에도 이웃 간에도 그런 애틋함이 있었다. 고운 정만이 아니라 미운 정도 있었다. 미운 정을 설명하면 외국인은 ‘그게 복수심이냐’고 물으며 이해를 못 한다. 그러나 설사 미운 사람한테도 정을 보이는 게 우리네 마음이었다.”


혈연을 중시했던 유교가 지배한 사회를 거쳤어도 그 깊숙한 한국인의 심성엔 그런 두터움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이현필, 최흥종, 다석 유영모와의 인연은?

“처음 이현필 선생을 찾아갔을 때 폐 질환 환자들을 돌보다 본인도 같은 병에 걸려 무등산에서 요양하며 각혈 중이어서 뵙지 못하고 내려와 최흥종 목사님과 함께 살았다. 젊어서 깡패였다는 최 목사님이 이미 80살이 넘었기에 목욕도 해드렸다. 최 목사님은 석가도 공자도 구원받았다고 했지만, 그분의 기세에 눌려 어느 목사나 장로도 감히 대거리를 걸지 못했다. 이현필과 다석은 의견이 다르면 서로 자기주장을 꺾지 않았다. 그러나 뒤돌아서서는 험담을 한 적이 없고, 서로 매우 존중했다. 다석이 아버지 벌이었지만 이현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어른’이라고 했다. 이현필, 최흥종 두분이 다 돌아가셔서 다석을 20여년간 댁으로 찾아 스승으로 모시며 그의 가르침을 들었다. 이현필은 따르는 이들을 제자로 삼고 모여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다석은 홀로 서서 독립적인 신앙생활을 하라고 했다.”


―이현필은 널빤지 위에서 자고, 1일1식만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널빤지에 자는 건 그 시절에도 방에 스팀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하루 한끼만 드셨지만 쇠고깃국에 고봉밥을 드셨기에 한끼만으로도 가능했다. 나도 처음엔 1일1식을 따라 했는데, 농사를 지으며 새벽에 벼 타작을 한뒤 100㎏의 볏 가마니를 지고 가는데, 배가 고파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래서 1일1식은 땀 흘리지 않는 ‘불한당’(땀 흘리지 않는 무리라는 데서 온 말)들이 하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다석한테 그 말씀을 드리니, 일하는 사람들은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또 일하는 사람들은 무릎도 꿇고 앉지 말라고 했다. 다석에게서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라 몸나(몸뚱이)가 아닌 얼나(정신)를 깨닫게 한 것이다. ”


전북 정읍 사랑방 임락경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봉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는 자와 받는 자 간에 차별이 없어야 한다. 주는 체하면 안된다. 주면서 더 나은 옷을 입고, 더 높은 자리에 서서도 안 된다. 이현필의 제자 한영우 장로의 말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로마 병사들에게 잡힐 때 무리 속에서 그 무엇으로도 구별할 근거가 없었다. 후광도 없었고, 외모나 행색으로도 구별이 어려웠다. 유다의 입맞춤 신호를 보고서야 로마 병사가 예수임을 눈치챈 것은 예수를 타인들과 구별할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을 어떻게 보는가?

“유영모는 조선 왕조가 망한 것은 불한당인 양반들이 땀을 흘리는 것을 천하게 여긴 관존민비(관리는 높고 백성은 낮고 천하다는 생각) 사상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종교인들이 양반 노릇을 한다. 불교는 고려를 망쳤어도 올곧은 수행자들이 있어서 오늘날까지 살아 남았다. 유교의 양반들이 조선을 망쳤지만 청빈한 선비들이 있었기에 그 가르침이 이어지고 있다. 기독교도 나라를 망치기 전에 목사들이 양반 노릇을 그만두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훌륭한 사람인가?

“양반 상놈으로 나눴던 시대는 그 계급을 없앤 사람이 훌륭했다. 일제 때는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이 훌륭했다. 해방 이후엔 우리가 빈손이었으니 근검절약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훌륭했다. 독재 정권에선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훌륭했고,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사회복지가들이 훌륭한 이들이다. 지금은 지구 위기가 심하니 환경운동가들이 훌륭하다. 시대를 넘어서는 그 어느 때나 남들이 안 하는 일, 가장 천한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하다. 설거지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하다.”


―한국인에게 특별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한국 사람들은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어서 마을에 초상이 나면 같이 치르고, 집도 같이 짓고, 불이 나면 함께 꺼주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팽배해 공동체성이 무너지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너나 할 것이 자기만, 제 자식만 챙기는 시대다. 공동체에 기여한 인물이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76138.html 한겨레 휴심정, 플라톤 아카데미 ‘이것이 K정신이다’ “남들 안 하는 천한 일 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하다” (임락경 전북 정읍 사랑방 목사) 인터뷰

필자_조현 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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