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이란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탐구
● 성리학은 일종의 도덕이자 윤리학, 철학
● 조선 유학은 ‘理’ 결정론에 치우쳐
● 퇴계의 ‘敬’은 자신을 다듬는 방법의 핵심
● AI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따뜻한 인품의 인재
신동아는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 시리즈를 새로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 선보이는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는 지역사회나 공간을 기반으로 인문가치를 고민하고 이를 새로운 시대의 언어와 메시지로 알리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경북 안동에서 10년째 진행되고 있는 인문가치포럼을 만들고 이끌어온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다. <편집자 주>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는 10년간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을 이끌며 현대 사회 문제의 해답을 유교적 가치를 통해 찾으려 노력해 왔다. [박해윤 기자]
2014년부터 매년 경북 안동에서 열리는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이 올해 벌써 열 돌을 맞아 10월 27일부터 이틀간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다.
재단법인 한국정신문화재단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북도 안동시가 주최하는 행사가 내건 비전은 ‘유교적 가치를 통해 대안과 해답을 찾아나가자’는 것이다.
그동안 ‘현대 세계 속의 유교적 인문가치’ ‘공감과 배려’ ‘나눔과 울림’ ‘생명, 삶의 가치를 품다’ ‘대전환 그 너머의 세상, 인류를 위한 질문’ 등의 주제로 열렸는데 올해 주제는 ‘인간다움, 우리는 누구인가’이다. 세계적인 생물학자 및 과학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데니스 노블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와 엄융의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의 특별 강연이 예정돼 있다.
지난해 9월 말 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제9회 21세기 인문가치포럼 현장. [한국정신문화재단]
경북 안동은 오래전부터 유학을 기본으로 한 인간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어온 곳으로 알려져 있다.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같은 유학자가 배출된 곳이고 도산서원, 하회마을, 봉정사 등 유교적 가치 위에 지어진 건축물도 많다. 독립운동가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안동 인문가치포럼이 지향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포럼을 1회부터 기획하고 조직하는 전반적 과정에 좌장을 맡고 있는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인류학)를 만났다.
김 교수는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사회인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베이징대와 산둥대 특임일급교수를 지낸 중국 전문가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3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문화의 정치와 지역사회의 권력구조: 안동과 안동김씨’를 펴내기도 했다.
유학의 핵심 가치는 ‘사람’
경북 안동이라는 공간이 유학과 인문학의 중심이 된 배경이 있다면 뭘까요.
“안동 사람들은 전통과 역사의식이 강한데 신의를 중시하는 가치관, 선비 정신을 중시하는 도덕관은 물론 의식주를 포함한 물질문화에도 이것이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국가에 대한 주인 의식도 강한데 전국에서 독립운동가가 가장 많이 나온 사실이 이를 증명하지요.
안동은 전통적 교육도시여서 경북 북부 지역 인재 양성의 중심이었습니다. 불교사원과 유적도 많고 ‘안동교회’로 대표되는 교회와 성당은 개신교와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만큼 문명 간의 대화가 일찍부터 일어났고 지금도 유교적 바탕에 종교적·문화적 다양성이 화합을 이룬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안동을 전통 한국학에 기반한 ‘열린 인문학의 고장’이라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좀 단도직입적 질문이라 주저됩니다. 유학이란 게 고리타분하고 시대 변화에는 잘 다가오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요즘 현실인 것 같습니다만.
“유학의 핵심 가치는 ‘사람’입니다. 안동의 인문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전통 유학을 단지 재생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현대적 해석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사람다움’의 가치관을 모색하려 하는 겁니다.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21세기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으로 우리들 삶의 세계가 전혀 새롭게 변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기존의 인간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가치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인문 가치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추구돼야 합니다.
나는 유학을 더욱 확대 해석하려 합니다. 공자·맹자·주자·퇴계 이런 분들이 말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어떤 경학적인 해석을 넘어서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예술의 제 영역을 결합해 인간다움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종합적이고 통합적으로 성찰해 보자는 것을 오늘날의 ‘유(儒)’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이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탐구였다는 것을 더 듣고 싶습니다.
“공자는 인간이 어떤 덕목을 갖췄을 때 완전한 인간이 되느냐 하는 가르침을 세웠습니다. 그걸 갖춘 사람을 ‘군자’라 했고 이 세상이 군자 그리고 군자의 도(道)로 채워지면 그게 이상향이라고 설파했어요. 이를 중국 송대에 주희가 다시 집대성한 것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유학(Neo-Confucianism)입니다. 주자는 인간의 착한 본성을 찾고 이를 실현하는 이치를 추구했는데 이를 성리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성’은 인간의 본성이고 ‘이(理)’는 방법으로서의 이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 사조가 고려 말에 들어왔어요. 당시 젊은 유생들이 받아들여서 유교의 이상 국가를 만들자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혁명을 일으킨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조선의 성리학은 개개인이 윤리적 또는 도덕적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그런 사람들로 사회가 채워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도덕이자 윤리학, 철학이라 할 수 있겠지요. 공자가 완전한 도덕적 존재로서 개인의 수양을 강조했다면 맹자는 좀 더 사회과학적 관심을 개발했다고 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사람은 본성이 착하다 또는 착해야 한다는 것은 어디서나 인정받는 진리이지요. 그런데 이 착함이 어떤 구조와 환경에서 어떻게 해석돼야 되고, 어떤 행위가 선한 것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보편적 기준이 없으면 각각 자기중심주의를 옹호하는 수단이 될 뿐이지요. 공맹사상은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의 완성을 핵심으로 삼고 있어요. 공자가 개인이 군자로서 갖는 존재 양식에 집중하고 있다면, 맹자는 개인과 사회의 연결성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켰다고 봅니다.
예컨대 맹자는 ‘왕이 도를 어기면 갈아치울 수도 있다’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명적 발언을 하고 있지요. 즉 인과 의가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실천돼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인데 이는 사회과학자들이 맹자를 읽는 방식이지요.”
조선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결국 나라가 망함으로써 조선의 유학을 바라보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앞서 유교를 고도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이’와 ‘기’ 즉 이성과 감성 그리고 정신과 물질적 기운의 관계에 대해 ‘이’의 결정론에 치우쳤다는 점입니다. 특히 조선의 유학은 ‘이’를 중시한 나머지 정신적 측면에 집중해 삶의 물질적 기반을 소홀히 하는 강한 성향을 갖게 됐다고 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수한 머리를 가진 지식 엘리트들이 진작 백성들이 좀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는 데 더 관심을 쏟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농담 삼아 말합니다. 어쨌든 인간의 본성 추구에서 더 나아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기술적 환경의 확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쏟는 것은 조선조 후기에 와서야 시작됐지요.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개념인데 소위 실학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조선의 마지막 비극은 유교 때문이 아니고 국제정세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진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유교가 질 책임이 있다면 유교 지식인들이 너무 정신세계의 추구에 치중하고 지구적 세상의 현실 변화에 대한 인식과 실질적 적응력을 갖추지 못했던 시대적 착오가 가져온 결과로 볼 수 있겠지요.”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는 “가정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서 인격이 드러난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퇴계 이황
이 대목에서 안동 인문 가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한 얘기를 좀 해주시죠.
“퇴계는 명종조에 활동하고 선조 2년에 서거했는데 주자의 성리학을 더욱 세련하고 체계화했고 ‘성학십도(聖學十圖)’를 편찬해 조선 유학의 틀을 잡은 학자입니다. 그의 학맥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 발전하고 있고, 이에 따라 세계 유학계에서 ‘퇴계학’이란 이름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퇴계의 위대함은 학문도 학문이지만 그 실천성에서 찾아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가정 안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면 그의 인격이 드러나는데 개인적으로 퇴계를 정말 대단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표적 일화가 있습니다.
서울에 살던 퇴계 손자가 아들을 낳았어요. 퇴계 증손자지요. 그런데 손주며느리가 젖이 부족해 다 죽어가게 된 거예요. 손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본가에 연락해 젖어미로 노비 한 사람을 찍어 보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노비에게도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퇴계는 손자에게 ‘내 자식 살린다고 남의 자식 죽이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거절하고 다른 방도를 구해 보라는 간곡한 가르침의 편지를 보냅니다. 안타깝게도 증손자는 두 돌을 갓 넘기고 죽고 말았습니다.
물론 퇴계는 두고두고 피눈물을 흘렸겠지요. 하지만 혈육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자제하고 생명의 존엄성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다는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지요. 퇴계는 신분제로 고착화된 계급사회에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했어요. ‘사람다움’ 혹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보편적 가치와 윤리로 삼아 이를 몸소 실천했습니다.”
그는 또 다른 일화로 제자들과의 관계를 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언행 불일치가 많지요. 하지만 퇴계는 언행일치에 온 정성으로 일관하는 분이었어요. 빈부, 귀천도 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배움에도 열려 있고 누구에게든지 예로서 대했습니다.
후배인 청년 학자 고봉 기대승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은 조선 성리학의 핵심적 기초가 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고봉은 ‘이’와 ‘기’는 하나를 이루는 것이며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가 없다면서 퇴계와 논변을 합니다. 퇴계는 ‘기는 이가 없으면 혼란을 만들 뿐’이라고 답변하죠. 바로 조선 철학사상 역사에서 백미로 꼽히는 ‘퇴계 고봉 논변’입니다.
영남의 퇴계와 호남의 고봉은 당시 천 리 밖에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서울과 안동, 안동과 광주를 오갔을 편지 120여 통은 한 통이 오고가는 데 아마 한 달은 족히 걸렸을 겁니다. 이렇다 보니 편지 논변은 8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고봉은 퇴계의 주장을 수용하며 자신의 논리와 절충했고, 퇴계 역시 고봉의 주장을 수용해 자신의 학설을 일정 부분 수정 보완하면서 논쟁은 마무리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퇴계의 태도입니다.
편지 왕래를 시작했을 때 그들의 나이 차는 무려 스물여섯이었고 퇴계는 58세 대학자로 성균관 대사성 지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봉은 갓 과거에 급제한 서른둘 신출내기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퇴계는 나이나 지위에 구애하지 않고 학문적 논쟁을 뛰어넘어 서로 안부와 정치, 나아가고 물러남, 집안일까지 끈끈하게 문답합니다.”
율곡 이이와의 대화도 유명하지요.
“맞습니다. 고봉 이후 율곡이 나와서 성리학을 더 세련화하지요. 율곡이 500리 길을 걸어와 퇴계에게 배움을 청하는데 퇴계는 이 청년 학자와 3일을 밤낮없이 토론합니다. 그리고 갈 때 문밖까지 전송합니다. 제자들이 ‘뭐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하자 ‘그렇지 않다, 저 청년은 앞으로 이 나라를 위한 훌륭한 인재가 될 사람이다. 나도 많이 배웠다’고 말합니다.
퇴계 사상을 한마디로 ‘경(敬)’이라고 하는데 경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다듬는 방법의 핵심적 자세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표하는 공경이 아니고 윗사람도 아랫사람한테, 남자가 여자한테, 여자가 남자한테, 부부간에도 지켜야 할 도리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게 요즘 흔히들 말하는바, 자신을 삼가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지요.”
지식 갖추고 도덕 실천하는 사람, 진짜 선비
그는 “인공지능(AI) 시대에는 AI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따뜻한 인품의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선비 정신이야말로 계속해서 되새겨야 할 인문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비의 의미란 뭘까요.
“글을 읽고 쓰는 일을 하면서도 도덕을 실천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도덕이 결여된 지식인 혹은 도덕성은 있어도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선비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글은 진리를 담고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선비란 곧 진리를 추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도덕적 존재이지요. 선비 정신은 그러한 정신적 자세를 실천하는 마음가짐이며 가치관입니다. 어쩌다 관직에 나아가더라도 선비로서의 자세와 가치, 도덕을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겉으로만 선비 모습을 갖추면서 실재 행동에서는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아주 흔합니다. 그런 까닭에 현대에 와서 오히려 더욱 선비와 선비 정신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신동아 2023년 10월호
출처: 신동아:https://shindonga.donga.com/society/3/02/13/4440883/1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하는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 세계가 주목하는 선비 정신, 그 중심에 안동이 있다 (안동 인문가치포럼 이끄는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
필자_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허문명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 시리즈로 사회문화 각계의 다양한 생각을 조명한다. 저서로 <김지하와 그의 시대>, <여성이여 세상의 멘토가 되라>, <삶의 나침반 1,2>,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가 있다.
● 유학이란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탐구
● 성리학은 일종의 도덕이자 윤리학, 철학
● 조선 유학은 ‘理’ 결정론에 치우쳐
● 퇴계의 ‘敬’은 자신을 다듬는 방법의 핵심
● AI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따뜻한 인품의 인재
신동아는 인문학재단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 시리즈를 새로 진행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년 11월 설립된 국내 최초 인문학 지원 재단으로 인류의 오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근원적 물음을 새롭게 전한다는 취지로 연구 지원, 대중 강연, 온라인 포털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 선보이는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는 지역사회나 공간을 기반으로 인문가치를 고민하고 이를 새로운 시대의 언어와 메시지로 알리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진행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경북 안동에서 10년째 진행되고 있는 인문가치포럼을 만들고 이끌어온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다. <편집자 주>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는 10년간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을 이끌며 현대 사회 문제의 해답을 유교적 가치를 통해 찾으려 노력해 왔다. [박해윤 기자]
2014년부터 매년 경북 안동에서 열리는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이 올해 벌써 열 돌을 맞아 10월 27일부터 이틀간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다.
재단법인 한국정신문화재단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북도 안동시가 주최하는 행사가 내건 비전은 ‘유교적 가치를 통해 대안과 해답을 찾아나가자’는 것이다.
그동안 ‘현대 세계 속의 유교적 인문가치’ ‘공감과 배려’ ‘나눔과 울림’ ‘생명, 삶의 가치를 품다’ ‘대전환 그 너머의 세상, 인류를 위한 질문’ 등의 주제로 열렸는데 올해 주제는 ‘인간다움, 우리는 누구인가’이다. 세계적인 생물학자 및 과학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데니스 노블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와 엄융의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의 특별 강연이 예정돼 있다.
지난해 9월 말 경북 안동시에서 열린 제9회 21세기 인문가치포럼 현장. [한국정신문화재단]
경북 안동은 오래전부터 유학을 기본으로 한 인간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어온 곳으로 알려져 있다.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같은 유학자가 배출된 곳이고 도산서원, 하회마을, 봉정사 등 유교적 가치 위에 지어진 건축물도 많다. 독립운동가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안동 인문가치포럼이 지향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포럼을 1회부터 기획하고 조직하는 전반적 과정에 좌장을 맡고 있는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인류학)를 만났다.
김 교수는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사회인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베이징대와 산둥대 특임일급교수를 지낸 중국 전문가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30여 년간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문화의 정치와 지역사회의 권력구조: 안동과 안동김씨’를 펴내기도 했다.
유학의 핵심 가치는 ‘사람’
경북 안동이라는 공간이 유학과 인문학의 중심이 된 배경이 있다면 뭘까요.
“안동 사람들은 전통과 역사의식이 강한데 신의를 중시하는 가치관, 선비 정신을 중시하는 도덕관은 물론 의식주를 포함한 물질문화에도 이것이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국가에 대한 주인 의식도 강한데 전국에서 독립운동가가 가장 많이 나온 사실이 이를 증명하지요.
안동은 전통적 교육도시여서 경북 북부 지역 인재 양성의 중심이었습니다. 불교사원과 유적도 많고 ‘안동교회’로 대표되는 교회와 성당은 개신교와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만큼 문명 간의 대화가 일찍부터 일어났고 지금도 유교적 바탕에 종교적·문화적 다양성이 화합을 이룬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안동을 전통 한국학에 기반한 ‘열린 인문학의 고장’이라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좀 단도직입적 질문이라 주저됩니다. 유학이란 게 고리타분하고 시대 변화에는 잘 다가오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요즘 현실인 것 같습니다만.
“유학의 핵심 가치는 ‘사람’입니다. 안동의 인문 가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전통 유학을 단지 재생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현대적 해석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사람다움’의 가치관을 모색하려 하는 겁니다. ‘21세기 인문가치포럼’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요.
21세기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으로 우리들 삶의 세계가 전혀 새롭게 변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기존의 인간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가치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인문 가치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추구돼야 합니다.
나는 유학을 더욱 확대 해석하려 합니다. 공자·맹자·주자·퇴계 이런 분들이 말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어떤 경학적인 해석을 넘어서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예술의 제 영역을 결합해 인간다움이 무엇이냐는 문제를 종합적이고 통합적으로 성찰해 보자는 것을 오늘날의 ‘유(儒)’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이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탐구였다는 것을 더 듣고 싶습니다.
“공자는 인간이 어떤 덕목을 갖췄을 때 완전한 인간이 되느냐 하는 가르침을 세웠습니다. 그걸 갖춘 사람을 ‘군자’라 했고 이 세상이 군자 그리고 군자의 도(道)로 채워지면 그게 이상향이라고 설파했어요. 이를 중국 송대에 주희가 다시 집대성한 것이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신유학(Neo-Confucianism)입니다. 주자는 인간의 착한 본성을 찾고 이를 실현하는 이치를 추구했는데 이를 성리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성’은 인간의 본성이고 ‘이(理)’는 방법으로서의 이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 사조가 고려 말에 들어왔어요. 당시 젊은 유생들이 받아들여서 유교의 이상 국가를 만들자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는 혁명을 일으킨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조선의 성리학은 개개인이 윤리적 또는 도덕적 완성도를 높임으로써 그런 사람들로 사회가 채워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일종의 도덕이자 윤리학, 철학이라 할 수 있겠지요. 공자가 완전한 도덕적 존재로서 개인의 수양을 강조했다면 맹자는 좀 더 사회과학적 관심을 개발했다고 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사람은 본성이 착하다 또는 착해야 한다는 것은 어디서나 인정받는 진리이지요. 그런데 이 착함이 어떤 구조와 환경에서 어떻게 해석돼야 되고, 어떤 행위가 선한 것이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보편적 기준이 없으면 각각 자기중심주의를 옹호하는 수단이 될 뿐이지요. 공맹사상은 도덕적 존재로서 인간의 완성을 핵심으로 삼고 있어요. 공자가 개인이 군자로서 갖는 존재 양식에 집중하고 있다면, 맹자는 개인과 사회의 연결성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켰다고 봅니다.
예컨대 맹자는 ‘왕이 도를 어기면 갈아치울 수도 있다’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명적 발언을 하고 있지요. 즉 인과 의가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실천돼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인데 이는 사회과학자들이 맹자를 읽는 방식이지요.”
조선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결국 나라가 망함으로써 조선의 유학을 바라보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앞서 유교를 고도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아쉽게 생각하는 점은 ‘이’와 ‘기’ 즉 이성과 감성 그리고 정신과 물질적 기운의 관계에 대해 ‘이’의 결정론에 치우쳤다는 점입니다. 특히 조선의 유학은 ‘이’를 중시한 나머지 정신적 측면에 집중해 삶의 물질적 기반을 소홀히 하는 강한 성향을 갖게 됐다고 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수한 머리를 가진 지식 엘리트들이 진작 백성들이 좀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입는 데 더 관심을 쏟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농담 삼아 말합니다. 어쨌든 인간의 본성 추구에서 더 나아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와 기술적 환경의 확보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쏟는 것은 조선조 후기에 와서야 시작됐지요.
‘문질빈빈(文質彬彬)’이라는 개념인데 소위 실학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조선의 마지막 비극은 유교 때문이 아니고 국제정세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진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유교가 질 책임이 있다면 유교 지식인들이 너무 정신세계의 추구에 치중하고 지구적 세상의 현실 변화에 대한 인식과 실질적 적응력을 갖추지 못했던 시대적 착오가 가져온 결과로 볼 수 있겠지요.”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는 “가정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서 인격이 드러난다”고 했다. [박해윤 기자]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퇴계 이황
이 대목에서 안동 인문 가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한 얘기를 좀 해주시죠.
“퇴계는 명종조에 활동하고 선조 2년에 서거했는데 주자의 성리학을 더욱 세련하고 체계화했고 ‘성학십도(聖學十圖)’를 편찬해 조선 유학의 틀을 잡은 학자입니다. 그의 학맥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 발전하고 있고, 이에 따라 세계 유학계에서 ‘퇴계학’이란 이름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퇴계의 위대함은 학문도 학문이지만 그 실천성에서 찾아야 한다”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도 가정 안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보면 그의 인격이 드러나는데 개인적으로 퇴계를 정말 대단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표적 일화가 있습니다.
서울에 살던 퇴계 손자가 아들을 낳았어요. 퇴계 증손자지요. 그런데 손주며느리가 젖이 부족해 다 죽어가게 된 거예요. 손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본가에 연락해 젖어미로 노비 한 사람을 찍어 보내게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노비에게도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아기가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퇴계는 손자에게 ‘내 자식 살린다고 남의 자식 죽이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거절하고 다른 방도를 구해 보라는 간곡한 가르침의 편지를 보냅니다. 안타깝게도 증손자는 두 돌을 갓 넘기고 죽고 말았습니다.
물론 퇴계는 두고두고 피눈물을 흘렸겠지요. 하지만 혈육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자제하고 생명의 존엄성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다는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지요. 퇴계는 신분제로 고착화된 계급사회에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했어요. ‘사람다움’ 혹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보편적 가치와 윤리로 삼아 이를 몸소 실천했습니다.”
그는 또 다른 일화로 제자들과의 관계를 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언행 불일치가 많지요. 하지만 퇴계는 언행일치에 온 정성으로 일관하는 분이었어요. 빈부, 귀천도 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배움에도 열려 있고 누구에게든지 예로서 대했습니다.
후배인 청년 학자 고봉 기대승과 주고받은 편지 내용은 조선 성리학의 핵심적 기초가 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고봉은 ‘이’와 ‘기’는 하나를 이루는 것이며 다른 것으로 구분할 수가 없다면서 퇴계와 논변을 합니다. 퇴계는 ‘기는 이가 없으면 혼란을 만들 뿐’이라고 답변하죠. 바로 조선 철학사상 역사에서 백미로 꼽히는 ‘퇴계 고봉 논변’입니다.
영남의 퇴계와 호남의 고봉은 당시 천 리 밖에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서울과 안동, 안동과 광주를 오갔을 편지 120여 통은 한 통이 오고가는 데 아마 한 달은 족히 걸렸을 겁니다. 이렇다 보니 편지 논변은 8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고봉은 퇴계의 주장을 수용하며 자신의 논리와 절충했고, 퇴계 역시 고봉의 주장을 수용해 자신의 학설을 일정 부분 수정 보완하면서 논쟁은 마무리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퇴계의 태도입니다.
편지 왕래를 시작했을 때 그들의 나이 차는 무려 스물여섯이었고 퇴계는 58세 대학자로 성균관 대사성 지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봉은 갓 과거에 급제한 서른둘 신출내기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퇴계는 나이나 지위에 구애하지 않고 학문적 논쟁을 뛰어넘어 서로 안부와 정치, 나아가고 물러남, 집안일까지 끈끈하게 문답합니다.”
율곡 이이와의 대화도 유명하지요.
“맞습니다. 고봉 이후 율곡이 나와서 성리학을 더 세련화하지요. 율곡이 500리 길을 걸어와 퇴계에게 배움을 청하는데 퇴계는 이 청년 학자와 3일을 밤낮없이 토론합니다. 그리고 갈 때 문밖까지 전송합니다. 제자들이 ‘뭐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하자 ‘그렇지 않다, 저 청년은 앞으로 이 나라를 위한 훌륭한 인재가 될 사람이다. 나도 많이 배웠다’고 말합니다.
퇴계 사상을 한마디로 ‘경(敬)’이라고 하는데 경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을 다듬는 방법의 핵심적 자세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표하는 공경이 아니고 윗사람도 아랫사람한테, 남자가 여자한테, 여자가 남자한테, 부부간에도 지켜야 할 도리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게 요즘 흔히들 말하는바, 자신을 삼가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지요.”
지식 갖추고 도덕 실천하는 사람, 진짜 선비
그는 “인공지능(AI) 시대에는 AI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따뜻한 인품의 인재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선비 정신이야말로 계속해서 되새겨야 할 인문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선비의 의미란 뭘까요.
“글을 읽고 쓰는 일을 하면서도 도덕을 실천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도덕이 결여된 지식인 혹은 도덕성은 있어도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선비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글은 진리를 담고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선비란 곧 진리를 추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도덕적 존재이지요. 선비 정신은 그러한 정신적 자세를 실천하는 마음가짐이며 가치관입니다. 어쩌다 관직에 나아가더라도 선비로서의 자세와 가치, 도덕을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겉으로만 선비 모습을 갖추면서 실재 행동에서는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아주 흔합니다. 그런 까닭에 현대에 와서 오히려 더욱 선비와 선비 정신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신동아 2023년 10월호
출처: 신동아:https://shindonga.donga.com/society/3/02/13/4440883/1 [플라톤 아카데미와 함께하는 ‘길에서 만나는 인문 활동가’] 세계가 주목하는 선비 정신, 그 중심에 안동이 있다 (안동 인문가치포럼 이끄는 김광억 서울대 명예교수)
필자_허문명 동아일보 논설위원
'허문명이 만난 사람'이란 인터뷰 시리즈로 사회문화 각계의 다양한 생각을 조명한다. 저서로 <김지하와 그의 시대>, <여성이여 세상의 멘토가 되라>, <삶의 나침반 1,2>, <나는 여자다 나는 역사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