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건강법]10.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아야” (최영갑 교육원장)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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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 ⑩ 최영갑 성균관 교육원장 


유교의  본산인 성균관 최영갑 교육원장. 조현 종교전문기자


접촉은 줄고 접속은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해 활동량과 대면 접촉이 줄면서 활동 반경은 줄고, 불안과 우울 지수는 높아졌다. ‘코로나19’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못지않게 지나친 불안과 우울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도 중요한 때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평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지혜를 찾아 <한겨레>가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시리즈를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진행한다. 열번째 마지막 멘토는 유교의 본산 성균관 최영갑(59) 교육원장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명륜당은 조선시대 유생들이 학문을 익히고 인격을 수양하던 전당이었다. 성균관대학 안에 있는 것으로 알지만 성균관이 먼저고 이를 잇는 성균관대학이 그다음이다. 예부터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학문을 가르쳤다고 하여 유생들의 공부처를 ‘행단’이라고 불렀는데 명륜당 마당에도 은행나무가 있다. 400살이 넘은 나무지만 봄이 되니 어김없이 새싹이 돋는다. 지난 1일 은행나무 아래서 성균관 최영갑 교육원장을 만났다.

최 원장은 현대판 유학의 성서와 같은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한권으로 엮은 <사서>와 조선시대 청소년필독서를 모아 <인성육서>를 펴낸 유교경전번역위원회 편집위원장이다. 성균관대학과 전국의 향교에서 유학을 강의하면서, 지금까지 <주희집주 맹자>와 <한권으로 읽는 동양철학 이야기>, <순자>, <회남자>, <성학집요>, <성학십도> 등의 책을 냈다. 유학을 현대인들에게 전하기 위해 다양한 저작을 쓴 필자답게 그는 통상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유학이 아닌, 생소해 보이는 ‘유학’을 들고나왔다.

그는 먼저 “가족 간에도 직장에서나 이웃이나 친구 사이에 ‘관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우리 주위에서도 일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보다 상사나 동료와 관계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며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것만큼 현대인에게 중요한 것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학의 핵심은 인(仁·어짐)이다. 제자 번지가 공자에게 인에 관해 묻자 공자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지혜에 관해 묻자 공자는 ‘사람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유학을 ‘관계의 철학’이라고 한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성전에서 지낸 초하루 고유재에서 헌관을 맡은 최영갑 교육원장이 빨간 관복을 입고, 계단 위를 오르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럼 어떻게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없앨 수 있을까. 최 원장은 “자공이 ‘죽을 때까지 실천할 것’을 묻자 공자는 ‘서’(恕), 즉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했고, 안연에게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즉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며 ‘관계의 황금률’을 제시했다.

하지만 윗사람의 권위와 강압에 신음하는 아랫사람들이 적지 않다. 유교와 유학이야말로 이런 수직적 상하관계를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라는 게 많은 이들의 생각이다. 최 원장은 “그것은 유교의 본모습이 아니다”라며 교정하고 나섰다.

“‘임금과 신하’(君爲臣綱), ‘어버이와 자식’(父爲子綱), ‘남편과 아내’(夫爲婦綱) 사이를 상하관계로 놓고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 삼강(三綱)은 유교를 최초로 국교로 삼은 한나라에서 동중서가 만들어낸 상하윤리의 통치 이데올로기일 뿐 유교 경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유교에선 모든 대인관계를 5개의 관계로 포괄한,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 등 오륜을 제시해 좋은 관계란 일방적인 강요나 헌신이 아니라 쌍방이 함께 책임과 의무와 신뢰를 다해야만 만들어진다고 했다. 윗사람이라고 해서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이다.”

최 원장은 내적 평화를 위해서는 ‘만족’을 제시했다. 만족(滿足)의 족자가 발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물이 발목까지만 차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과도한 욕심을 내서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공자는 물을 중간쯤 채우면 반듯하게 서고 가득 채우면 옆으로 넘어가는 그릇인 유좌를 보고, ‘세상에 어떤 물건인들 가득 차고서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있겠느냐’고 했다. 욕망이란 만족이 없다. 주역에서도 ‘부귀영달이 극에 달하면 쇠퇴’(항룡유회·亢龍有悔)할 수 있으니 겸양하도록 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성전에서 지낸 초하루 고유재에서 헌관을 맡은 최영갑 교육원장이 빨간 관복을 입고, 흰 유복을 입은 유생 및 성균관대 유학과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그는 욕망을 조절하기 위해 퇴계 이황이 강조한 ‘존천리 거인욕’(存天理去人欲)을 제시했다. ‘사욕을 멀리하고 타고난 본성을 잘 보존하라’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어떻게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가?

“퇴계 이황은 ‘육신의 욕망에 이끌리기 쉬운 게 인간이니 경(敬)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해 경철학을 제시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다른 곳에 마음을 두지 않는 ‘주일무적’(主一無適),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고 가지런하게 하며 마음을 엄숙하게 유지하는 ‘정재엄숙’(整齋嚴肅), 언제나 맑은 상태로 깨어 있어야 하는 ‘상성성법’(常惺惺法), 마음을 잘 거두어들여서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기심수렴’(其心收斂)을 하여 경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했다. 동시대의 남명 조식은 경의검과 성성자란 방울을 차고 다니며 자기 삶이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다.”


―욕망을 이기기 위한 다른 성현들의 가르침은?

“노자는 ‘성인은 자기의 고정된 마음이 아니라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여기며 살아간다’고 했다. 순자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면서 그 욕망을 제어하는 게 예라고 했다.”


―내적, 외적 평화를 위한 유학의 방법은?

“유교적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선한 본성을 타고난 존재다. 인간에겐 물론 도심(道心)이 있고, 사욕을 추구하는 인심(人心)이 있는데 수양을 하면 인심도 도심이 된다. 인심과 도심을 조화롭게 추구하는 게 중용의 삶이다. 공자는 ‘사사로운 욕망을 이겨내서 예를 회복’(극기복례·克己復禮)해 인(仁)을 실천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공자의 가르침을 주로 봉건 왕조와 독재자들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하고, 권위를 강조해 꼰대의 논리로 여겨지는 것은 어떻게 보나?

“공자와 맹자가 바른말을 하지 않고, 왕의 욕망을 부추기며 아부나 했다면 상갓집 개처럼 박대받으며 떠돌지 않았을 것이다. 공자는 기득권이 아니다. 예순살이 넘은 아버지와 열여섯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그의 아버지는 세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장애인인 형을 건사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아홉살에 혼인하고 스무살에 아이를 낳아 창고지기를 하고, 가축을 관리했다. 제자들이 선생님은 ‘어찌 그렇게 많이 아느냐’고 묻자 공자는 ‘천했기에 많은 것을 익힐 수 있었다’고 했다. 다른 종교 교주들처럼 기적을 행하는 모습이 아니라 진실하고 모범적인 삶으로 사표가 된 분이다.”


―맹자가 말한 학문의 목적은?

“바로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하는 학문과는 많이 다르다. 맹자는 ‘닭이나 개를 놓치고는 찾을 줄 알지만, 마음을 놓치고는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의 도는 놓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유교의 인(仁)은 불교의 자비나 기독교의 사랑과 어떻게 다른가?

“유교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차별적 사랑을 인정했다. 맹자는 가까운 사람을 먼저 사랑하는 친친(親親)과 존귀한 사람을 존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존존(尊尊)을 주장했다. 그것을 ‘친친인민’(親親仁民·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확대하라는 것이다.”


―공자는 동양에서 가장 먼저 사립학교를 설립해 제자를 양성한 최초의 교육자였다. 그의 교육관은?

“가난하거나 신분이 미천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희망하는 모든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었으며, 교직을 하나의 직업으로 확립시켰다. 부모가 죄인이나 악인이라도 학생이 바르면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한 희망의 교육자였다. 또한 공자가 글공부만 시킨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예, 음악, 활쏘기, 말타기, 글쓰기, 수학 등 6가지였다. 지금으로 보면 예체능이 다 들어 있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성전에서 지낸 초하루 고유재에서 헌관을 맡은 최영갑 교육원장이 빨간 관복을 입고, 흰 유복을 입은 유생 및 성균관대 유학과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공자가 말한 이상사회인 대동사회는 어떻게 이뤄지나?

“대동사회는 이기심을 넘어서 타인을 배려하고 보살피는 사회다. 공자는 ‘큰 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모두 공평하게 된다’고 했다. 덕과 재능이 있는 인물을 쓰고 화목을 닦으면 어린이는 안전하게 자랄 수 있고, 홀아비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외로운 사람, 병든 사람 모두 보살핌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주희가 집주한 맹자 책을 냈는데, 맹자에서 가장 마음에 새긴 구절은

“‘애인불친(愛人不親)이어든 반기인(反其仁)하고 치인불치(治人不治)어든 빈기지(反其智)하고 예인부답(禮人不答)이어든 반기경(反其敬)이니라’다. ‘남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仁)을 돌이켜 보고, 사람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智)를 돌이켜보고, 예(禮)를 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신의 경(敬)을 돌이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탓하지않고 자신을 성철하는 것이 유교다.”


-옛 유가의 선비들이 밥이 끓는지 죽이 끓는지 모를만큼 현실감각이 없다는 비난을 받은 것은 공맹의 가르침 때문인가.

“맹자는 ‘왕이 만약 어진 정치를 베풀어 형벌을 줄이고, 세금을 가볍게 해주며, 백성을 보호한다면 왕 노릇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며 백성이 편안하게 먹고 살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런 다음에 비로소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성을 배부르게 한 뒤에 인륜도덕을 가르쳐야한다며 먹는 것부터 먼저 해결하게 했다. 왕도 정치는 경제적 풍요로움에서 시작된다. 맹자는 왕도 정치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기초가 토지의 균등한 분배에 있다며 정전제를 주장했다. 맹자는 ‘정치란 굶주리는 백성이 없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왕도정치다’고 했다. 정치의 출발은 민생의 안정에 있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일정한 생업인 항상이 없으면 지조와 같은 항심도 없은 것이니, 배고픈 백성에게 충성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고, 더욱이 지조를 바랄 수도 없다고 했다.”


-.맹자가 대표적인 사상은.

“맹자는 ‘임금에게 큰 허물이 있으면 간언하고, 되풀이해서 간언해도 듣지 않으면 임금의 자리를 빼앗아야 한다’고 했다. 왕이라도 신하의 간언을 듣지않고 포악한 정치를 하면 바꿔야한다는 것이다. 백성이 따르지않으면 천명을 거둬들여야한다고 했다.”


-노자와 장자를 따르는 도가는 인위적으로 뭔가를 하지 말고 물처럼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무위자연을 주장하며, 정치도 반대한 이유는.

“생선을 구울 때 자꾸 뒤집으면 부서지는 것처럼 인간의 욕망이 일을 그르친다고 생각했다. 유가는 덕치주의 왕도정치를 주장했지만, 정치의 최고의 상태에 가면 노장과 같은 무위가 된다. 요순의 정치를 무위이치(無爲而治)라고 한다. 지나치게 간섭하지않아도 잘 되어가는 것이 최고의 정치라는 것이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대성전에서 지낸 초하루 고유재에서 헌관을 맡은 최영갑 교육원장이 빨간 관복을 입고, 흰 유복을 입은 유생 및 성균관대 유학과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혁명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묵자의 핵심적인 주장은.

“겸애는 사실상 계급을 타파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이론이다. 지배층의 독점으로 살기 어려운 천민 계층들을 위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모든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정치를 해야한다는 이론이 바로 겸애였다. ”


-지금도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나오는데, 법치주의의 원조인 법가사상이 핵심은

“한비자가 성악설을 편 순자의 제자여서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라고 보고 강력한 법으로 다스려야한다고 했다. 한비자는 왕족이나 어머니의 신분이 천해서 대접을 못받고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한비자를 만나 법가를 채택한게 진시황이다. 그러나 혹독한 법치를 했지만 진나라는 15년만에 망했다. 한비자의 통치술은 비밀정치로 이어져 통치자의 말로가 좋지않은 쪽으로 작용하곤 했다.”


-<손자>는 이순신장군과 조조, 나폴레옹도 읽고 활용한 병법서인데, 인생을 사는 지혜와 기업경영에 곧잘 활용된다는 풍림화산이란.

“풍림화산(風林火山)은 공격할 때에는 바람처럼 빨리, 행동할 때에는 숲처럼 정연하게, 침공할 때에는 불처럼 기세 좋게, 주둔할 때에는 침착하기를 산처럼, 적의 눈을 피할 때에는 은밀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다. 변화하지않으면 폐하고 사라지게 된다. ”


-통상 용기를 장려하는데 공자는 용기에 대해서 뭐라했나.

“자로가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하겠냐’고 묻자, 공자는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신 ‘반드시 일에 임해서는 두려워하고, 도모하기를 좋아해 성취하는 자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만용을 부리지말고 신중하라는 것이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조선시대 대표적이 유학자로 꼽히는 까닭은.

“35살 차이로 이퇴계가 율곡의 스승벌인데, 두분은 첫째는 훌륭한 인품이 있었고, 둘째 그걸 뒷받침할 수있는 높은 학식이 있었다. 퇴계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자들에게도 반말을 사용하지않았다. ”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38665.html 한겨레 휴심정, 플라톤아카데미 ‘마음건강법을 인생멘토에게 묻다’ 홍성남신부,“화내도 울어도 괜찮다”(1) 인터뷰

필자_조현 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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