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플라톤 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
②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가무 즐기는 ‘무당열정’에 ‘인문학 교육’, 한류에 작용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재)플라톤 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두 번째는 국제한국학회 회장이자 ‘한국문화중심’ 대표인 최준식(66)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한 최 교수는 이미 1990년대 중반에 국제한국학회를 설립한 데 이어 10년 전엔 한국 문화가 중심이 된 복합문화공간인 ‘한국문화중심’(K컬처센터)을 만들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경복궁 옆 한국문화중심 사무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을 경계한다. 종교학이나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득권의 압력이 두려워 샤머니즘에 대해 애써 무시로 일관하는 것과 달리 샤머니즘, 즉 무기(巫氣)와 신기(神氣)야말로 한국인의 근본적인 기질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데서부터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샤머니즘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무속’이라는 용어 대신 ‘무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한국인의 주요 특질로 유교 인문학적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한 문기(文氣)와 무교적 신기를 꼽는다. 그는 <문기> <신기> <세계를 흥 넘치게 하라> 등 책을 통해 한류의 힘의 뿌리를 말해준다.
최 교수는 먼저 ‘한국인은 누구나 반쯤은 무당’이라고 본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를 때는 700만 명이 거리로 나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온 국민이 금을 모으고, 관광버스에 타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네다섯 시간 내내 날뛰고, 전국의 노래방에서 밤마다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밤새 뛰는 무당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교는 과거엔 권력과 불교와 유교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이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잡신 덩어리 정도로 폄하됐지만, 한국인은 무교를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평한다. 대표적 유교 마을인 안동 하회마을 한가운데는 당산나무가 버티고 있고, 교회에서 하는 부흥회에서 30~40분간 노래만 하다가 결국 망아경(忘我境) 속에서 통성기도와 방언을 하는 것이 굿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은 평소엔 자기 종교를 신앙하다가도 문제에 부딪히면 주저하지 않고 쉽게 무당을 찾는다는 것이다. 또 낮엔 유교 선비처럼 지내다가 밤이 되면 무당이 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화된 나라에서 무당이 여전히 20만~30만 명이나 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이 <무릎팍도사>와 <물어보살>이어도 생소할 게 없는 것은 무기가 우리 피에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한류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류 뒤에는 문화적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이 최근에야 단군 이래 처음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주장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전 한국외대 교수가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라는 책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서양인들에게는 미지의 땅이었지만, 삼국시대부터 17세기까지 세계 13대 선진국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이 후진국이었던 기간은 불과 100~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인류사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만들고, 정보산업의 총아인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 오늘날로 치자면 하이테크급 기술로 고려청자를 만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같은 세계 최고 최대의 기록문화를 남기고,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인문학을 익힌 힘이 있었기에 최단시일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대금을 불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인이 가진 문기는 어디에서 왔나?
“조선의 인문학은 최고 수준이었다. 서당에 처음 가면 천자문부터 배운다. 이어 소학 같은 윤리서와 역사서를 배우고, 사서, 삼경, 주역까지 배우는 인문학적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어디 있었나.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습격한 프랑스 군인들이 허름한 민가에도 집마다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열등감을 괜히 느꼈겠는가. 한국인은 교육에 미친 나라다. 부처나 예수가 와도 교육열을 잠재울 수 없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나라가 됐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활용할 인재들이 나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인 아이큐(IQ)는 그런 교육열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무기의 열정에다가 브레인까지 더해졌다. 그러니 2011년 한국에 와본 워런 버핏이 ‘한국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한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까지 이룰 수 있었던 힘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였으니, 미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필리핀이 아니었다. 조선은 명나라나 청나라보다 더 우수한 통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체제 안에서 공식적으로 왕을 감시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 주변에 딸랑이들만 있는 현대보다도 최고 권력자에게 ‘아니 되옵니다’ 하던 시대였다. 설사 왕이 받아주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귀양을 마다치 않고 저항했던 정신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지구상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코리아를 들지 않는가.”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류에 기여했다고 보는 이유는?
“한국인은 우리 집, 우리 딸,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 남편’이라고 하지 ‘내 남편’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 남편’이라고 하면 ‘너만 남편 있냐’고 비웃는다. 물에 빠져서도 개인주의인 서양인들은 ‘헬프 미’(나 살려)라고 하지만, 한국인은 ‘사람 살려’라고 한다. 한국인은 모임에서도 형, 동생처럼 가족 호칭으로 부르며 친족공동체화한다. 그런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여서 한국의 아이돌도 연습생 시절 집단의 규율에 따라 그 힘든 훈련을 견뎌내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특징은?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게, 중국에서 압록강 하나만 건너면 언어와 말과 문자뿐 아니라 음식이나 옷차림이 달라지고, 특히 음악의 박자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통음악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은 기본적으로 4박자인데, 한국은 3박자다. 정원을 만들 때도 중국이나 일본은 철저히 인간의 손이 타게 인간 위주로 만들지만, 한국은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만들려고 한다. 뇌 구조로 비유하자면 일본은 좌뇌, 즉 논리적이지만, 한국은 우뇌, 즉 감성적이다. 일본의 전통음악계에서는 스승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퇴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판소리에서 ‘사진소리’, 즉 스승의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자유분방함과 창조에 대한 희구가 있다.”
―한국인의 가장 주요한 기질적 특징을 무기와 신기로 본 까닭은?
“한국과 중국, 일본 동북아 3국은 유교와 불교를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은 무엇인가. 중국은 도교, 일본은 신도, 한국은 무교다. 여기서 세 나라가 달라진다. 도교, 신도와 달리 한국 무교는 시종일관 노래와 춤을 종교의례로 삼는다. 외국인 제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면 일본인들은 박수 치며 논다. 한국인들이 길길이 뛰며 노는 것을 보면 ‘저렇게 노는 사람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고 놀라워한다. 유세 현장에서도 노래와 춤을 하지 않느냐. 월드컵 경기 때 집단적 망아경 속에 들어가 한국인들이 뿜어내는 열광적인 에너지를 보라. 그 무서운 신기가 지금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인의 한국 문화에 대한 태도는?
“너무 모른다. 전 세계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무지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오해를 시정해주지도 못한다.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대취타’를 불러 전 세계 아미들이 한국의 전통악기와 음악을 궁금해해도 국악을 모르니 설명을 못 해준다. 블랙핑크가 ‘하우 유 라이크 댓’이란 노래를 부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어 세계 팬들이 한복에 관심을 가질 때 한복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46076.html 한겨레 휴심정, 플라톤아카데미 ‘이것이 K정신이다’ 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인터뷰
필자_조현 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
[한겨레-플라톤 아카데미 공동기획] 이것이 K정신이다
②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가무 즐기는 ‘무당열정’에 ‘인문학 교육’, 한류에 작용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고 있다. 과연 한류의 무엇이 세계인들을 열광하게 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답하지 못하는 사이 지구촌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 어떤 문화예술도 정신사상의 뿌리 없이 지속적으로 줄기를 뻗고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신명과 정감이 흐르는 한류의 뿌리를 찾아 <한겨레>와 (재)플라톤 아카데미가 공동으로 10회에 걸쳐 종교·인문학 고수들을 찾아 듣는 ‘이것이 케이(K)정신이다’ 인터뷰를 진행한다. 두 번째는 국제한국학회 회장이자 ‘한국문화중심’ 대표인 최준식(66)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미국 템플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한 최 교수는 이미 1990년대 중반에 국제한국학회를 설립한 데 이어 10년 전엔 한국 문화가 중심이 된 복합문화공간인 ‘한국문화중심’(K컬처센터)을 만들어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경복궁 옆 한국문화중심 사무실에서 최 교수를 만났다.
그는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을 경계한다. 종교학이나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득권의 압력이 두려워 샤머니즘에 대해 애써 무시로 일관하는 것과 달리 샤머니즘, 즉 무기(巫氣)와 신기(神氣)야말로 한국인의 근본적인 기질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데서부터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샤머니즘을 의도적으로 폄하하려는 ‘무속’이라는 용어 대신 ‘무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한국인의 주요 특질로 유교 인문학적 문화의 힘을 바탕으로 한 문기(文氣)와 무교적 신기를 꼽는다. 그는 <문기> <신기> <세계를 흥 넘치게 하라> 등 책을 통해 한류의 힘의 뿌리를 말해준다.
최 교수는 먼저 ‘한국인은 누구나 반쯤은 무당’이라고 본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를 때는 700만 명이 거리로 나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는 온 국민이 금을 모으고, 관광버스에 타서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네다섯 시간 내내 날뛰고, 전국의 노래방에서 밤마다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밤새 뛰는 무당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또 “무교는 과거엔 권력과 불교와 유교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이들과 기독교인들에 의해 잡신 덩어리 정도로 폄하됐지만, 한국인은 무교를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고 평한다. 대표적 유교 마을인 안동 하회마을 한가운데는 당산나무가 버티고 있고, 교회에서 하는 부흥회에서 30~40분간 노래만 하다가 결국 망아경(忘我境) 속에서 통성기도와 방언을 하는 것이 굿판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은 평소엔 자기 종교를 신앙하다가도 문제에 부딪히면 주저하지 않고 쉽게 무당을 찾는다는 것이다. 또 낮엔 유교 선비처럼 지내다가 밤이 되면 무당이 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화된 나라에서 무당이 여전히 20만~30만 명이나 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이름이 <무릎팍도사>와 <물어보살>이어도 생소할 게 없는 것은 무기가 우리 피에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한류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류 뒤에는 문화적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한국이 최근에야 단군 이래 처음으로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주장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전 한국외대 교수가 <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라는 책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서양인들에게는 미지의 땅이었지만, 삼국시대부터 17세기까지 세계 13대 선진국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이 후진국이었던 기간은 불과 100~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계 인류사 최고의 문자인 한글을 만들고, 정보산업의 총아인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고, 오늘날로 치자면 하이테크급 기술로 고려청자를 만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같은 세계 최고 최대의 기록문화를 남기고,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인문학을 익힌 힘이 있었기에 최단시일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대금을 불고 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한국인이 가진 문기는 어디에서 왔나?
“조선의 인문학은 최고 수준이었다. 서당에 처음 가면 천자문부터 배운다. 이어 소학 같은 윤리서와 역사서를 배우고, 사서, 삼경, 주역까지 배우는 인문학적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어디 있었나.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습격한 프랑스 군인들이 허름한 민가에도 집마다 책이 있는 것을 보고 열등감을 괜히 느꼈겠는가. 한국인은 교육에 미친 나라다. 부처나 예수가 와도 교육열을 잠재울 수 없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나라가 됐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활용할 인재들이 나왔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인 아이큐(IQ)는 그런 교육열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무기의 열정에다가 브레인까지 더해졌다. 그러니 2011년 한국에 와본 워런 버핏이 ‘한국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한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까지 이룰 수 있었던 힘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필리핀이 미국의 식민지였으니, 미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그러나 주인공은 필리핀이 아니었다. 조선은 명나라나 청나라보다 더 우수한 통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체제 안에서 공식적으로 왕을 감시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통령 주변에 딸랑이들만 있는 현대보다도 최고 권력자에게 ‘아니 되옵니다’ 하던 시대였다. 설사 왕이 받아주지 않아도 목숨을 걸고, 귀양을 마다치 않고 저항했던 정신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지구상에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가장 이상적인 나라로 코리아를 들지 않는가.”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류에 기여했다고 보는 이유는?
“한국인은 우리 집, 우리 딸,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 남편’이라고 하지 ‘내 남편’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내 남편’이라고 하면 ‘너만 남편 있냐’고 비웃는다. 물에 빠져서도 개인주의인 서양인들은 ‘헬프 미’(나 살려)라고 하지만, 한국인은 ‘사람 살려’라고 한다. 한국인은 모임에서도 형, 동생처럼 가족 호칭으로 부르며 친족공동체화한다. 그런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여서 한국의 아이돌도 연습생 시절 집단의 규율에 따라 그 힘든 훈련을 견뎌내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특징은?
“외국인들이 신기해하는 게, 중국에서 압록강 하나만 건너면 언어와 말과 문자뿐 아니라 음식이나 옷차림이 달라지고, 특히 음악의 박자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전통음악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은 기본적으로 4박자인데, 한국은 3박자다. 정원을 만들 때도 중국이나 일본은 철저히 인간의 손이 타게 인간 위주로 만들지만, 한국은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만들려고 한다. 뇌 구조로 비유하자면 일본은 좌뇌, 즉 논리적이지만, 한국은 우뇌, 즉 감성적이다. 일본의 전통음악계에서는 스승의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퇴출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판소리에서 ‘사진소리’, 즉 스승의 소리를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한국인들의 핏속에는 자유분방함과 창조에 대한 희구가 있다.”
―한국인의 가장 주요한 기질적 특징을 무기와 신기로 본 까닭은?
“한국과 중국, 일본 동북아 3국은 유교와 불교를 공유하고 있다. 다른 것은 무엇인가. 중국은 도교, 일본은 신도, 한국은 무교다. 여기서 세 나라가 달라진다. 도교, 신도와 달리 한국 무교는 시종일관 노래와 춤을 종교의례로 삼는다. 외국인 제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면 일본인들은 박수 치며 논다. 한국인들이 길길이 뛰며 노는 것을 보면 ‘저렇게 노는 사람은 한국 사람밖에 없다’고 놀라워한다. 유세 현장에서도 노래와 춤을 하지 않느냐. 월드컵 경기 때 집단적 망아경 속에 들어가 한국인들이 뿜어내는 열광적인 에너지를 보라. 그 무서운 신기가 지금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방탄소년단 슈가의 ‘대취타’ 뮤직비디오 장면.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국인의 한국 문화에 대한 태도는?
“너무 모른다. 전 세계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에 무지해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오해를 시정해주지도 못한다. 방탄소년단(BTS)의 슈가가 ‘대취타’를 불러 전 세계 아미들이 한국의 전통악기와 음악을 궁금해해도 국악을 모르니 설명을 못 해준다. 블랙핑크가 ‘하우 유 라이크 댓’이란 노래를 부르며 뮤직비디오에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어 세계 팬들이 한복에 관심을 가질 때 한복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가.”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well/people/1046076.html 한겨레 휴심정, 플라톤아카데미 ‘이것이 K정신이다’ 한류 ‘빅뱅’ 만든 한국인의 기질은 이것에서 왔다 (‘한국문화중심’ 대표 최준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인터뷰
필자_조현 기자
걷고 읽고 땀흘리고 어우러져 마시며 사랑하고 쓰고 그리며 여행하며 휴심하고 날며…. 저서로 <그리스 인생학교>(문화관광부장관 추천도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누리꾼 투표 인문교양 1위), 숨은 영성가들의 <울림>(한신대,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가 권하는 인문교양 100대 필독서). 숨은 선사들의 <은둔>(불교출판문화상과 불서상), 오지암자기행 <하늘이 감춘땅>(불교출판상).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우리시대 대표작가 300인’에 선정.